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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May 13. 2024

묻고 따지지 않는다

아저씨들의 우정여행

휴일이다. 상주에 간다.


오후 3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니 늦어도 저녁 7시에는 상주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나름 지방을 여러 곳 여행 다녔지만 상주는 처음이다. 상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곶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상주에 가는 것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J형이 지금 상주에서 몇 개월째 일을 하고 있고 그를 응원할 겸 1박 2일로 가는 것이다. 여행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그가 있는 곳으로 하루 저녁, 소주를 마시러 가는 것일 뿐이다.


혼자 가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형, S와 함께다. 우리 셋은 맘이 잘 맞는 술친구다. 한번 만났다 하면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마시는데 매번 그렇게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의 남자들이 여전히 즐거울 수 있는 건 여전히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어서다. 몇 번 말다툼을 한 적은 있으나 서로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

치켜세우지는 않지만 깎아 내리지도 않는다. 술을 좋아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적당히 취한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


오늘 계획은 원래 이랬다. S형과 고속터미널에서 12시에 점심을 먹고 2시에 출발. 4시 반에 상주 터미널에 도착하면 J형이 마중을 나와 있을 것이고 그때부터 J형이 소개하는 상주 맛집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 J형이 갑작스럽게 잡힌 미팅일정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야 했던 것.

물론 J형은 미팅만 끝나면 다시 상주로 내려가긴 할 것이지만 아무래도 상주에 그대로 있는 것이랑 서울에 왔다 가는 것이랑은 컨디션도 다르고 우리가 놀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아 웬만하면 계획을 미루는 것이 맞긴 하다. 그러나 우리 중 아무도 그 얘길 꺼낸 사람은 없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던 사람들처럼.


이럴 때 주로 결정은 내가 매는 편이다. 평소 같았으면 약속을 취소하고 다시 잡았을 것이다. 그게 합리적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둘이 얼마나 이 시간을 기대하고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결국 계획은 변경됐다. 나와 S 형이 먼저 만나 낮술을 하고 있고 J형이 회의가 끝나는 대로 우리를 태우러 와서 다 같이 상주로 가기로 했다. 상주에는 해가 떨어지면 도착할 것이고 이래저래 피곤해서 평소보다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할 것 같다. 여러모로 무모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두고두고 오늘을 얘기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맘이 불편한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원인은 나에게 있다. 사실 요즘 하루하루가 힘들다.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오는 길에 기분이 좋았던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쫓기는 꿈을 꾼다.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자꾸 새어 나온다. 이렇게 힘든 적이 있을까 싶다. 나는 마흔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다.


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했던 건 지금 내 마음이 온전하게 어딜 가서 술을 마시고 있을 기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맞추다가 어느새 혼자 취해서 신세한탄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우리 모두를 잘 아는 아내가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또 재미있을 걸? 자기 요즘 매일 한숨 쉬잖아. 상주에 가서 크게 숨 자주 쉬고 걱정 좀 놓고 와. 걱정한다고 변하지 않는 거 잘 알잖아.


시간도 많지 않고 비합리적인 이 여행을 나는 어떻게 보내고 올까? 아침부터 걱정이 많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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