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빛 Oct 28. 2022

피카츄와 코인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RPG게임부터 보드게임까지 승부욕도 있고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게임이라면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좋아했고, 게임사에서도 잠깐 근무했을 정도로 지금도 꽤 좋아한다.


하지만 도박성 게임은 절대 손대지 않는다. 카지노도 소액 재미로 시도해 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꺼림칙해 가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고 승부욕도 많은 내가 아주 약간의 도박성만 있더라도  멀리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초등학교 때의 기억 때문이다.




선생님들 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초등학교 때는 대부분 강제로 랜덤 짝꿍이 맺어졌다. 꽤 친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짝꿍들은 매번 앙숙이거나, 그다지 친하지 않은 애들과 하게 되었다.


나의 짝꿍은 살짝 찢어진 눈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L군이었다. 에너지 넘치고 축구를 좋아하며,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어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해 선생님한테 매번 혼나던 친구였다.


정말 엄청난 에너지의 장난꾸러기여서 맨날 시비걸리는 것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그러진 않았다. 단지 집중을 잘 못해서 맨날 딴짓하다가 혼났을 뿐.


한편 나는 이 때부터 이미 만화책에 푹 빠져있었다. 들키면 그렇게 혼나고 등짝을 맞았는데도 너무 재밌어서 끊을 수가 없었다. 쉬는시간에 몰래 만화책을 너무 보고싶어서 수업시간이 빨리 끝나길 발을 동동구르며 기다렸다.


장르는 소년만화부터 순정까지 가리지 않았는데, 이 당시에는 ‘바람의 검신’만 빌려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하도 숨도 안쉬고 푹 빠져서 보니 L군도 신기했는지 자기도 봐도 되냐고 했고, 그렇게 우리 둘은 만화책에 코를 박고 보다가 선생님이 들어오면 재빠르게 서랍에 숨기고는 서로 마주보고 씩 웃었다.




친해진 다음부터는 학교 밖에서 만나더라도 L군은 또래 남자애들처럼 장난도 많이 쳤다.


학교 앞 문방구 옆에 있는 간이 분식집에서는 컵에 담긴 떡볶이를 300원 어치, 500원 어치 팔았고, 피카츄는 500원이었다. 당시에 나는 용돈을 만화책 빌리는 데 다 쏟아붓고 있어서 이 200원가지고 엄청나게 고민을 하다가 큰 맘먹고 피카츄를 사먹곤 했다.


갓 튀겨진 따끈한 얇은 피카츄 모양 돈까스 위에, 매콤달콤한 케챱향이 스쳐가는 소스를  아주머니가 듬뿍 발라서 건네고,

드디어 한입 먹으려고 하면,

“야 , 나도 한입만!!!!” 하고 L군이 매번 먹고 도망갔다. 솔직히 한입이라기엔 정말 선넘는 양이었다.


너무 짜증나서 “야!!!!!!!” 하고 소리지르면 낄낄 웃으며 금새 문방구 안으로 도망갔다.  한번은 도대체 뭐가 문방구 안에 있어서 맨날 거기에 있나 싶어 들어가 봤더니, 조그만한 오락기 세 대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정확히 어떤 게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조이스틱으로는 방향조정을 하고 버튼들을 아주 빠르게 눌러서 적을 처치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간단한 픽셀 게임이었다. (철권처럼 버튼을 정해진 방식으로 누르면 기술이 나오고 이런 고차원(?) 게임은 아니었다)


빨려들어갈 것 처럼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고, 손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타닥타닥 누르던 L군은 캐릭터가 죽자 “아이씨!!!” 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코인을 손에 쥐고 뒤를 힐끗 보며 ”너도 해볼래?“ 라고 물어봤다.


나는 손이 둔하다.

게임도 좋아하는 거지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버튼을 빠르게 누르지 못하자 내 캐릭터는 픽픽 쓰러졌다. L군이 했을 때에는 코인이 쏟아져 나왔는데 내가 하니 한 개 겨우 기계가 퉤 뱉는다. L군은 뒤에서 보다가 너무 답답했는지,

“아니! 더 빨리 눌러야지!!!”

“야!! 옆으로 옆으로!!!!”

“아우! 너 진짜 바보냐?”

이런 식으로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처음 하니까 못할 수도 있지!!!!” 라고 얘기하면서 벌떡 일어나자 마자 L군이 누가 자리를 차지할 세라 재빨리 앉은뱅이 의자에 앉는다.


한번도 저렇게 소리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친구가 나중에는 쌍욕을 하는 것에 놀랐다. 더 놀란건 내가 일어난 다음 나를 볼 새도 없이 다시 화면속에 빨려들어가던 L군의 모습이었다. 어차피 은색코인 한개로는 문방구에서 살 수 있는 게 없어서 옆에다 놓고 가려는데, 옆에 놓는데도 눈이 미동도 없다. 어쩐지 조금 무서워져서 나는 터덜터덜 집에 갔다.




그 뒤로도 L군은 늘 그자리에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피카츄를 뺏어먹으러 나오지도 않았고, 어두운 문방구 한 구석에서 빛이 나오는 화면 앞에 웅크려 앉아 버튼만 미친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학교에 와서도 얼굴이 점점 퀭해졌다. 같이 열심히 보던 바람의 검심 책도 이제 먼저 빌려준다고 해도 보지 않는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면서 시계만 보다가 점심시간에 밥도 먹지 않고 뛰쳐 나갔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종례시간만 손톱을 물어뜯으며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은 1교시부터 L군의 얼굴이 창백했다. 목소리도 안좋고 정말 아파보였다. 한참 몸살이 유행했을 때였다. 꾀병 아니야? 하고 눈을 가늘게 뜨니 머리를 만져보라고 한다. 앗, 뜨겁다. L군은 선생님들이 자기보다는 내 말을 더 믿을 거 같다며 자신이 아프다고 대신 말해달라고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2교시가 시작할 때쯤, 나는 마침 들어오신 담임선생님께 손을 들어 L군이 아프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미 L군이 게임에 미쳐있다는 것을 알아서 미심쩍어 했지만, 행색이 너무 아파보이니 바로 조퇴시켜 주셨다.


그러자 뒤에 앉아 있는 남자애들이 혀를 쯧쯧 찼다.

“야, 쟤 이제 문방구 간다”

“안가면 내 손에 장지짐”

“야, 아까 걔 진짜 열났다니까?” 하고 쏘아붙였더니, 애들이 기가막혀 하며 ” 야, 너 진짜 모르네~걘 진짜로 아파도 거기서 게임하고 있을걸?“ 이라 말하며 낄낄거렸다.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4교시가 끝나길 기다리고, 점심을 입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교문으로 달려갔고, 그 앞에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하필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아저씨가 밖에 게임기를 내놨다. 굳이 가까이 갈 필요도 없었다. 멀리서도 나는 L군인 걸 알 수 있었다.


엄청난 배신감과 함께 약간 무서웠다. 그 게임이 뭐길래, 그래봤자 코인으로 살 수 있는 건 별거 없었는데. 웃고 떠들던 짝꿍이 멍하니 수업시간에도 책상을 버튼 누르듯이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던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본 것은 생각보다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 뒤로 얼마 안가 전학을 갔다.

가끔 매체에서 카지노나 파칭코 머신에서 코인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을 볼 때면 문득 L군이 생각난다. 어디에 있든 이제든 건강히, 적당한 정도로 게임을 즐기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전 07화 수지침과 사과 한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