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화살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았다. 첫 이탈리아 여행이자, 첫 비엔날레 방문이었다.
비엔날레의 제목은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당신이 흥미로운 시대를 살기를"
21세기 지금은 그야말로 무엇이든 즐길거리가 될 수 있는 시대, 불행과 재난까지도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제목은 해석에 따라 풍자로 읽힐 수도, 냉소로 읽힐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한다면, 대부분의 비엔날레 전시가 그렇듯 이번 출품작들 역시 '흥미로운'이라는 수식어를 그대로 '즐거움'과 연결시키기 어렵게 하는 것들이었다. 대다수의 작품들은 불평등, 전쟁, 폭력,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 곳곳에 만연한 어둠에 주목하고 있었다. 비엔날레 핸드북과 구글 지도에 힘입어 리투아니아관, 코소보관, 시리아관, 파키스탄관, 그레나다관... 세계지도의 어디쯤에 위치한지도 알기 어려운 낯선 곳들의 미술을 보겠다고 나흘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시간에 쫓겨 한 작품도 놓치지 않으려 돌아다닌 비엔날레에서 내가 얻은 수확은 미적 감정보다는 지적 충족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마법과도 같은 순간으로 기억되는 그런 작품과 만날 때도 있었다. 인도 뭄바이에서 작업한다는 40대 여성 미술가 실파 굽타의 설치 작품 "For, In Your Tongue, I Cannot Fit".
전시관의 천장에는 수 십여 개의 마이크들이 매달려 있고, 그 수에 맞게 종이가 한 장씩 꽂힌 쇠창살들이 정방형 그리드를 이루며 솟아 있다. 종이에 적힌 글자의 정체를 파악하려 쇠창살 사이사이를 거닐면 모션 센서가 작동해 마이크의 형태를 띤 스피커에서 시를 음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까지... 세계 곳곳에서 창작된 시 구절들이 관객들의 움직임을 따라 울리며 웅장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국가권력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시집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전시실 공간을 채운다.
베니스에 다녀온 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운율 섞인 메아리치는 음성이 마음속에 생생하다. 중심에서 밀려난, 추방된, 배제되어 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작가는 과거로부터 끄집어내어 되살린다.
균열이 생긴, 찢긴 일상의 경험에서 시가 탄생한다. 어떤 기억은 파열음이 되고, 언어의 화살이 된다. 목소리가 되고 활자가 된 시들, 언어의 화살들은 몸의 장막을 뚫고 흘러 마음 바닥에 뿌리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