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꺼삐 주식회사>
내게 프랑크푸르트(Frankfurt)는 추억이 많은 곳이다. 입사하여 처음 출장을 간 곳도 프랑크푸르트였고 짧은 기간이지만 해외에서 일한 곳도 프랑크푸르트였다. 이런 특별한 추억이 있는 프랑크푸르트를 오랜만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세계 최대 3D 프린팅 전시회인 폼넥스트(Formnext)를 참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과거의 명성과 화려함이 사라지면서 프랑크푸르트 여행은 기대감 대신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독일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의 본거지로 오랫동안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테슬라의 질주에 자동차 강국의 위상이 휘청이고 있다. 폭스바겐은 최근 비용 절감을 위해 독일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알리며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폭스바겐의 위기는 중국에 높은 의존도와 높은 생산 비용, 기술 리더십 약화가 원인으로 독일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내연기관차를 최초로 개발한 독일의 칼 프리드리히 벤츠(Karl Friedrich Benz)를 시작으로 자동차라는 위대한 발명품은 1889년 파리 엑스포를 거쳐 모터쇼를 탄생시켰다. 수많은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이 모터쇼에 총출동하여 신차와 컨셉트카로 경쟁을 펼치면서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으로 옮겨 가고 완성차 업체들이 모터쇼가 아닌 세계 최대 IT 박람회인 CES로 몰리면서 지금은 모터쇼의 존재여부가 위태롭다. 세계 최대이자 가장 오래된 모터쇼로 자동차산업의 트렌드를 주도해온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 또한 2021년 뮌헨으로 개최지를 옮기고 국제 모빌리티쇼로 이름을 바꾸면서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의 자동차 수도’라는 명성을 내놓게 된다.
프랑크푸르트 전시장(Frankfurt Messe)은 공항을 상상하게 한다. 공항에 도착해 한참을 걸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듯 프랑크푸르트 전시장은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를 수없이 갈아타고 한참을 걷고 나서야 안으로 갈 수가 있다. 이것 때문인지 전시장의 감동은 프랑크푸르트를 따라올 곳은 없는 것 같다. 행사가 시작되면 지하철을 타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정장차림에 가방을 맨 관람객들로 가득 찬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전시장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고 불편한 시간이 이어지지만 전시를 볼 수 있다는 설렘에 기분이 고조된다. 모터쇼만큼은 수많은 사람들이 폼넥스트 전시를 찾으면서 예전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 최대 3D 프린팅 전시회인 ‘폼넥스트(Formnext) 2024’는 11월 19일 ~ 22일 프랑크푸르트 메쎄에서 열렸으며 54.000m² 면적에 전세계 864개 기업이 출품했다. 산업용 3D 프린터와 자동화 솔루션, 소프트웨어, 후처리 및 품질 기술 등 산업 전반에 걸친 혁신적인 기술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폼넥스트 역시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많은 중국업체가 참가하고 있다. 3D 프린팅은 관련 기술의 저작권이 풀리면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비가 대형화되고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업체들은 전략적 협업을 통해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항공우주 분야 증대, 대량 양산 자율제조 스마트 공정, 특화 소재 및 재활용 기술 등으로 변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몇몇 기업들이 눈에 띄는 전시였다.
나는 이번 여행을 생각여행이라 이름 붙이고 독일 철학자처럼 주변을 바라보기로 했다. 쇼펜하우어처럼 ‘모두가 보는 것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보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처럼 여행에 대한 기대나 흥분 없이 단상을 쉽게 써 보기로 했다. 무거워진 마음을 익명의 여행자가 되어 보고 싶었다. 생각은 마음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여행으로 치면 계획을 짜듯 생각을 위해서는 미리 살펴봐야 한다. 요리를 하기 전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고 그릇과 잔에 음식을 준비하듯 생각여행은 답사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생각여행이 된 데는 ‘프랑크푸르트는 볼 것이 없다’라는 얘기도 한몫 했다. 이것은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심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복구되면서 우리는 편견 많은 도시 프랑크푸르트를 아슬하고 미묘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프랑크푸르트를 괴테하우스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기억할 것이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유산을 지키고 이것을 우리의 일상으로 즐기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만약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를 책으로만 만날 수 있고 또 크리스마스 마켓이 짧고 평범하다면 어땠을까? 다행히 괴테하우스(Goethe House)는 여러 번 주인이 바뀌고 복구가 불가할 정도로 폭격으로 파괴되었지만 오토 볼거(Otto Bolge)의 위대한 노력으로 되살아 날 수 있었다. 그가 1863년 괴테가 살던 집을 매입해 복원을 하고 폭격에 미리 집안의 가구와 물건들을 대피시키면서 괴테하우스가 존재할 수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관람자가 되어 그가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탄생의 방’을 비롯해 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집필한 ‘시인의 방’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11월말부터 열리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뢰머 광장(Romer)에 도착했을 때는 크리스마스 마켓(바이나흐츠 마르크트, Weihnachtsmarkt)의 준비로 주변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마켓의 설치가 시작되었는지 경찰들의 안내를 받으며 광장으로 대형 트럭들이 들어오고 예쁜 집모양의 가게들이 조금씩 지어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Frankfurt Cathedral)에는 초등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의상과 소품을 하고 벤치에 줄지어 앉아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한 연습이 진행중이었고, 뢰머 광장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단체로 찾아와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는 광경을 현장체험하기도 했다.
주변과 도시의 수많은 가게들도 크리스마스 준비를 마치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축제이면서 동시에 결코 이것을 짧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것은 족히 한달은 준비해야 크리스마스로 집안을 채울 수 있는 정도의 양과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쇼핑을 가족과 하고, 크리스마스로 집의 안과 밖을 꾸미고, 크리스마스로 된 식기와 조명을 밝히고, 크리스마스로 된 음식과 선물을 나누고 즐기는 데는 분명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축제의 준비가 길고 축제의 내용이 풍부한 만큼 이것에 대한 사랑도 즐기는 기쁨도 분명 길게 오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