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을 다녀오며
H 누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며칠 전 생일 선물을 손에 들고 가게에 갑자기 방문해서 고마운 마음이 유지되고 있던 차에 들은 소식이라 마음이 더 쓰였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반갑지만 반가움을 최대한 낮추며 눈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고인에게 예를 드리기 전에 영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정한 얼굴이 H 누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누나에게 '닮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을 싫어할지 좋아할지 모르니 말을 최대한 아끼는 게 좋다. 침묵의 어색함을 못 이기고 건네는 말은 때때로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소파에 앉아 잠들듯이. 평온하게 돌아가셨다고는 하나 예기치 않은 일이었으니 가족들에겐 사고다.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앉아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상가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고인의 가족은 오는 손님들 챙기느라 마음을 가만히 추스르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똑같이 찍어내는 결혼식 절차도 문제지만 장례식 역시 고쳐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두 알고 있지만 고치지 않는 건 가뜩이나 마음이 혼란스러운데 행사를 기획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때부터 굳혀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전통적이지도 않고 행사의 의미보다는 형식만 있는 듯한 현재의 장례문화에 불만이 많다.
우선 복도에 줄지어 서 있는 화환은 볼 때마다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복도가 좁은 장례식장이면 마지막으로 고인을 뵈러 가는 길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화환대신 고인의 다양한 사진을 전시하듯 설치해 두면 어떨까? 사진이 넉넉하게 있어 고인의 갓난아이 시절부터 최근의 모습까지 차례대로 전시를 해둔다면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요람부터 무덤까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갑작스러운 사고에는 준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장례식에서는 준비해 볼 만하다. 매번 보는 똑같은 화환대신 고인의 지나온 삶이 전시된 복도를 지나 만나는 마지막 영정사진은 방문한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장례식은 고인을 기억하는 자리인 만큼 그런 효과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지금의 장례 절차는 상조회사가 일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맞춰진 행사가 아닐까?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J형이 함께 가면 안 되겠냐는 부탁을 했다. J형 역시 차를 가져오긴 했지만 술을 마셔서 대리 기사를 불러야 하는데 다음날 장례식장에 다시 올 테니 대리기사를 불러 가는 것보다 내 차를 타고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집도 마침 근처이기도 해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는데 사실 난 알고 있었다. J형이 한잔 더 마시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차를 타자마자 주소를 묻는 나에게 J형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일단 집으로 가요. 차를 대고 집 근처에서 맥주 한 잔만 더 하면 어떨까요? 거기서 전 택시 타고 가면 멀지도 않고요."
예상 해던 일이라 그러자고 했다. 전날 캠핑을 하고 와서 피곤하긴 했지만 어쩐지 J형의 제안은 한칼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집 근처 맥주집에서 우린 장례의 절차에 대해 얘기했다.
H 누나와 자매에 가까운 J 형이어서 발인에 대해 내가 물었다.
"발인에도 가시죠?"
"아니요. 저는 발인은 못 가겠어요? 화장터에 들어가는 것도 보기 싫고요. 제가 꼭 참석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일반적으로 형과 누나 정도의 사이에는 참석을 하니까 물은 것뿐입니다. 참석 여부는 본인 맘이죠."
작은 일도 궁금증이 생기면 그냥 넘기는 법이 없는 J 형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발인이 도대체 뭐죠? 그럼 당신은 발인에 참여하나요? 아니에요? 그럼 나에게 왜 가냐고 묻는 거예요?"
"음. 그게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긴 하지만 말씀드리자면 발인을 가면 보통 유가족이 아주 많이 울죠. 살면서 그렇게 힘들 수가 없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 모습을 아무에게나 보이고 싶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발인은 보통 직계 가족들이나 산전수전 함께 겪은 친구들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유족을 아끼는 마음으로 발인에 함께 하고 싶어도 가주지 않는 게 때때로 예의라고 생각해요."
"생각이 너무 많네요. 그냥 귀찮으니까 안 가는 건 아니고요?"
"음. 귀찮은 건 아니고요. 형님보다 한 단계 더 생각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게 다 옳다는 건 아니고요. 사람마다 생각의 단계는 다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저보고 발인에 가라는 거군요."
"아닙니다. 그건 형님 마음이죠."
그날의 술자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공격적인 질문을 많이 하지만 나는 J 형이 싫지 않다. 질문하지 않고 혼자 판단하는 사람보다 질문하고 싸우고 이해하고 오해를 푸는 편이 훨씬 좋다. 어떤 면에서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J 형이 어른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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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에 참여하지 않는 나는 3일 내내 장례식장에 있었던 Y 형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에 한 가지를 물었다.
"그런데 J 형 발인에 왔었어요?"
"음. 그럼. 3일 내내 장례식장을 일찍부터 와서 지켰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J 형을 잠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