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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May 31. 2024

그가 눈을 떴을 때

새겨지는 기억

도착했을 때,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몇 번의 흔들림에 세상을 처음 본 아이처럼 그의 눈이 열렸다.


눈앞에 있는 나를 보고 나의 아내를 보고

그가 놀랐다. 받고 싶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 마냥

그의 눈에 눈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감격에 겨워 웃는다.

감격에 겨워 운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늘에 묻는다.

어쩐 일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놀라고, 기쁨에 가득 찬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하고 싶은 말이 그득하게 찬 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3일 전, 재활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왔습니다. 어떤 날은 나를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어떤 날은 나를 잘 알아보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날은 나를 아주 잘 알아봐 주었습니다. 함께 갔던 아내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잘 기억해 주는 게 이렇게 감격스러운 일인지 잘 몰랐습니다.


며칠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아버지의 그 순수한 눈동자가 생각나서 맘이 잘 안 잡혔습니다.

예전에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운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쉬고 싶은데 쌀을 사러 가자는 거였죠. 전화 한 통이면 집까지 배달이 오는데 억지로 나를 끌고 가려는 게 귀찮아서 싫은 티를 팍팍 내가며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 보이는 매우 더운 날이었습니다. 에어컨을 틀어도 차 안의 공기가 쉽게 시원해지지 않았습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창문을 활짝 열고 신경질적으로 운전을 했습니다.

그때, 앞 유리가 더러운 걸 조수석에서 본 아버지가 세차 좀 하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가뜩이나 귀찮은데 덥고 잔소리까지 들으니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엑셀을 미친 듯이 밟고 워셔액을 반복적으로 뿌렸습니다.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고 워셔액을 뿌리니 차 안으로 거품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말없이 눈을 비비기 시작했습니다. 쌀을 사러 도착했을 때 아버지의 눈은 새빨갛게 변해있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며 화장실에서 눈을 씻고 나왔지만 여전히 눈병 걸린 사람처럼 새빨갰습니다.


아주 가끔, 혼자서 운전을 하다 보면 그때 조수석에서 눈을 비비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게 뛰어서 한숨이 자꾸 나옵니다. 며칠 전 눈을 뜬 아버지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각인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몇몇의 기억들은 잊을 수도 없게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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