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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효자동 이발사'로 청와대 다시 보기

왜 그들은 청와대를 개방했을까?

by 한 마디 Jan 17. 2025

청와대에 가기 전 본 것들


2004년, 송강호, 문소리, 이재응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개봉했다. 아마 20년도 넘은 영화이기도 하고, 많이 흥행한 영화는 아니었다 보니 기억 속 저편에 슬쩍 남아있는 정도의 영화가 아니었을까. (필자는 사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고작 유치원생이었다.) 청와대가 개방되던 2022년, 겨울이 올 때 즈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청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영화에는 독재자와 이발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을 얼핏 보면 정치영화 같지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삶을 그린다. 현실에서 모티프를 얻었지만 그 또한 사실이 아닌 장면들도 다수 들어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저 '청와대'를 미지의 세계처럼 그린 것이 흥미로워 답사 전에 보기에 나쁘지 않겠군, 이라며 영화를 보게 되었다.


답사에 가져가려 영화의 줄거리를 스크랩해 두었다.답사에 가져가려 영화의 줄거리를 스크랩해 두었다.

엄청난 블랙 코미디의 영화였다. 여러 시대적 요인들을 풀어냈지만, 그중 청와대를 이루는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시민의 신분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일을 하고, 풀밭에서 이발사의 아이들과 대통령의 아이들이 뛰놀고. 스크린은 여러 배경의 사람뿐 아니라 그 안에 얽힌 이해관계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세 번의 답사, 그리고 생각들


청와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청소도, 요리도 해야 하고 보안관도 있어야 하며 주치의, 행정 업무를 보는 비서, 스타일리스트, 이발관 등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마치 작은 사회를 안에 담아둔 듯하다. 유퀴즈에서는 국가기밀특집으로 청와대 요리사를 인터뷰했었다. 한식 요리사, 중식, 양식 요리사가 있고 각 국가 대통령을 위해 요리하는 사람들이 모인 세계 모임이 있다고 한다. (이발소는 오픈된 곳에서는 찾을 수 없었지만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니 관저 안에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들의 '직장'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청와대의 구조가 그다지 직원 친화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매 선거마다 청와대의 배치를 바꾸겠다는 공약이 등장한다. 비서실 건물부터 청와대 본관(대통령 집무실)까지의 거리가 멀다는 단점 때문이었다. 도보로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길래, 실제로 스톱워치를 켜고 걸어보니 8분 정도로 나오더라. 비서실과의 거리가 가까워야 시민들과도 가까워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온라인이 잘 되어있어서 괜찮다고도. 그래서 정원이 넓은 것 아니냐,라는 시각도 있다. 건축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오히려 같이 바깥을 걸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안점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인 듯하다. 개방된 청와대를 향하며 그 안에서의 삶의 장면들을, 혹은 그 흔적들을 발견하길 은근히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자 정작 방문자의 대부분은 “뭐야 다 막아뒀네.”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건축물의 내부 말고도 바깥에도 흥미로운 것들이 있긴 했다. 첫 번째 답사 때는 청와대에서 아이들 답사를 도와주는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있었고, 두 번째 답사 때는 초소를 지키는 경비원을 보았다. 세 번째에는 화장실 공사 용달 트럭을 확인하는, 유니폼에 뾰족구두를 신은 직원을 보았다. 혹시나 외부인이 벌컥 들어오진 않을까 긴장한 얼굴로 대문을 확인하는 모습도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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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안에 담긴 삶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돌아다녔다. 건물을 이루는 작은 부분들에서 생각보다 삶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주두처럼 생긴 구조물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듯한 초록색 망이 둘러져 있었고 출입을 막아둔 문의 손잡이에는 보호용 천을 감싸지 않아 손이 닿아 벗겨진 칠이 그대로 보였다. 관저의 문고리에는 오래된듯한 케이블 타이가 묶여있고, 조명을 조작하는 계기판은 버튼이 닳아있었다. 흔적을 찬찬히 따라가며 마치 영화처럼 이곳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들을 상상하며 돌아다녔다.


가시성이라는 것은 대상의 탈신화화를 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물론 청와대를 개방하지 않았던 것은 국가 안보의 목적이 컸을 것이다) 청와대를 개방하면서도 부러 열지 않은 곳들도 많은 듯했다. 귀빈을 위한 짐보관함, 화장실 같은 곳들이었다.


좀 웃긴 이야기지만, 영빈관 정문 옆으로 출입금지 표시가 없는 뒷골목 같은 곳이 있어 살짝 들어갔다가 경비원에게 혼(?) 났다. 그리곤 직원 두 명이 무전으로 나의 인상착의와 장소를 이야기하고 들어갔던 입구에 쭉 서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출입 금지된 곳에는 보이는 곳과 현저히 다른 밀도여서 놀랐다(밀도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정비된 다른 곳들에 비해 여느 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감성이었달까. 청소 도구함도 있고 소화설비도 있고 샘터도 있었는데, 왠지 경비원 혹은 일하는 사람들이 담배를 필 것 같은, 보통의 장소였다. 거대했던 청와대가 조금은 손에 잡히는 크기로 줄어든 것 같았다.




신성화와 권위 사이, 묘한 경계선


정치 또한 문화의 한 갈래다. '문화'라고 하면 뭔가 예술, 영화, 공연만 포함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문화는 문명과 문물이 발생하면서 생겨난 일련의 사건들, 현상들, 구조들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다. 정치라는 문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위, 공동체가 필요하다. 권력은 말 그대로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의미한다.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르는 말이다. 권위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다.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질 수 있는 위신을 의미한다. 즉 권위는 없지만 권력이 있는 경우(순조와 같은 경우)도 존재하며, 권력은 없지만 권위만 있는(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의 경우) 경우도 존재한다.


대체로 정부는 이런 권력을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 존재한다. 약육강식의 단계를 넘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이기적인 욕망과 폭력, 갈등과 경쟁을 조율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직책과 직위에 맞는 역할로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얻게 된다.


귄위는, 어떠한 대상의 신성화를 바탕으로 생겨난다. 아마 청동거울을 사용했던 과거의 추장들이 이 신성화의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번쩍번쩍 빛나는 청동거울을 가슴에 달고 "내가 바로 해를 관장하는 사람이다!"라는, 다시 말해 내가 바로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세계에 내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권위는 그 사람이 권력의 근원임을 암시하고, 그 권력의 신성함과 절대성을 상징하기 위해 고안되는 문화적 장치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평등 또한 일부 수용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불평등이 권력의 상징이 되는 이상한 구도가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권력을 정당하게 얻기 위해서는 '신성화'라는 장치가 필요하고, 말이 되는 신성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속할 공동체의 특성을 매우 면밀히 파악하는 눈이 필요하다.


자, 이제 다시 청와대와, 영화 '효자동 이발소'로 돌아가보자. 여태껏 막혀있던, 신성화의 본거지인 청와대를 개방한다는 것은 과연 국가에게 무슨 의미일까. 가슴께에 달아두었던 청동거울 같이, 미지의 공간으로 알려졌던 청와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이곳을 보게 될까.

청와대의 '폐쇄'가 어떤 권력의 상징이었다면, '개방' 또한 권력의 상징일 수 있다. 이런 상징을 통해 세상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자 했는지 생각해 보며 청와대를 방문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시선일 수 있겠다. 이 곳은 왜 막아두었을지, 개방된 곳들은 어떤 장소였을지, 고민하며 걷다 보면 또 새로운 발견의 지점들이 생겨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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