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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린 Mar 16. 2022

난 지금처럼 순수하게 살련다

세상을 바라보다




나는 종종 ‘순수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누군가는 긍정적이라는 의미로 말했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는 의미로 또 누군가는 조금 더 약아야 한다는 의미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


순수하게 살고 싶었던 나에게 커가면서 ‘순수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닌 것처럼 자리 잡았다.


세상에, 현실에 아직 데어 보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라는 어조로 나의 순수하고자 하는 마음과 세상의 어두움보다는 희망을 보고자 하는 태도를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나의 ‘순수함’은 어느새 세상을 모른다는 ‘무지함’으로 바뀌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돼지도 않는 세상을 향한 염세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결국 또다시 ‘순수함’으로 돌아오는 나를 발견한다. 오히려 그 ‘순수함’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확신에 찬 나를 보게 된다.




세상을 단순히 인터넷에 떠도는 취업난에 대한 뉴스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제지표로, ‘누구는 서울대에 들어갔더라’ 또 ‘누구는 자퇴를 했다더라’하는 가십으로, 거짓과 배신이 가득한 정치 이야기로 보지 않는 것은 ‘용기’이다. 아니, 아주 ‘큰’ 용기이다.


‘데어봤다’라고 하는 사람들, 그래서 잘 살기 위해서는 조금은 염세적일 필요도, 조금은 약아야 할 필요도 있다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무기력함’과 ‘도피’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이면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들을 던지고, 이상을 꿈꾸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죄성 가득한 본성과 그와 동시에 공존하는 더운 날 택배기사에게 시원한 물 한 컵 건넬 수 있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이성적인’ 착각으로 여기저기 떠도는 뉴스들을 읽으며 실제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지식을 다 아는 것 마냥 사람들에게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는, 말 한마디부터 고쳐보는 그런 ‘순수한’ 삶이 내가 추구하는 삶이다.




나의 ‘순수함’은 신앙에서 나온다.


인간은 악하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거짓과 배신이 난무하고, 질병과 죽음이 도처에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본다. 인간의 조리된 속성을 보지만 또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 죄를 사하려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본다.


그래서 나에게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선하고자 하는 갈망과 끝없는 잠재력이 있다. 아직 희망이 있고 나의 작은 날갯짓이 의미가 있다.


내가 누군가에 건네는 희망의 말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믿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행동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학교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는 저 아이에게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교육에 혁신을 일으키고자 하는 나의 꿈이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이게 나의 ‘순수함‘이다.


만약 ‘순수하다‘는 것이 이 땅에서는 바보 같은 것이라면 난 차라리 바보가 되련다. 만약 ‘순수하다’는 것이 세상에서 뒤처지는 짓이라면 난 차라리 뒤처지련다. 만약 ‘순수하다 ‘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지는 것이라면 난 차라리 지련다.


난 지금처럼 이렇게 순수하게 살련다.




#순수함 #희망 #꿈 #신앙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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