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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Apr 05. 2024

찝찝한 마음

나는 여전히 화가 많다

이틀 전, 영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요즘 늘 그렇듯 손님이 많지 않은 날이었고 다가오는 월세입금일과 카드결제일을 계산하며 고민을 하고 있던 밤이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장사는 좀 어때?

-뭐. 똑같지. 넌 어떠니? 좋은 소식 없니?

-그냥 나도 똑같다.

-야. 조금이라도 좋은 소식 있음 좀 전해주라. 대리 만족이라도 하게.

-그러게. 난 별거 없는데. 너라도 재미있는 일 있음 좀 말해줘.

-나라고 별 거 있겠냐? 담주에 낮술이나 한잔 하자.

-그러자고.


특별한 소식이 없는 우리는 2분 만에 전화를 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통화하는 건 그래도 아직 우리가 통화하는 사이라는 걸 의무적으로 갱신하는 듯하다.


밤 10시, 차가 평소보다 많지 않았다. 1년 사이 건물에 LED광고판이 많이 늘어난 홍대 거리는 밤에 더 번쩍거린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손님을 태우지 못하는 택시는 줄지어 있고 버스는 텅텅 비어있다. 코로나 한창때보다 사람이 없다는 그냥 사람들이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와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내 기분을 살피던 아내는 핸들을 잡고 있는 나의 오른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뜻. 손님이 없었던 날, 집으로 가는 길은 매번 우울하다. 자영업 5년 차인데도 그 마음이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손님이 많은 날은 몸이 힘들어서, 없는 날은 마음이 힘들어서 괴롭다.


우린 말이 없었다. 매번 틀던 음악조차 틀지 않고 양화대교를 건넜다. 양화대교 남단 교차로에서 영등포로 가는 노들길로 빠져나가기 위해 끝차선에서 속도를 줄이며 차를 몰고 있었다. 교차로 진입 전에 보행신호가 하나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그곳을 지나지만 매일같이 조심한다. 신호를 확인하고 속도를 높이려는 순간, 좌측 차선에 있던 차 한 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깜빡이를 켜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그곳에선 껴들어서는 안 되는 곳이라 너무 놀라 순간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놓았다. 뒤차가 바싹 붙어 있었더라면 100% 사고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뭔가 툭 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엑셀을 미친 듯이 밟았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론 경적을 계속 울렸다. 핸들을 잡은 왼손가락으로는 하이빔을 총을 쏘듯 쏴대며 그 차를 따라갔다. 나는 미쳐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아내는 내 눈을 봤다. 하지 말라며 오른손을 어찌나 쥐어 쫬는지 하얗게 실선이 갈 정도로 피부가 긁혔다. 아내가 말리면 말릴수록 나는 더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엉덩이를 살짝 들어서 까지 엑셀을 더 강하게 밟았다. 끼어든 차 바로 옆 차선에 붙어 창문을 열었다. 그 차의 창문도 열렸다. 전혀 미안한 표정도 없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운전자를 보니 나도 모르게 쌍욕이 터졌다.


-야이!!!! 개ㅅ어ㅏㅣㅁ너 씨ㅂㄴ니


그렇게 한 사람을 정확하게 지정해서 소리치듯 욕을 한 게 언제였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목이 쉬듯 소리를 질렀고 그 차에 신경 쓰느라 앞을 정확히 보지 않고 운전을 했기 때문에 차가 흔들거렸다. 아내는 옆에서 불안해하며 '하지 마'라는 말만 반복했다. 창문을 올렸다. 속도는 느려졌고 차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욕을 시원하게 내질러서일까? 나는 조금씩 화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내와 난 다시 말이 없었다.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 먼저 아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아?

-응

-그래. 그럼 됐어. 집에 가서 씻고 자자.


아내는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샤워를 평소보다 조금 오래 했다. 씻는 동안 내내 찝찝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화를 내서 내가 얻은 건 무엇인지, 결국 내 옆에 타 있던 사람만 더 불안하게 한 건 아닌지.

샴푸를 세 번 했다.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아주 사소한 얘기를 하듯 아내에게 말을 했다.


-오늘 그렇게 운전해서 미안해.

-뭐라고??


분명히 들었을 텐데 되묻는 걸 보면 지나가는 말이 아니고 정확한 말과 태도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머리를 털던 수건을 접어 세탁기에 걸어두고 아직 덜 마른 머리를 정돈한 후 아내의 앞에 서서 말했다.


-오늘 그렇게 운전해서 미안하다고 불안했지?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서 미쳤었나 봐.

-아니야. 나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자기가 흥분하니까 진짜 사고 날 것 같았어. 그게 나는 무서웠지.

-그러게. 요즘 참 많이 참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화가 이렇게 많냐?

-아니야. 그 새끼는 욕먹을만했어.


좀처럼 욕을 하지 않는 아내의 입에서 나온 '새끼'란 말에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눈물도 조금 새어 나왔다. 머리를 다시 말리는 냥 세탁기에 걸어두었던 수건을 다시 들어 머리를 말리다가 얼굴을 감쌌다.


나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났던 것일까?

화가 나 있던 차에 그 사람이 보였던 것일까?


오늘은 오전에 아내와 안양천을 걷기로 했다. 벚꽃이 만발했기 때문. 주말에 절정일 것 같긴 한데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을 테니 오늘이 딱이다. 벚꽃을 보고 나면 궁금했던 콩비지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을 예정이다.

맛있을 것 같다. 손을 꼭 잡고 걸어야겠다.

그 사람이 불안하지 않도록


어느덧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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