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16일 차
이테로데라베가~프로미스타(≈14.09km)
숨 막힐 정도로 눅눅한 방이었다. 역시나 빨래는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그래도 새벽의 바깥 공기는 상쾌했다.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외려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먼 닭 울음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방 안의 모든 순례자들은 이미 다 일어났다. 사과 하나로 일단의 허기를 달랬다. 덜 마른 빨래는 가방 끈에 달아뒀다.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일곱 시 반에 출발한다. 오늘 날씨가 괜찮을 듯했다. 다리 상태는 글쎄 여전했다.
밤사이 비가 꽤 오긴 했나 보다. 바닥이 온통 축축하게 젖었다. 느긋한 고양이와 바쁜 강아지가 조용한 골목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마을의 마지막 가로등을 지나자 길은 그만 암흑에 잠기고 말았다. 그래도 시야가 완전히 없진 않았다. 랜턴을 꺼내기 싫어 그냥저냥 걸었다. 잔잔한 흙길이라 시야가 흐릿한들 걷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다리가 이 모양일 뿐, 길눈은 아직 살아있다.
들판 사이를 걷는다. 말간 하늘이 파래져간다. 발목과 정강이의 고통을 느끼며 땅을 디뎌갔다. 앞으로의 일정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자꾸만 고민이 들었다. 하루에 걷는 길이 짧아질수록 순례길의 여정은 끝도 없이 늘어날 거였다. 다리가 낫긴 나을까. 겨우 300km 정도밖에 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부턴 배낭이라도 동키로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했다. 아무런 결정도 못 내리겠다.
망설이는 사이 해는 이미 떴다. 구름에 가려졌던 빛은 한참 후에야 그 얼굴을 드러냈다. 아홉 시가 되자 길이 환히 트인다. 새소리마저 덩달아 선명하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잎이 축축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소리는 마냥 시원했다. 두 팔을 뻗어 늦은 기지개를 켰다. 그런들 걷고 있다. 그래, 더 걸어갈 수 있다.
부디 오늘도 무사히.
9시 반. 벌써 도착했나요, 보아디야 델 카미노(Boadilla del Camino) 마을. 다행히 문 연 bar가 있었다. 제대로 된 아침 식사가 필요했다. 오, 커피도 치즈케이크도 모두 맛있다. 안녕하세요. 대구 친구 두 명이 이미 여기서 쉬고 있었다. 부엔까미노. 발목이 좋지 않다는 건너편 침대의 대만 분에게 어제 안티푸라민을 빌려줬었는데, 그 친구가 지나가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푹 쉬었다. 10시 10분에 다시 출발했다. 노란색 단풍빛으로 쭉 뻗은 길이 밝은 얼굴로 걸어가는 이들을 반겼다. 햇빛이 좋아, 걷는 게 그래도 즐거울 수 있었다. 아픈 김에 돌아간다고 더 많이 바라보려 했다. 카스티야 운하(Canal de Castilla)를 따라 난 이 길이 아름다웠다. 건너편으로 넓게 펼쳐진 꿈결 같던 평원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풍경이었다. 흐린데 맑았다. 적절한 날씨가 이어졌다. 포플러 나무, 그 잎사귀가 흔들리고 떨어지고 또 반짝였다.
운하의 끝자락, 계단식 수문을 지난다. 작은 전시관처럼 안내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평원에서 난 곡물을 바다 쪽 항구로 수송하기 위해 만든 게 카스티야 운하라고 했다. 이 4단계의 수문은 14m의 고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철로가 생겨나며 쇠퇴하게 된 운하의 화물 운송. 현재는 관개용수로 활용되며 문화적 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좀 전의 안내소가 바로 옛 수문관리자의 집이었단다.
11시 40분. 다리를 건너 오늘의 종착지 프로미스타(Frómista)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다. 아픈 것에 비해 걸음이 빨랐다. 겨우 14km, 그래도 어제보다 3km 정도를 더 걸었다. 이 마을엔 기차역도 있는 듯했다. 철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선다. 큰 규모처럼 보였지만 기대보다 상점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양말을 어서 사고 싶었다. 두 개 남은 발가락 양말의 상태가 진짜 엘롱이다. 어제도 구멍을 또 꿰매야 했다. 도대체 언제쯤 등산용품점이 나올까, 괜한 근심이 쌓여간다.
삼거리에 바로 보인 Bar에 들어가 맥주부터 시켰다. 이쯤이면 거의 무의식적인 행위에 가까웠다. 1시 반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아무렇게나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대구 친구 둘을 또 만났다. 그들은 여기서 택시를 타고 한 마을을 건너뛸 거란다. 서로 딱히 할 일도 없겠다 한 테이블에 앉아 두서없이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둘 중 한 친구는 독실한 마음으로 순례길에 오른 것이었다. 그 잔잔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다른 친구는 친구 따라 강남온 셈. 둘이 참 선해 보여 좋았다. 그들이 떠나길 기다려 손 흔들어 배웅을 해줬다. 슬슬 예약해 둔 알베르게를 향해 걸어갔다. 시간이 얼추 맞았다.
1시가 조금 넘자 알베르게의 문이 열렸다. 복도에는 동키로 배달된 배낭들이 줄줄이 많이도 세워져 있었다. 마치 면접이라도 보듯 1대 1로 앉아 신상정보를 기재하는 체크인 과정이 낯설었다. 1등으로 들어왔는데도 예약이 많은건지 하필이면 입구 바로 옆 1층 침대로 배정을 받아 아쉬웠다. 뭔가 엄격한 자체 룰이 있는 듯해 보였다. 들락날락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됐다.
무심한 알베르게의 외관과 달리 아기자기한 뒷마당까지 있어 쉬기엔 괜찮아 보였다. 심지어 탁구테이블까지 있었다. 어디선가 다가온 치즈냥이 상냥히도 몸인사를 해준다. 안녕, 마음이 순식간에 스르르 풀렸다. 빨래를 널었더니 어랏 금방 비가 내렸다. 날이 그토록 좋았는데 예상치도 못했다. 그렇다고 건조기를 돌리기엔 아까웠다. 탈탈 털어 그냥 침대에 옮겨 널었다. 내버려 둬, 마르겠지 뭐.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왔다. 그러곤 일단 누워서 쉬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점찍어둔 식당이 있었다. 미리 소개받은 맛집이었다. 6시 반 오픈에 맞춰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갔는데, 아뿔싸 굳게 닫힌 문엔 ‘개인 사정 휴무’라 걸려 있었다. 무척이나 슬펐다. 다른 대안도 없었다. 우비까지 입고 나와 헤맸다. 1유로 입장료의 성당 구경과 약간의 장 보기. 결국 숙소 옆 제과점에서 빵과 커피로 저녁을 해결했다. 하지만 허기가 전혀 가시지가 않았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해서 알베르게 주방으로 갔더니 고기 굽는 대만 친구들로 만원이었다. 에잇, 라면은 포기다. 숙소엔 오늘따라 유독 대만 분들로 가득했다. 단체로 온 듯 낮부터 아주 시끌벅적했다.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아쉬웠다. 세요(sello) 하나 더 찍는 셈 치고 지도를 찾아 새로운 bar로 한 번 가봤다. 알고 보니 여기에 순례자 저녁 메뉴가 있었다. 진작 이리로 올 걸 후회했다. 살짝 고민됐지만 빵을 먹긴 먹었으니 이중 지출은 아까웠다. 역시 또 맥주 한 잔으로 남은 배를 채웠다.
숙소로 돌아와 일찌감치 짐을 챙겨두고, 마지막 양치를 했다. 내일은 계속 비 예보가 있었다. 동키는 보내지 않는 걸로. 하루만 더 배낭을 메고 걸어보기로 했다. 숙소라도 미리 예약해 두는 게 좋을까. 귀찮아, 일단은 아침에 일어나 결정하는 걸로 하자. 잠이 쏟아졌다. 피로는 거리의 길고 짧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했다.
아홉 시가 다 됐는데도 주방의 소란은 여전했다. 엄격한 룰에 비해 관리는 잘 되지 않는 듯, 대다수의 알베르게에서는 도통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보통은 저녁 아홉 시에서 열 시쯤부터는 정숙을 요한다. 자정에 가까워져도 그들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연신 방에도 들락날락거렸다. 대만 분들에게 항상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이 한순간에 다 망쳤다. 잠에 들긴 들었을까. 덕분에 온통 정신없는 밤이 됐다. 꿈인지 생신지 혼란의 진창은 길고도 지긋했다.
2024.10.15.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16일 차(누적거리 348.86km)
오늘 하루 31,054보(17.9km)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큰 힘이 됩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3편,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a」는 월/수/금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