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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동생 결혼식에서 오열하던 오빠

여동생의 결혼쯤 나는 엄마와 재회를 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인 재회는 아니었다. 눈물도 웃음도 없는 건조하고 어색한 만남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단 말도 없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냥 어색하고 어색하고 어색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의 결혼식 당일날 나는 20여 년 만에 우리 네 식구가 한 공간에 있는 모습을 봤다. 동생은 혼주석에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앉았으면 좋겠다고 나와 아빠에게 이야기했고 아빠도 동의함으로써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 자리에 섰다. 가족사진도 찍었다. 엄마가 사돈어른과 화촉에 불을 붙이고 동생이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다시 보지 못할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었다. 동생은 축가로 '라디'의 '엄마'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때 나는 거의 대성통곡을 했다. 우리 집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동생과 내가 무척이나 각별했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무리 각별했다고 해도 동생 결혼식에서 그렇게 오열하는 친오빠를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뒤로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하다. 핸드폰에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고 내가 먼저 연락하는 적도 거의 없다. 답장을 하는 게 아직은 어렵다. "아들 잘 지내지?"라고 메시지가 오면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한참을 생각을 한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그리워했던 건 엄마라는 빈자리이지 실제 우리 엄마라는 사람은 아닌 거 같다. 20년을 만나지 않고 살았더니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어릴 적 생긴 나의 공허는 엄마와의 재회로도 채워지지 못했다. 그 20년의 공백을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다시 메꾸어야 할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앞으로 살면서 풀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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