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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May 21. 2024

장례식에 다녀왔다

쉽지 않은 위로의 말

TV를 함께 보던 아내가 갑자기 거실로 나가 심각한 통화를 했다.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 같았다.

아내의 친한 후배, D의 시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가족들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걱정이 돼서 찾아갔는데 집에 쓰러지신 채로 발견된 모양이다. 그러니까 병원이 아니고 집에서 돌아가신 어른을 마주한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어떤 감정이었을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많이 놀라고 무서웠을 것이다.


아내의 후배, D는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있고 아내가 없이도 가게에 종종 찾아와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내와 잘 지내는 사람이라 나 역시 마음이 쓰였다. D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남편과도 가게에 자주 놀러 왔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이 우리 가게에는 먼저 가자고 말한다고 했다. 남편은 185cm가 넘는 큰 키에 덩치가 있는 편이었는데 키가 작은 D와 함께 나란히 서 있으면 키도 몸도 더 커 보였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주고받는 건 눈인사 정도와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정도의 상투적인 인사였지만 그 인사도 몇 년간 꾸준히 주고받다 보니 조금씩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적어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구나.'


때로는 그 정도의 신뢰만 있으면 굳이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 대한 벽이 낮아지는 법이다.

휴일이었지만 저녁 여섯 시에 짧은 미팅이 예정돼 있었던 나는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함께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건 아홉 시가 다 돼서였다. 평소 같았으면 미팅에서 한 얘기를 아내와 함께 술안주 삼아 얘기했겠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아내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끝낸 상태였고 나 역시 조금 앉아 쉴 새도 없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사뭇 진지했다. D와 함께 소속되어 있는 모임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까지 고민했다.


-일단 알리고 마음을 표현할지 말지는 소식을 받는 사람 마음이지. 그런데 일반적으로 '시부모상'까지는 잘 알리지 않는 편이긴 하지.


나의 말에 아내도 그 정도는 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내의 고민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D는 모임 사람들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진심으로 참여했으며 D가 없으면 모임의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들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썼기 때문에 아무리 '시모상'이라도 알려야 하지 맞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 후, 아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런 걸 재차 묻지 않는 편이다.


택시를 타니 10분이 조금 넘게 걸려 병원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가 얘기했다.


-나는 많이 안 해봐서 그러니까 자기가 알아서 예를 갖춰줘.


장례식장 현황판을 보니 아내의 후배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옆에는 남편의 이름. 그게 다였다. 돌아가신 분의 이름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 줄을 바꿔 가며 적혀있는 다른 호실의 이름과 비교되며 조금 외로워 보였다.

D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고 지친 그는 눈은 아주 잠시동안 '고맙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나는 그걸 보았다.


아내가 부탁한 대로 향을 피우고 헌화를 했다. 돌아가신 분의 영정을 잠시 동안이나마 진지하게 바라봤다. 뒤로 물러나 아내와 함께 절을 두 번 했다. 절을 하는 동안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염원을 보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분이지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절을 마치고 상주들과 다시 맞절을 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 아내는 D의 손을 잡으며 안았고 나는 D의 남편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동안 눈빛으로만 인사를 주고받던 우리의 첫 스킨십이었다.


-놀라셨겠어요. 마음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길게 할 말도 없었지만 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만 전달하면 될 일이다. 아내가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동의했다. 상갓집밥이 맛이야 있겠냐만은 상갓집밥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니까. 그 밥은 고인의 답례를 받는 일이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 기회를 주지 않으면 고마움을 덮는 미안함을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밥을 먹고 나오려고 한다.

마지막 고인이 가시는 길에 미안함을 가지고 가지 마시라고.....





장례식장에서 나와 집까지 걸어왔다. 밤 열 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있는 엄마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남일 같지가 않았다.

나란히 걷던 아내가 얘기했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면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 주면 되는 거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은 서로 알 때가 있잖아. 자기 마음을 알겠는데. 그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참 이상해.


-뭐가?


-이럴 땐 참 어른 같단 말이야..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풀렸고 우린 조금 더 가까이 붙어 걸었다. 낮에는 무척 더웠는데 어느덧 시원해졌다. 예를 갖추느라 입은 검은 양복 자켓 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촉촉하게 젖어있던 셔츠가 뽀송하게 마르며 상쾌해졌다. 밤바람이 시원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복을 빕니다’는 고인이 사후세계에서 복을 받으라는 얘기다. 상투적이지만 참 적절한 인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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