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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May 24. 2024

'오빠'보다는 '아저씨'

괜찮은 아저씨 되는 법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느덧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몸이 뻐근해서 움직일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마흔 중반인 지금의 나이가 싫은 것은 아니나 조금씩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때는 문득 아쉽고 슬플 때가 있긴 하다.


그래도 나는 '아저씨'인 지금이 좋다.

불만이 많고 자존심은 세고 나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며 살았던 이삼십 대를 지나 웬만한 것은 받아들이고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이 높고 나를 굳이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 사십 대가 좋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서 차분해진다는 것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내 주변만 둘러봐도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니 더더욱 작은 일에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과는 대개 대화가 힘들다.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고집이 세서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기 때문에 몇 번 상대하다가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피하게 된다.


대화하기가 힘든 사람들을 잘 생각해보면 일단 그들은 잘 듣지 않는다.

심한 경우는 상대방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말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의 표정조차 살피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뜬금없는 얘기를 갑자기 꺼내는 사람도 있다. 이 역시 듣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상대방의 얘기하는 동안 자기는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나면 한동안 조용한 곳에 혼자 있고 싶을 정도로 진이 빠진다.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친구들을 살펴 보니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월등하게 많다. 어릴 적부터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나이를 먹어가며 말이 많아진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말하기만 바쁘고 듣는 사람이 없다. 쓸데없는 말들만 허공에서 부딪히다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서로 먼저 얘기를 하려다 보니 언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대개 아저씨들이 시끄럽다. 다 듣는 연습이 되지 않아서다.


나이가 들수록 잘 들어준다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큰 재산이 될 수 있다. 잘 듣는 게 뭐가 어렵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잘 듣는 것'은 '잘 말하기'보다 더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 그저 멍하니 듣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니다.


진실된 말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람. 나의 말을 소중하게 대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경청'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경청'하는 아저씨인가를 물어보면 그런 편인 듯하다. 무거운 대화의 분위기를 가벼운 농담으로 환기시킬 수 있으며 가볍기만 한 대화의 분위기에 생각할만한 주제를 던져 자뭇 진지한 분위기로 전환시킬 수 있다.

한 두사람 보다는 여러 사람이 있을수록 '경청의 힘'은 더욱 발휘가 되는데 쉽게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게도 질문을 던져 이야기의 한 복판으로 끌어오는 흐름은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사람 없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니까 '경청'은 세심한 관찰과 관심에서 시작된다.


괜찮은 아저씨가 되기 위해 인정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더 이상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얼굴은 누가 봐도 늙수그레한 아저씨인데 '오빠라고 불러다오'라고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징그럽기까지 하다. 아저씨는 아저씨다.

그런데 아저씨가 뭐 어때서? 아저씨는 잘못이 없다. 다만 아저씨가 되면서 예의 없고, 창피한 줄 모르며, 과거에 머물러 허세만 가득한 '왕년의 오빠'들이 문제라면 문제다.

'괜찮은 아저씨'는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타이틀이 아니다. 마인드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노력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새겨두고 실천하면 되는 일이라 또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두 가지로 나뉘는 데 친구들에게 다짐을 받아내듯 얘기를 하면 다음과 같다.



내적인 것


금지사항

-상대가 얘기 중인데 말 끊기 금지 (몇 번을 얘기해도 과하지 않은 경청!!!)

-내가 옛날에는 ~ 으로 시작하는 확인도 안 되는 얘기 금지 (옛 무용담은 아무도 관심 없다)

-어설픈 쎅드립, 어설픈 MZ 단어 금지 (웃기지도 않고 분위기만 어색해지기 일쑤)

-상대가 원하기 전까지 반말 금지 (상대방은 '아저씨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음)

-담배 아무 데서나 피지 않기 (담배꽁초도 아무 데나 버리지 말자.)


권장사항

-조용히 말하기 (어렵지 않아요. 한 명씩 말하면 돼!)

-공공장소에서 뒷사람 들어올 때까지 문 잡고 있기 (아저씨의 매너는 세상을 바꾸지.)

-사소한 칭찬하기 ('오늘 셔츠 멋진데~'정도의 칭찬으로도 상대방을 하루종일 기분 좋게 만들 수 있지.)



외적인 것


금지사항

-스냅백 금지 (친구들아 근데 이거 진짜 왜 쓰는 거냐? 폴로캡 어두운 색 하나 사서 주구장창 쓰고 다녀도 스냅백 보단 백배 낫다)

-찢어진 청바지 금지 (아무리 비싸게 샀어도 이제는 좀 버리자.)

-명품 로고가 크게 새겨진 티셔츠 금지(명품로고 패턴 티셔츠도 마찬가지.)

-셔츠 깃 세우기 금지 (목이 탈까 봐 두려우면 차라리 선크림을 바르자.)

-블루 컬러나 레드 컬러가 강렬한 보잉 선글라스 금지 (선글라스는 디테일이 없는 기본이 최고)

-아무 데서나 골프채를 들고 있는 냥 골프 스윙 금지 (마임 연습을 하면 신기하게라도 바라봐 줄텐데.)

-발목양발 금지 (슈트에 발목양말도 보기 싫지만 반바지에 발목 양말도 !)

-트레이닝복에 파우치백 금지 (들고 다닐 게 많으면 에코백 추천!)



권장사항

-좋은 스킨 쓰기 (싸구려 스킨은 아저씨 냄새의 원인)

-깨끗한 신발 신기 (아저씨의 더러운 신발은 빈티지가 아니라 그냥 게으른 것)

-무채색의 옷을 기본으로 입기 (일본 아저씨들이 멋진 이유)

-배는 나오되 가슴은 나오지 않게 관리하기 (아침에 30분 정도만 스트레칭해도 어느 정도는 군살 관리 가능)

-고전 다시 읽기 ('자기 계발서'만 읽는 젊은 사람들에게 고전을 추천할 줄 아는 아저씨는 좀 멋짐)

-때때로 수염 기르기 (잘 관리된 아저씨의 수염은 이십 대 남성의 수염보다 더 자연스럽지.)

-악수하기 (코로나 이후로 악수하는 습관이 없어지긴 했는데 악수는 꽤 어른스러운 인사법)



글로 읽으면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습관으로 몸에 익히기 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나는 '개저씨'라는 말이 싫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나 역시 종종 긴장이 풀려 나오는 개저씨스러움이 있으니까. '개저씨' 말고 '아저씨'가 되자. 유행을 따르지 않지만 자기만의 멋이 있고 먼저 말을 걸지는 않지만 말을 걸면 유려하게 대화를 이끌고 술담배에 찌든 냄새보다는 중후한 향을 풍기는 아저씨.

그런 아저씨가 많아졌음 좋겠다.


단순한 디자인에 컬러만 포인트! 옷입기가 재밋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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