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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Aug 26. 2023

질투의 화신

오래된 서랍CONTE


전화가 걸려 온 건 새벽 두 시였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을 더듬거려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아직도 장례식장이라고? 예정대로라면 우리가  심야영화를 보고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이 시간에 왜 아직도 장례식장에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폭탄을 메고 폭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를 막지 못하고, 그는 우물쭈물 변명을 물고 오물거리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책 없는 인간. 끝장 낼 줄 알아.


  상체를 일으킨 그녀가 핸드폰 키패드에서 1을 길게 누른다. 발신 신호가 끊기더니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1을 다시 누른다. 신호음이 끊어진다. 불굴의 의지를 지닌 그녀가 또다시 발신 버튼을 누르지만 또 끊어진다. 어쭈? 이것 봐라. 머리 뚜껑이 열릴 것 같은 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다시 버튼을 누른다. 결국 휴대폰이 죽었다는 부고를 듣는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 냉장고의 심야영화 관람이라고  포스트잇을 찢어 휴지통에 버린다.


  아파트 정문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탈게요.


  그녀는 택시를 부른 후 냉장고의 문을 열어 캔맥주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도 진정이 안 돼 냉동실의 멸치 몇 마리를 질겅질겅 씹어 삼킨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의 시절은 지나갔다. 딸기밭의 낭만도 쏜살같이 달려간 지금 남은 것은? 저 멀리 아득한 거리에서 소가죽처럼 질긴 싸움으로 무두질할 똥고집의 시간이 결승선에서 손짓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좋은 시절은 찰나에 머문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질 않던가. 그새 진달래가 피고 지고 다른 꽃들이 따라서 피고 졌다. 한동안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참을만했다. 그래, 사랑이니까. 우린 서로를 너무 생각하다 보니까, 그럴 수 있지. 사랑은 서로의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는 거니까. 그런 구속이 위로가 되는 시간은 손에 움켜쥔 바람만큼이지만.  


  화려한 전쟁은 장미가 피었다 지는 사이 만개한 꽃처럼 폭발했다.


  온갖 꽃들이 재재거리고 목련꽃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핀 교외의 회전구이오리집에서 전쟁은 시작됐다. 하필이면 오리고기를 꽂은 꼬챙이를 집어던지면서. 카운터를 지키던 사장이 기겁을 하고 달려왔다. 사장을 가운데 두고 그녀와 그는 사생결단을 할 듯 달려들었다.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입에서는 채 씹지 못한 오리고기와 쌍욕이 공중에서 난타전을 벌였다.


  어제도 순댓국집에서 한바탕 전투를 치렀다.  


  내장탕을 먹을 것인지 순댓국을 먹을 것인지 고르다 건강에 좋은 것이 순댓국이라는 그의 고집이 발단이 되었다. 그녀는 내장탕도 몸에 좋다고 별 걸 다 차별한다고 피식거렸다. 그녀의 말투와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가 숟가락을 탁자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질세라 그녀 역시 숟가락과 젓가락을 더 큰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뜨거운 뚝배기를 던질 수는 없는 일. 그녀와 그는 서로를 노려보고 으르렁대다가 결국 서로의 뚝배기에 가래침을 뱉고 나와 버렸다.  


  물불 안 가리고 서로를 탐닉하느라 눈먼 연인보다 더 무서운 것은 패자부활전을 꿈꾸는 그녀와 그의 싸움이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는 순간 긴장감은 고조되고 전투력은 상승한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자잘한 모욕으로 다가온다. 질투의 화신이라도 만난 듯 그녀와 그의 머릿속은 상대가 유혹에 노출될 온갖 상황들이 떠돌아다닌다.  


장고 끝. 그녀는 결전을 선택했다. 전투에 대비해 신축성이 가장 좋은 스키니즈와 후드티를 입고 꽃샘추위를 막을 얇은 패딩을 걸친 그녀가 핸드백고 아파트를 나선다.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심장은 부릉부릉 오토바이 엔진처럼 굉음을 내며 시동을 걸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시시덕거리는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심호흡을 하며 아파트 정문 앞까지 품위 있게 걷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질투심에 몸이 자주 휘청거렸다. 모든 것이 끝나는 지구종말  최후의 목격자가 된 심정이었다. 아무 데나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 마침 택시 한 대가 물 찬 제비처럼 달려와

아파트 앞 도로 횡단보도 옆에 정차했다. 이 절묘한 타이밍이라니. 현장포착은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 그녀가 택시의 문을 거침없이 열었다. 택시기사와 그녀의 눈이 부딪쳤다. 기사는 일언반구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손님에 대한 예의가 없는 눈빛과 표정이잖아. 그녀는 불쾌해진다. 그러나 더 불쾌한 은 뒷좌석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누구 맘대로 합승을?


  이 사람들 누구예요? 투포환 선수가 쇠공을 있는 힘껏 던지듯 그녀가 기사를 향해 의심을 던진다. 그녀의 말이 쿵, 하고 떨어지자 기사가 순간 움찔한다. 그뿐이다. 기사는 아무 말이 없다. 뒷좌석의 두 남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기분이 더 나빠진다. 지금 나를 인신매매하자는 건가. 이 시커먼 인간들 봐라. 전투력이 최고조에 오른 그녀가 택시를 분해시킬 듯 천둥같이 소릴 지른다.


  이 사람들 누구냐니까요?        

  누구긴 누구예요, 손님이죠. 기사는 그녀를 보고 공손히 그러나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이다. 뒷좌석의 두 남자는 기사 말이 맞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쾅 소리 나도록 문을 닫았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자 택시가 떠났다. 연이어 택시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서더니 보조석 창문이 열렸다.

  콜 부르셨지요? 차가 막혀서 좀 늦었어요.

  기사가 보조석 창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는 목청을 높였다.



  

그녀가 탄 택시가 동부간선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제 막 연인으로 발전한 이들이 그렇듯이 연인을 소홀히 대하는 자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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