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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Apr 03. 2024

단정하게 살고 싶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

마흔 중반에 다다르자 여기저기 살이 찌기 시작했다. 1킬로씩 찌기 시작한 살은 어느덧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운동을 시작 하긴 했는데 이 놈의 살이 도무지 빠지지 않는다. 근육이 많아서 잘 빠지지 않는 것이라 자위하기엔 옆구리가 너무 두툼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산책을 한다. 평균 10km 정도를 걷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세끼 모두 챙겨 먹지 않고 쌀밥을 먹는다 치면 반공기만 먹는다.

이러면 어느 정도 빠져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니다. 그나마 이렇게 해야만 지금의 몸무게가 유지되고 더 찌는 걸 막을 뿐이다. 나잇살이라는 게 참 고약하다. 나이가 들며 깊어지는 삶의 무게만큼 살의 무게도 늘어나는 듯하다.


내가 바라는 건 복근이 있는 근육질의 몸매가 아니다. 마르지 않고 살집이 적당히 있지만 그게 늘어지지는 않은, 그러니깐 한눈에 봐도 단정해 보이는 몸매다. 그러려면 일단 아저씨들의 나쁜 습관들이 몸이 고스란히 보이는 군살이 없어야 한다. 바지를 입었을 때 뱃살이 위로 튀어나오지 않아야 하고 얇은 티셔츠를 입어도 가슴이 심하게 쳐진 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


군살을 방지하려면 운동뿐이다. 뛰거나 걸어야 하며 최소한 팔 굽혀 펴기 정도는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나이에 비해 젊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이다. 물론 듣기 좋은 말이지만 그에 연연하지 않는다. 젊어 보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니 큰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내가 만족해야 한다. 나는 아직까지 건강한 생각과 몸을 지닌 사람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내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단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꼭 몸매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정함은 군더더기가 없음에 있다. 하지만 일단 나이가 들면 단정하게 굴려고 하지 않는다. 각자 살아온 경험이 많다 보니 선입견의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군더더기를 잘 떼어낸 어른들은 표정부터 다르다. 관계하되 충고하지 않고 좋은 단어를 잘 골라서 말을 하되 더 잘 듣고 애정이 많지만 연연하지 않는다.


매주 수요일은 서울 시내를 혼자 걸어보고 있다. 어디로 갈 건지만 정하고 나머지는 계획이 없다. 걷다가 만나는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가끔은 혼술을 하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학창 시절의 등굣길을 걸어보았다. 그때 즐겨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서 걸으니 사춘기의 나와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어른도 없었지만 빨리 그 시기가 지났으면 했던 것 같다.


마흔이 넘으면 어른에 속하는 걸까? 인생의 반을 살아낸 것인데 신체적인 절정은 이미 지난 것인데 어른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의 시간을 살고 있나?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작은 일에 화가 나고 이해심이 좁으며 충동적으로 행동을 한다.

나이가 들며 가장 노력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을 품으려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마음 가짐이 있어야 하는데 중요한 건 그 대상이 내가 아니고 타인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깐 '나는 그럴 수도 있다'라는 자기 방어적인 자세 말고 '당신은 그럴 수도 있다'라는 포용적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길게 늘어트리는 잔소리보다는 '그럴 수도 있죠. 나도 그때는 그랬었어요'라는 짧은 한마디가 위로가 더 많이 된다. 어차피 해답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셈이니....


나에게 단정하게 살기란,

살이 찌지 않게 노력하고 깨끗한 옷을 입으며 게걸스럽게 먹지 않고 식당에서 시끄럽게 얘기하지 않으며 술집에서도 비틀거릴 정도로 취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고 고민해서 대답해 주며 작은 일에 쓸데없는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 팀원으로 있었던 직원이 나가면서 편지를 전해준 적이 있다.


-참 지루했던 회사 생활에서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래도 팀장님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제게 팀장님은 어른으로서 많이 노력했던 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어른으로서 칭찬을 처음 받는 것 같아 나는 그 편지를 받고 한동안 먹먹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어른답게 단정하게 살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산책길에 만난 2024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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