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온기를 담아 함께-용기-우리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25일 차

by 달여리
아스토르가~폰세바돈(≈25.17km)


밤사이 혼자 열폭한 이상한 남자가 있었다. 쿵쿵쾅 발소리를 울리며 방을 들락날락하더니, 방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일장연설을 쏟아냈다. 아닌 밤에 홍두깨. 막 잠에 들려다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도미토리라면 으레 발생하는 여러 소음을 못 견딘 것 같았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너무 예의들이 없는 거 아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내로남불도 그런 내로남불이 따로 없었다. 소등을 한 지 30분 정도 지난 10시쯤이었다.


다들 이제 슬슬 잠에 들려고 하던 참이었다. 이미 코를 골며 자는 사람도, 핸드폰 진동이 수시로 울리는 사람도 있긴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도미토리형 알베르게에서 흔히 겪은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그도 아스토르가(Astorga)까지 순례길을 걸어왔다면 이 정도의 경험은 지겹도록 자주 겪었을 텐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해도 납득도 전혀 되지 않았다. 욕설을 내뱉으며 그가 짐을 다 챙겨 나가자, 어둠 속에서 다들 한 마디씩 보탰다. 나는 누워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이 밤중에 어디로 갔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잠에 빠져들 만큼 피로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다섯 시에 재깍 눈이 떠졌다. 이층 침대에서 조심히 내려와 모든 짐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싱크대에서 물병도 채웠다. 잠겼던 알베르게의 문은 약속대로 정각 여섯 시에 활짝 열렸다. 모든 준비 상태는 완료, 바로 출발했다. 오늘 긴 오르막이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길이 예상됐다. 단단한 마음이라도 불러오듯 배꼽에 잔뜩 숨을 채워 넣었다.


종소리를 들으며 아스토르가 광장을 통과한다. 어제 만난 성당과 가우디 건물도 지났다. 새벽에 봐도 아스토르가는 역시 매력적이었다. 아마 내 평생 다시 올 일은 없겠지? 그렇다고 아쉬워하지는 말자. 지금은 머무는 것보다 다음으로 나아가는 게 더 궁금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자 갑자기 거리는 허전해졌다. 외곽을 따라 이어진 가로수길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걸었다. 춥진 않았지만 손만은 시렸다. 입김이 오른 하늘 위엔 총총히 가득 별이 박혀 있었다. 늘 그랬듯 아침은 밤을 닮았다.


또 카레 향이 어디선가 났다. 이쯤 되면 상상이 아니라, 이런 향기가 나는 꽃이 있는 게 분명했다. 굳이 검색을 해보니 커리 플랜트(Curry Plant)라는 풀이 정말 있단다. 생긴 걸 보니 저기 저 노란 꽃이 맞는 듯했다. 어쨌든 맛난 냄새를 맡았더니 한껏 배가 고파왔다. 첫 bar는 과연 언제 나올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길을 계속 나아간다.


30분쯤을 걸어 첫 번째 마을 Valdeviejas 표지를 지난다. 그저 건물 몇 채뿐, 마을 다운 구석 따윈 없었다. 하물며 bar는 있을 턱이 없다. 여기서부터 가로등도 끝이 났다. 딸깍 랜턴을 켜자, 어둠 속에 동그란 빛만 달처럼 떠올랐다. 시야는 답답하지만 외려 걸음은 집중된다.

241024_iphone_1322(edit2)(resize2).jpg <오늘도 별빛>

내일 만나게 될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에는 염원을 담아 돌멩이를 올리는 관습이 있단다. 누군가 그리 말하는 걸 들었고, 부엔까미노 앱도 알림으로 그 사실을 알려줬다. 원래라면 집에서부터 들고 온 돌멩이를 놓아야겠지만 그 사실을 몰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하긴 4개월의 긴 여행 도중에 온 거니 준비하려야 준비할 수도 없었다. 딱히 돌멩이를 구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마침 랜턴 빛에 유난히 반사되는 삼각형의 돌멩이가 눈에 띄었다. 무심결에 그 녀석을 주웠다. 흙을 털고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18년을 만났고 그중 10년 넘게 함께 살았다. 뒤늦게 형식적 ‘결혼’만 한 거라 사실상 결혼기념일 자체는 우리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결혼식도 하지 않았고, 양가 가족만 조촐히 모여 근사한 식사를 했을 뿐이었다. 결혼기념일엔 맛있는 식사를 나누면 족했다. 서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선물처럼 함께 사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모처럼 이렇게 길게 여행을 나오고 나니 빈 결혼기념일이 내심 아쉽고 또 미안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작은 선물들을 미리부터 준비했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요래조래 요청하면서까지 주문한 근사한 꽃다발과 영국 테이트미술관에서 완전히 반해버린 J.M.윌리엄 터너의 빛감이 담긴 작은 시계였다. 아내는 일본 출장으로 오늘 부재할 예정이라 회사로 미리 보냈었다. 그게 어제였고, 덕분에 아주 로맨틱한 짝꿍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함께 있지 못하지만, 마치 함께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 안심이 됐다.


주머니에 넣은 돌멩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이 돌을 거기 올려야겠다. 담고픈 염원은 딱 세 단어였다. 함께, 용기 그리고 우리. 10년 전 프러포즈를 하며 반지에 ‘함께’, ‘용기’라고 마오리어와 몽골어로 새겼었다. 거기에 지금 함께 있지 못한 ‘우리’를 더했다. 세모꼴인 돌멩이의 각 모서리마다 하나씩 단어가 담기길 바랐다. 온종일 매만지며 뒤늦게 온기로 마음을 담아보련다. 그리고선 내일 아침 슬그머니 철의 십자가 아래 내려놔야지.

241024_A1_001(edit2)(resize2).jpg <어둠의 가로수길 통과하며 아스토르가를 빠져나간다>

칠흑 같은 어둠, 동그랗게 빛나는 고양이의 눈동자가 있었다. 길을 밝힐 만큼 밝진 않아도 하늘에 뜬 별과 달에 적어도 심심하진 않았다. 한창 고통스러울 때에 비하면 다리가 상당히 괜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통증은 있었다. 걸음마다 조심조심 가늠을 해야 했다. 자칫 무리하다가는 다시 악화될지도 몰랐다. 어제도 막바지에 무척이나 힘겨웠었다. 하물며 오늘의 길은 더 멀고 험하다. 앞으로는 되도록 부엔까미노 앱이 안내하는 일반적인 코스에 맞춰 걸어가고 싶었다. 그러니 더 이상 다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랐다.


어라,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7시 두 번째 마을 Murias de Rechivaldo였다. 동네가 아기자기하다. 근데 문 연 bar는 여기에도 없었다. 4km 정도 떨어진 다음 마을을 기약해야 했다. 일찍 깬 새 한 마리가 외로이 위로를 해줬다. 사과를 하나 베어 물며 스스로를 달랬다. 마을을 벗어나며 도로도 벗어났다. 낮은 나무숲 사이의 오솔길을 완전한 어둠 속에 걸었다. 검은 나무들이 무서웠다. 으스스한 상상을 겨우 접고 뚫어져라 바닥만 보고 걸었다. 문득 돌아본 뒤론 주홍빛 조명이 명멸하는 아스토르가가 멀리 보였다. 아침의 붉은 기운은 한참 후에나 올라왔다. 그때까진 내내 으슥한 밤이었다.

241024_A1_014(edit2)(resize2).jpg <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두운>

8시. 오르막을 어느 정도 올라 세 번째 마을 Santa Catalina de Somoza를 만났다. 마을 입구부터 잘 닦인 보도블록이 깔끔했다. 초입에 문 연 알베르게 겸 bar가 드디어 있었다. 얼른 또르띠아와 커피부터 시켰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으니 잠시라도 살 것 같았다. 무언가 태우는 냄새가 짙게 났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라디오 소리가 계속이고 흘러나왔다. 20분을 쉬었다. 길을 걸을 차례는 금방 다시 돌아왔다.


날이 흐렸다. 아침이 밝아와도 제대로 날이 환해지진 않았다. 은근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내일까지 이 길을 마저 올라 프랑스길이 지나는 가장 높은 고개인 몬테 이라고(Monte Irago, 해발고도 약 1,504m) 정상을 넘게 된다. 바로 그 직전 마을인 폰세바돈(Foncebadon)이 오늘의 목적지였다. 폰세바돈의 해발고도는 1,410m 정도로 대부분의 오르막은 오늘 다 오르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진 길이 그리 힘들진 않았다. 이 정도라면 큰 걱정은 잠시 내려놔도 괜찮을 듯했다.


9시 15분, 네 번째 마을 El Ganso다. 흥겨운 음악을 틀어둔 bar에서 삶은 계란 하나와 세요(sello) 한 방을 교환했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 둘이 수줍게 뛰어놀고 있었다. 살짝 손뼉을 치니 쑥스러워하면서도 통통통 이리로 걸어왔다. 용감한 치즈냥은 템테이션을 두 개 받아먹었다. 겁 많은 검정냥이는 결국 하나도 먹지 못했다. 계란과 고양이로 10분을 쉬어간다. 이제 반 정도를 걸어왔다. 다리는 의외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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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4_A1_030(edit2)(resize2).jpg <흐리디 흐린 길, 도로의 방향을 따라 언덕을 계속 오른다>

도로 따라 언덕을 넘는다. 곳곳에 헤더꽃이 있어서 괜스레 반가웠다. 길 따라 이어진 철조망에 갖가지 십자가들이 얼기설기 붙어있었다. 노끈에서부터 나뭇가지까지 다양했다. 아무래도 순례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안개들이 꼈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어디선가 까치 울음도 들려왔다.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와 가지에 달린 붉은 열매. 도로가 가까워 이따금씩 산을 넘는 차들이 보였다. 대체로 길은 고즈넉했다.


흐린 날은 특히 조심해야 된다. 멋모르고 무작정 걷다가 능력치 이상으로 걷게 되곤 하기 때문이다. 맑은 날에 비해 풍경에 마음을 덜 빼앗기는 탓이다. 의식했다. 조금이라도 걸음이 빨라진다 싶으면 일부러 멈추거나 되도록 늦췄다. 발목을 최대한 유연하게 놀렸다. 힘의 중심을 다리가 아니라 가슴 쪽으로 끌어올리려 애를 썼다. 역시나 힘을 빼고 걷는 연습이다. 습습후후, 호흡으로 걸음을 대신했다. 리셋하듯 한 번씩 다리를 털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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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한참이나 머무른 Rabanal del Camino 마을>

11시. 마지막 마을 Rabanal del Camino에 도착했다. 슈퍼에서 나랑하 환타를 사 먹으며 좀 쉬어간다. 고양이 강아지, 모두가 나른하다. 안개가 짙어져 눈앞의 장면조차 점차 멀어진다. 부슬비처럼 공기가 눅눅했다. 마을 안 성당(Iglesia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에 들렀다. 세요(sello)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성당 앞 작은 상점에도 들렀다가, 그만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해 한참 동안 서성이고 말았다. 금속이라 무거웠고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그 둘을 뛰어넘는 소유욕이 일었다. 그만큼 내게 그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긴 고민 끝에 결국 덜컥 사버렸다. 그 이름하야 the way of life 열쇠고리와 the angel of light 장식품. 어쩌다 보니 그러다 이 마을에만 40분을 머물렀다.


길을 올랐다. 여기서부터 오르막이 약간 더 경사진다. 진짜 조용한 길이었다. 발자국 소리만 나긋이 울렸다. 앞과 뒤에 사람 하나 없으니 마음마저 느긋했다. 그리 힘든 정도는 아니어도 숨은 조금 찼다. 땀도 나긴 났다. 꽃처럼 핀 거미줄이 여기저기 있었다. 누런 고사리들이 다리에 차여 흔들거렸다. 위로 오를수록 안개는 깊어졌다. 역시나 고압전선에서는 깅-깅-깅- 괴기한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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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4_A1_075(edit2)(resize2).jpg <철조망의 십자가들과 꽃 같은 거미줄들>

오늘의 목적지 폰세바돈(Foncebadón)엔 그러다 덩그러니 도착했다. 안개에 가려 어딘지 모를 길을 계속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마법처럼 갑자기 도달했다. 눈앞에 떠오른 그 모습이 마치 미지의 장소처럼 느껴졌다. 예약한 알베르게는 마을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었다. 동네는 작았고 경사를 따라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문을 연 bar도 몇 보인다. 대체로 알베르게를 겸하는 곳들이었다.


1시에 체크인을 하고 얼른 샤워부터 했다. 날씨가 이러니 잘 마를 것 같지가 않아, 꼭 필요한 속옷과 양말만 빨았다. 숙소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이런저런 개인정비를 하기가 편했다.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건너편 bar에서 깔리무초도 한 잔 즐겼다. 높은 지대라 그런지 으슬으슬 추웠다. 걸을 땐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훅 피곤해져 버렸다. 침대의 침낭 안에 쏙 들어가 저녁까지 마냥 쉬었다. 늦오후부터는 라디에이터를 뜨끈하게 틀어주어 방이 따스했다. 오예, 뜨끈하니 걱정했던 속옷과 양말은 덕분에 잘 마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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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길들을 올라 안개의 폰세바돈>

저녁은 숙소 주인장이 운영하는 피자집에서 맥주와 함께 해결했다. 직접 구워주는 피자가 의외로 맛있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흥겨운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대체로 올드팝이었지만, 개중엔 BTS 노래도 있었다. 다리와 고개로 까딱까딱 박자를 맞춰가는 무던한 즐거움이 있다.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어와 귀찮았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 한 판을 너끈히 해치웠다.


내일은 철의 십자가를 지나 길게 오르고 내려야 하는 날이다. 그 길이 어떨지 전혀 가늠은 안되지만 무릎과 발목이 잘 견뎌주길 바랐다. 이쯤이면 정강이는 다 나았다 봐도 될 성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절뚝이지도 않았다. 발목 통증이 아직 남았고 무릎은 어차피 오래 걸으면 늘 아팠다. 아직 길의 고비는 채 넘지 않았지만, 신체적 고비는 이렇게 또 한 번 넘어간다. 무리하지 말자, 오버하지 말자. 그것만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든든한 배를 부여잡고 잠자리에 얼른 누웠다. 많이 피로했는지 눈 주위가 뜨끈뜨끈했다.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에 의지해 밤의 보트를 타듯 꿈나라로 들었다. 자주 깨긴 깼지만, 나름 잘 잔 편에 속했다. 꿈나라에 꿈은 없었다. 따스한 온기와 우렁찬 어둠만이 가득 차 있었다.



2024.10.24.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25일 차(누적거리 534.97km)

오늘 하루 40,924보(23.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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