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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May 22. 2024

조금 떨어져 있고 싶어서

전화하지 않았다

며칠 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간단한 인터뷰 형식의 대화를 할 일이 있었다. 그 인터뷰가 쓰일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에 대해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하긴 인터뷰라는 형식이 없었더라면 누군가의 물음에 그렇게 성실하게 답했을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그게 왜 궁금한지 날이 서서 반문했을지도 모르겠다.


질문 중에 하나가 어제 하루 종일 맴돌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최근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아버지니까.


-지금 부모님이 병원에 있거나 일찍 여윈 분들은 비슷한 답을 할 것 같다. 나 역시 아버지가 지금 병원에 입원에 계시고 다시는 아버지와 정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을 하니, 그런 후회가 되긴 한다. 왜 아버지와 더 친하게 지내지 못했을까? 아마도 지금 이 시간의 나는 그걸 가장 많이 후회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사실, 병원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한 지 2주가 넘었다. 바빠서가 아니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나는 잠시동안만이라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마음속에서 잠시 미뤄두고 있으니 실제로 아버지의 안부가 덜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잊히는 게 두려웠던 사람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뿐만 아니라 주변사람 그리고 온 친척에게 까지도 전화를 수시로 돌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부분 첫 대화의 물꼬를 이렇게 트곤 했다.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한 번을 먼저 하지 않잖아.


상대의 안부보다는 자신의 서운함을 먼저 전달하는 그 태도가 나는 싫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도 매번 똑같이 싫었던 것을 보면 마치 데인 곳에 자꾸 뜨거운 무언가가 갑자기 들이밀어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나도 잘한다고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평균적으로 잘하고 있는 편인 거 같은데 매번 서운한 말만 하는 아버지가 싫기도 했고, 한편으론 진짜로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 깊숙한 곳을 찔리는 것 같아 뜨끔하기도 했다.


-아버지. 지금 내가 막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먼저 하시면 어떻게요. 한 번을 내가 먼저 할 기회를 안 주시네.


이렇게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껄껄 웃으며 또 다른 농담으로 받아쳤을 것이고 우린 그렇게 시덥잖은 말장난을 하다가 전화를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아버지에게 살가운 남동생은 실제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늘 대치를 하는 나와 다르게 동생은 아버지의 말을 대체로 잘 들었으니까. 작은 일로 자주 다투던 나와 다르게 동생은 큰 일로 한 번씩 아버지를 무너뜨렸다.


가장 큰 일은 제사 문제였는데 아버지가 제사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는 나는 참석을 하되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동생은 아예 결혼과 동시에 참석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까진 동생의 아내는 제사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아버지는 때마다 가슴을 치며 한탄을 했다. 작은 일도 자신의 말을 거스르지 않았던 작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거부에 아버지는 화가 나고 슬프고 애가 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동생 부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일관성이 없는 그 모습이 나는 또 싫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다 지난 일이다. 동생도 어느 순간에는 지금의 나처럼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왔으면 좋겠다.)  


솔직히,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으니 편한 것도 있다. 아버지는 한 달에도 몇 번씩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전화를 했는데 나는 대부분 거절했다. 늘 아버지에게 말했다. 내가 아버지의 스케줄에 다 맞출 수 없다고 나도 약속이 있고 스케줄이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미리미리 얘기하고 날짜를 조율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해도 아버지에겐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내일 시간 되냐?'라고 물었다. 하루는 또 화가 치밀어서 그에게 한바탕 쏘아붙였다.


-매번 말해도 소용이 없네요. 나도 일이 있고 약속이 다 있다고요. 아버지가 가고 싶으면 알아서 가세요. 그리고 왜 매번 나한테만 얘기해요. 동생한테도 얘기해요. 왜 그렇게 나를 못 데려가서 안달이냐고요.


-너랑 가야지. 재미있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이렇게까지 할 말이 없게 만들다니. 아버지에게 완벽하게 K.O를 당한 날이었다. 가끔 그 말투가 생각난다. 지금 아이처럼 변한 아버지의 말투와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다시 전화해야겠다. 2주간 아버지를 잠시 접어뒀었다. 편했다. 다시 펼쳐야겠다. 아이가 돼버린 아버지를 보는 게 편치만은 않다. 그래도 어쩌랴. 이제 그 모습이 나의 아버지고 인정해야 한다.



예쁜 구두를 좋아해 나의 좋은 구두를 언제나 눈독 들이던 아버지의 발에 신겨진 고무신을 한참동안 바라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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