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인 불명
사랑 아닌 건 알겠는데 후회와 죄책으로 점철되는 건 뭘까. 이런 건 해 본 적이 없어서. 당최 무슨 감정인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정체가 뭐였길래 이런 반응인 거지. 보내는 사람이 비어있는 편지를 쓴다. 이미 개봉된 채로 우편에 부친다. 어디로든 떨어져서 한참을 밟히고 젖다가 땅에 스며들도록. 이토록 다급하게 도망치는 마음이다. 그런데 누가 편지 봉투가 열렸다며 파라핀 도장을 찍어준 꼴이다. 나는 갇혀있어. 수많은 문자의 틈에서. 아주 간신히 살아있어. 그러니까 영국에서 온 편지라고 생각해 주라. 열지도 말고 찢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