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31일 차
사리아~포르토마린(≈22.06km)
6시 반에 일어났다. 늦잠이라면 늦잠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으니 기상 시간이란 사실 운에 맡겨둔 거기도 했다. 쫓기는 듯한 꿈을 여럿 꿨고, 자다 깨기도 많이 했다. 땀이 좀 났다. 그러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시간이 그랬다. 짐을 챙겨 나와 공용주방에서 채비를 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쩐 일인지 남은 침대들은 모두 아직 긴 단잠에 빠져있었다.
7시 10분쯤 출발했다. 바깥의 공기는 따뜻한 수준이었다. 언덕을 마저 올라 성당과 묘지를 지났다. 어둡다곤 해도 약간의 시야가 트여 랜턴은 굳이 켜지 않았다. 철길 옆을 따라 걷는다. 하늘은 어느새 옅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새들이 아침을 제일 먼저 반겨온다. 타닥타닥 발걸음과 째잭째잭 새소리를 괜히 함께 녹음했다. 길을 건너고 고가도로 사이를 지나 오솔길을 걷는다. 안개가 피어오르며 밀려난 햇살이 은은히 퍼진다. 숲과 언덕이 몇 겹으로 나뉜다. 무대장치마냥 풍경은 다채롭고 극적이다.
'철의 십자가 삼인방' 중 한 분을 먼저 도중에 만났다. 8시에 도착한 Barbadelo 마을의 한 bar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 나눴다. 나머지 한 분도 거기서 만났다. 지나가시던 뒷모습을 알아채 두 팔 벌려 그를 불렀다. 오늘은 이렇게 셋이 함께 걷는다. 여럿이 걷는 길이 여전히 낯설지만, 순례길이니만큼 그건 그것대로 자연스러운 일. 조용했던 길이 대화로 드문드문 채워진다. 장면의 뉘앙스는 조금 변주했고, 소소한 웃음이 BGM을 대신했다.
나무 톱질 소리, 숲의 어떤 느낌, 가지각색의 새소리, 안개의 자리를 메운 샛노란 햇살. 어느 사육장에선 돼지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귀에 박히듯 들려왔다. 질척거리는 그늘의 진흙이 신발과 바짓단에 튀어 희미한 얼룩을 남긴다. 날씨가 개며 화창해졌다. 계절을 잊은 봄볕처럼 걸을수록 가을의 옷차림도 가벼워져간다.
9시 40분, 숲길의 한가운데서 “Best Stamp”를 만났다. 실리콘으로 멋들어지게 장식해 주는 일종의 이벤트이자 서비스였다. 무심코 지나쳤다 다시 돌아가 받은 세요(sello)였다. 국가의 국기 스타일에 맞게 색상과 디자인을 해주신다. 몰라서 지나친 걸 가지고 짓궂게도 자꾸 놀리시는 멋쟁이 할아버지셨다. 허락을 받은 뒤 그 모습을 몇 장 찍었고, 사진을 보내주기로 약속드리며 메일 주소도 건네받았다. 돈을 요구하시진 않았지만 1유로를 기부했다. 가장 멋진 세요(sello) 중 하나를 또 이렇게 순례자여권(credentia)에 채워간다.
장염 증세를 호소하는 대만 분을 우연히 만나 도움을 드리기도 했다. 헛구역질을 하며 주저앉아 계시는 그분께 삼인방 중 한 분이 자연스레 말을 거셨다. 아마 혼자였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삼인방의 두 분께서 망설임 없이 상황을 살피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많은 걸 배웠다. 우리는 짐을 나눠 들고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그분을 부축해 드렸다. 병원이나 택시를 부르는 일은 한사코 사양을 하셔, 대신 인근의 숙소를 수소문하고 남은 거리나 주의할 점 등을 차분히 안내해 드렸다. 그분이 안정을 되찾아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서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마침 옥수수밭을 가는 기계가 지나가며 가루를 흩날렸다. 마치 응원이라도 건네는 듯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칭찬하고 북돋우며 짧은 여운을 나눴다. 내심 감탄이 일었다.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마주한, 신기하고도 따뜻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무사해서 다행이었고, 마음 한편이 오래도록 뿌듯했다.
숲을 통과한다. 이래저래 지체돼 아무래도 길이 더뎠다. 얼마 동안 각자의 걸음에 집중했다. 오후에 다다르자 따뜻함이 잔뜩 올라 더울 지경이었다. 중간에 만난 bar에서 깔리무초로 목을 축였다. 왁자지껄 각자의 소란이 환호처럼 시끌했다. 오늘의 길 위에는 유난히 순례자들이 더 많았다. 나머지 낯익은 얼굴은 하나도 없이 죄다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도토리들이 바닥에 잔뜩 흐트러져있다. 흐르는 물길과 오돌토돌한 자갈길, 햇빛 그리고 들판이 이어졌다. 농장과 작은 마을을 지날 때마다 나는 시큼한 냄새가 싫으면서도 끌렸다. 드문드문 벌초 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왔다. 작은 마을들을 지났다. 시냇물 소리 졸졸 들으며 올랐던 짧은 그 길이 좋았다. 묘지도 성당도 역시 있다. 말라버린 수국과 알로에도 있었다. 새벽의 안개는 먼 기억처럼 아련했다. 가을이 봄이었다가 여름이 된다.
정오를 조금 넘겨, 마침내 100km 표지석 앞에 섰다. 이제 남은 거리는 두 자리 수로 줄어든다. 가벼워진 숫자만큼이나 걸음의 무게가 달라지는 기분이었다.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자리한 작은 집에서 100km 인증 세요(sello)도 찍었다. 도장을 받아 들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렇게나 먼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동시에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아주 또렷이 각인됐다. 믿기지 않으면서도 담담히 차올랐다. 삼인방은 조근조근 서로를 축하했다.
특별할 것 없는 마을들을 지난다. 그동안 맡아온 냄새들이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었고, 환한 햇살이 거리낌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건물과 나무가 만들어낸 그림자 무늬들이 바닥 위에 겹겹이 드리워져 자꾸만 시선을 붙잡았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까딱이며 올라온 보랏빛 꽃망울이 앙증맞다. 애써 말을 걸지 않아도 충분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풍경이었다. 나긋이 거기 녹아들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진 않았다. 어쩐지 발을 내디딜 때마다 킬로수가 줄어가는 소리가 째깍째깍 들리는 것만 같았다. 벌써부터 핀 아쉬움이 걸음 뒤로 뚝뚝 떨어졌다.
큰 강이 나왔고, 긴 다리가 있었다. 1시 40분. 아, 오늘의 목적지 포르토마린(Portomarín)에 다다랐다. 입구에 설치된 자유의 종을 한 번쯤 치고선 다리를 건넜다. 총총총 나란히 걷는 삼인방의 모습이 어딘가 귀엽고 재밌다.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괜히 더 웃었다. 잠시 발걸음도 느슨해졌다.
계단과 언덕을 안간힘처럼 올라 새 마을에 도착했다. 이렇게 높다란 곳에 자리한 포르토마린은 사실 ‘옮겨진 마을’이었다. 1960년대 댐 건설로 인해 원래의 마을은 물 아래로 잠겼고, 사람들은 이곳에 다시 삶의 터전을 세웠다. 가뭄이 들 때면 수면 아래 잠긴 옛 마을의 흔적이 드러나기도 한단다. 그 장면을 상상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요한 수면 아래로 겹겹이 쌓인 시간이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셋의 숙소가 모두 달라 일단 헤어졌다. 짐만 푼 뒤 늦점심을 위해 다시 만났다. 미리 찾아둔 맛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양한 메뉴에 시원한 맥주는 하루의 충분한 회포가 되었다. 각자 쉬었다 저녁 시간도 함께 보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또 즐거웠다.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다. 정도는 조금씩 달라도 트레킹이나 도보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그랬다. 일정도 딱딱 맞겠다, 그러지 말고 남은 며칠 동안은 적어도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즐거운 만남에 맛 좋은 음식은 덤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어색해하지 않는 스스로가 생경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이 편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9시, 긴 만남을 서둘러 마쳤다. 숙소로 돌아가니 이미 모두가 자고 있었다. 대충 잘 준비는 해둔 터라 몇 가지 정리만 한 뒤 바로 자기만 하면 됐다. 이제 불 없이도 어둠 속에서 잘 움직일 수가 있었다. 바깥에 널어둔 빨래가 아직 마르지 않아 조심조심 침대로 옮겨 널었다. 베란다 세면대에서 양치를 하며 밤하늘의 별을 마지막으로 올려다봤다. 낮의 열기가 싹 사라진 공기는 선선했고, 신선한 바람은 오히려 잠 기운을 돋웠다. 하루치의 기억을 고스란히 침낭까지 가져간다. 꿈결은 고소히 오늘은 잘도 잔다.
2024.10.30.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31일 차(누적거리 680.27km)
오늘 하루 37,879보(23.5km)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큰 힘이 됩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3편,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b」는 월/수/금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