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엄마에게 다녀왔다.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아직 무릎도 성치 않은 엄마가 밥 준비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중국집에 가자고 미리 얘기를 해두었다. 엄마는 짜장면을 좋아한다.
집에서 11시 즈음 출발을 했다. 의정부에 있는 본가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중국집 예약을 미리 해둘까 하다가 언제 도착할지 정확하지도 않고 평일이라 괜찮을 것 같아서 그냥 가기로 했다. 본가 근처에 중국집을 한 군데 가보긴 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 차를 타고 나가더라도 평이 좋은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나는 본가 근처의 맛집을 잘 모른다. 가족끼리 외식을 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
가끔 외곽으로 나가서 장어를 먹는 것이 우리 가족의 유일한 외식코스였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아프기 전 일이다.
외식을 하지 못했던 건 순전히 엄마 때문이다.
식당을 예약해 두고도 집에서 먹자는 엄마의 고집 때문에 취소하기를 여러 번.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외식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먹는 밥이 맛이 없다는 건 아니다. 몇몇 메뉴를 제외하고 그 어떤 식당보다 엄마의 집밥이 훌륭하다. 다만 가끔씩은 다른 사람이 해준 음식도 먹게 해 주고픈 마음이 있을 뿐이다. 아버지가 입원한 지 1년이 지났다. 혼자 지내는 엄마는 대부분 혼밥을 하고 있다. 밥 맛이 없을 게 뻔하다. 그래도 그 시간을 적응해야 한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한 달이 될 무렵부터 나는 엄마의 자립을 걱정하고 고민했다. 엄마가 어떻게 남은 인생을 보내야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 계획을 짜주고 싶었다.
일단 집부터 팔고 혼자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구하고 심플하게 살면서 문화센터를 같이 알아보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집을 계속 치우고 있었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대하면서....
그동안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나는 엄마에게 '밥은 먹었냐'를 자주 물어보고 있다. 할 얘기가 '밥 먹었냐' 밖에 없나라고 의문을 가졌던 그 지겨웠던 말을 엄마에게 똑같이 하려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
도착 30분 정도 남기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 후면 도착할 거 같은데 집에 잠깐 올라갔다 올 거니까. 미리 나와 있을 필요는 없어. 그래도 준비는 해둬. 짐만 두고 나가면 되니까.
-응. 알았어. 일단 와.
전날 미리 엄마에게 줄 미역국을 끓여두었다. 그리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레트로트 음식도 몇 개 챙겨 가는 길이었다. 집에 들러 냉장고에 음식만 두고 점 찍어 둔 중국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아내와 나도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는 것이라 슬슬 군침이 돌고 있었다.
-오늘은 짜장, 짬뽕시켜서 나눠먹지 말고 짜장 시켜서 각자 먹자고.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탕수육 정도만 시켜서 같이 먹자.
-근데 여기 유니짜장도 있어. 삼선짜장? 간짜장? 아님 그냥 일반? 고민이네.
-큰일이다. 갑자기 너무 배고프잖아!!!
아침을 먹지 않는 아내와 나는 평소 11시 즈음 첫끼를 먹는데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났으니 배가 고픈 것도 당연했다. 오랜만에 먹는 짜장면이라 더욱 설렜다. 곱빼기를 시키면 더부룩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급하게 액셀을 밟고 있었다.
본가에 도착해서는 아내만 먼저 올라가 짐을 두고 엄마와 함께 내려오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차를 돌려 다시 출발하기 좋은 상태로 준비를 마치고 있으면 된다. 지상 주차장을 돌아 나가려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같이 안 올라왔어?
-아니. 나는 차 돌리고 있어요. 같이 내려오면 돼. 천천히 내려와요.
-아니. 그게 아니고. 집에서 먹자고.
-엥? 무슨 말이야? 중국집 가기로 했잖아.
-아니. 이미 밥 다 해놨는데. 이거 어떻게 해.
아! 설마 설마 했지만 너무 방심을 했다. 좀 더 신신당부를 했어야 했나?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이미 밥을 모두 차려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픈 다리로 밥을 차리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이상한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게 진짜 엄마를 생각해서 화가 난 것인지 오는 내내 먹고 싶었던 짜장면을 못 먹게 돼서 화가 난 것인지 헛갈렸다. 주차를 하고 집에 올라가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좋게 얘기하자. 좋게 얘기하자.'
집에 들어가서 먼저 눈을 마주친 건 아내.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이고. 엄마. 무릎도 아픈데 또 무슨 밥을 이렇게 했어. 나 오랜만에 짜장면 한 번 먹나 했더니. 엄마 때문에 구경도 못하네.
-사 먹는 거야 맨날 사 먹잖아. 요즘 힘든데 나가서 사 먹으면 뭐 해. 집에서 먹어야 좋은 거지.
-엄마. 지겹도록 집밥 먹거든. 외식 좀 하고 싶다. 하고 싶어.
식탁에는 도토리묵무침, 짠지, 묵은지, 우거지 나물 그리고 꼬리곰탕이 김을 폴폴 내며 차려져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맞춰 엄마는 곰탕을 딱 맞는 온도로 끓여두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나는 짜장면을 잊었다.
우리는 셋이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자던 엄마는 가장 빨리 그릇을 비웠다. 당신도 기다리느라 배가 고팠던 모양.
-그나저나 이 꼬리곰탕은 뭐야?
-아버지 쓰러지기 전에 노래를 불러서 경동시장 가서 사놨던 건데 먹지도 못하고 병원 간 거잖아.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얼른 화재를 도토리묵으로 바꿨다.
-근데 이 도토리묵은 정말 찰진데. 너무 맛있다.
아는 사람에게 도토리묵 가루를 사 와서 직접 쒔다는 도토리묵에 대한 얘기로 엄마가 다시 신이 난다. 짠지도 우거지 나물도 하나같이 다 맛있다. 흔하디 흔한 콩나물도 엄마가 무치면 맛이 다르다.
-엄마 덕문에 맛있게 먹었네. 하나하나 다 맛있어. 그런데 담엔 짜장면 한번 먹자. 엄마 혼자 짜장면 먹지도 못하잖아.
-알았어. 담엔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게.
나는 엄마의 거짓말에 한 번 더 속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