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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Jun 05. 2024

엄마와의 소풍

 엄마의 걸음마

어제는 엄마와 점심을 먹고 왔다. 혼자서 지내는 엄마가 신경이 쓰여 전화도 자주 하고 밥도 같이 먹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집에서 의정부까지 거리가 있다 보니 자주 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1년 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엄마는 내내 혼자 지내고 있다. 게다가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에 당신도 양쪽 무릎 수술을 하게 돼서 요즘은 걷는 것도 쉽지 않다. 열심히 운동하면 좋아질 것이라 하지만 천천히 절룩이며 걷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게 영 편치 않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걸으면 조금 앞서서 걷는다.


물론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지긴 한다. 한 달 전보다 지금의 걸음걸이가 훨씬 자연스럽다. 인공관절이 빨리,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통증 없이 자연스럽게 걸을 때가 되면 함께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호기심이 많은 엄마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집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면 의정부에 점심때에 맞춰 도착할 수 있으니 9시 반에 일어나 엄마와 함께 먹을 점심 준비를 했다. 이틀 전, 도시락을 싸서 엄마의 집 근처에 있는 중랑천으로 소풍을 가자는 아내의 제안이 있었고 나는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다.

엄마의 집에 가면 엄마가 늘 밥을 해준다. 아직 움직임이 불편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는 게 우리 역시 불편한 일이라 나가서 사 먹자고 해도 엄마는 말을 듣지 않는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통화를 할 때는 어느 식당에 가자고 분명히 약속을 해 놓고도 막상 도착하면 식탁에 다 차려놨으니 무조건 올라오라고, 그럼 다 차려 놓은 걸 어떡하냐고 얘기하는 엄마다. 매번 속고 속이는 말다툼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엄마를 받아들였다. 엄마 역시 자식에게 차려주고 싶은 밥상이 있을 테니. 엄마에게 나가자고 고집을 부리는 대신 차려준 밥을 잘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며칠 전 전화 통화를 하면서는 나박김치를 담가달라고 부탁도 했다.


"고춧가루 넣고 빨갛게 얘기하는 거지? 무 넣고 오이 넣고 얼마 전 마트 갔더니 열무가 부드러워 보이던데 열무도 넣어줄까? 너 여린 열무 좋아하잖아."


최근에 했던 통화 중에 엄마의 목소리가 가장 활기가 넘쳤다. 엄마는 열무의 생맛이나 무의 생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김치가 최대한 늦게 있도록 내 몫의 김치를 따로 보관해 두는 사람이다.


아내는 김밥을 싸고 나는 잡채를 볶았다. 엄마를 위해 아침부터 둘이 복작복작대고 있으니 이상하게 뭉클했다. 귀찮을 만도 한데 진심으로 도시락을 준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세수도 하지 못하고 머리도 부스스한 채로 정성스레 김밥을 말고 있는 아내가 예뻐 보였다.


의정부에 도착하기 10분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엄마는 이미 밖에 나와 햇볕을 쬐고 있었다. 도시락을 싸서 왔다고 하니 나왔을 것이다. 사 먹자고 했으면 집에 한 상을 차려 놓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

언젠가 도시락을 먹자고 얘기를 하고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정부 집 바로 앞에 있는 중랑천으로 갔다. 작년에 천변으로 데크가 깔리더니 커다란 나무 그늘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사람들이 쉴 수 있게 해 둔 것을 봐뒀었다. 엄마 집에 올 때마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급하게 가게로 가다 보니 들를 시간이 없었다.


엄마와 함께 걸었다. 원래라면 5분이면 도착할 텐데 15분 정도 걸렸다. 엄마의 걸음은 세 배 느려졌다. 좋은 자리에 앉아 있던 분들이 마침 일어나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도시락을 나눠 먹고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마셨다. 엄마가 얘기했다.


"여기 이렇게 좋네. 멀리서 보고 맨날 와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는 건 처음이야. 나는 여기까지는 오지 않고 저쪽에서 쭉 걷거든. 혼자 와서 앉아 있는 사람도 많네."


엄마는 여전히 혼자 있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혼자서 걷기는 해도 혼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자신이 쓸쓸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란도란 쉬는 공간에는 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년 즈음에는 아버지랑 같이 왔으면 좋겠다."


소원처럼 말한 말에 엄마가 대답을 했다.


"그러게."


그때 즈음 엄마의 걸음은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걸음은 여섯 배, 아니면 더 많이 느릴 것이다. 우리 가족의 평균 걸음은 자꾸 느려지는데 시간은 참 빨리 간다.



유럽같은 중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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