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를 보내며
미뤄두었던 드라마를 보았다
며칠째, 드라마 '사랑의 이해' ost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주에 마지막 회를 다 보고 끝냈지만 여전히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느린 이야기라서 그런지 빠져나가는 것도 다른 때보다는 조금 더 걸리는 모양이다.
방영 당시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은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본 드라마는 아니다. 주변에 물어봐도 본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드라마가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사랑의 이해'를 처음 접한 건 방영 당시 채널을 넘겨 보다가 본 한 장면이었다. 어두운 골목에 남녀가 더 이상을 거리를 좁히지 말아야 할 것을 약속이라도 한 마냥 떨어져 선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멈췄던 채널은 다시 돌아갔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지 그렇게 갑자기 중간부터 치고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 넷플릭스에 올라온 '사랑의 이해'는 언젠가 한 번쯤 보고 싶은 드라마이긴 했지만 1화를 시작하는 게 오랫동안 망설여졌다. 드라마는 한번 보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 고민의 고민이 거듭되다가 결국 두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영화를 보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사랑의 이해'가 머릿속에 남아 있던 건 순전히 드라마 제목 때문이다. 어떻게든 눈길을 끌어야 하는 요즘 드라마의 제목과는 다르게 단순하고 담담한 제목을 가진 이야기는 그 역시 군더더기가 없을 것이라 예상됐다.
안동으로 가는 KTX안에서 나와 아내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다. 예매할 때, 표가 그렇게 밖에 있지 않았던 것. 나는 미쳐 마무리를 짓지 않는 글을 쓰고 있었고 아내는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보던 아내가 나에게 만족스러운 눈빛을 지으며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는데 그녀가 보고 있던 드라마가 바로 '사랑이 이해'.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시작되는구나 싶었으니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단막극이면 끝날 이야기를 큰 사건도 없이 16부작으로 길게 늘여 놨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자꾸 엇나가고 망설이고 오해하는 두 남녀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공감했다.
제목에는 드라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랑의 이해'는 두 남녀가 사랑을 함에 있어 이해(利害), 즉 이익과 손해를 따지다가 결국 서로를 이해(理解)하게 되는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려면 두 사람이 같은 결에 올라타야 한다. 그 흐름에 자의로 올라타던, 혹은 타의로 휩쓸리던 간에 마음을 맡기게 되면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다.
수영(문가영)과 상수(유연석)는 같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순간을 지나치며 세월을 보낸다. 시간이 지나 운명이 다시 그 둘을 만나게 하긴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손을 잡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한 때의 좋았던 기억을 가진 채로 서로를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랑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완성되기도 하니까. 우리도 수많은 연을 지나치며 지금의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니까.
아주 오랫동안 수영의 눈빛이 기억날 것 같다. 금세 눈물이 차오르던 그 눈을, 애정하는 사람을 옆에 두지 못해 안타까움이 그득한 그 눈을, 옛 연인의 성장을 마주하며 애틋하게 칭찬하던 그 눈을, 아주 가끔 배시시 웃을 때 반짝이는 그 눈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천천히 보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마음속에 두고 천천히 넘겨보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