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명찬 May 17. 2024

내 몸을 알아가는 것

족저근막염의 시작

어제 잠을 자기 전 아내와 서로 아픈 곳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탄하며 말을 했다.


-아휴. 언제 이렇게 나이를 들어버린 거야.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진심이 듬뿍 담긴 말이었다. 진짜로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린 것일까? 언젠가부터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발목과 무릎이 아팠던 아내는 상태가 조금 좋아지자 잇몸이 부어 치과를 다니기 시작했고 몇 달 전까지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했다가 조금 호전됐던 나는 다시 슬슬 족저근막염의 초기 증상이 다시 시작된 듯하다. 더 자고 싶어도 다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어 새벽같이 잠을 깨는데 이 뻑뻑한 느낌을 스트레칭으로 없애는 데까지만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푹 자지 못하니 피곤한 것은 당연하고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기분도 내내 좋지가 않다.


적게 먹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고 있으나 한번 무너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다. 지금이야 몸이 아픈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몸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면 한숨 자면 낫을 것이고, 다리가 아프면 조금 주물러 주면 낫을 것이다. 다 쉬면 몸이 알아서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가게를 시작한 후, 1년이 지나자 발바닥이 조금씩 저려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나와 첫 발을 내딛을 때가 특히 그랬는데 발바닥 전체에 강한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 역시 무리를 해서 그러는 가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보다 걷는 것을 줄이고 많이 앉아 있다 보니 실제로 조금씩 좋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좋아진 것이 아니었다. 고통이 크다가 조금 저린 정도로 통증이 줄어드니 그 상태를 기본값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몇 년간 아픈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


족저근막염이 심해져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상황이 돼버린 건 6개월 전이다. 걸을 때는 그나마 견딜만했는데 음식을 하거나 설거지를 오래 하며 두발을 땅에 가만히 딛고 있을 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제 자리 걸음을 계속 걸었다. 그래야 주저앉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었다. 뜨거운 불이 타오르는 땅바닥에 두 발을 디디면 안 되듯이 나는 발을 번갈아 가며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보면 꽤나 부산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때 살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정형외과를 소개받아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몇 해전에 아팠을 때도 정형외과를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때는 평범한 전기치료와 진통제만 처방받고 관두었기 때문에 병원을 가도 큰 차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새로 소개받은 병원의 선생님은 족저근막염 치료에 꽤 진지했다.

우선 발바닥에 잉크를 찍어 발모양을 검사했다. 그동안 많은 정형외과를 다녔어도 발바닥 검사는 처음이었다. 결과는 '고아치 증후군'.

나는 평균보다 발의 아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내 몸에 대해 이렇게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 한심스러웠다. 평발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발바닥 아치가 높아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고아치 증후군'은 대부분 '족저근막염'을 앓는다고 하니 나의 발바닥 통증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그날부터 바로 충격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충격파 치료가 아플 것이니 맘을 단단히 먹으라고 했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아픔이었다. 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아픔이 아니라 소리를 먹어야 하는 아픔이었다. 광대가 당길 정도로 눈을 꽉 감고 어금니를 깨물어 가며 충격파 치료를 받았다.


3개월 간, 충격파 치료를 총 10번 정도 나눠서 받다 보니 어느새 발바닥이 좋아지고 있었다. 충격파 치료도 치료지만 재활을 아침저녁으로 운동선수처럼 열심히 했다.


-많이 좋아졌네요. 이제 두 달 후에나 한번 뵙죠. 그때 가서 더 치료할지 말지 보자고요.


발바닥이 좋아지니 모든 게 달라졌다. 몸의 피로감도 덜하고 오래 걸어도 발이 가벼웠다. 아프지 않은 게 당연한 건데 늘 통증을 달고 살다 보니 정상이 비정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딱 두 달이 지나니 다시 발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재활운동을 게을리하고 무리를 하며 운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아픈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야 할 때다. 꾸준한 재활 운동을 통해 통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인간 수명을 팔십으로 봤을 때, 이미 반 이상을 써 온몸이다. 자동차로 치면 10만 키로가 넘어 슬슬 한 두 군데 고장이 나고 부품을 갈아 낄 때도 된 것이다.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컨디션이 결정된다.


나는 아픈 사람이다. 아마도 앞으로는 더 아플 것이다. 아플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슬프긴 하다. 그래서 더 잘 준비해야 한다.


내 몸을 알아가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의 몸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더 늦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프지 않고 오래 걷고 싶다





이전 21화 오늘, 생각나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