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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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 가
2025년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었다.
부모의 가난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대물림 되고 대물림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방황하고 노력하고 무너지는지 상세히 보여준 책이었다.
그 책을 읽기 전에도 후에도 뜻하지 않은 대물림을 끊어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했던 나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 가.
750원을 아끼겠다고 40분을 걸어가고 300원짜리 머리끈을 빌려주고 돌려주지 않았다고 내놓으라던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가.
학교 끝나고 막차시간까지 일하며 모은 첫 알바비를 받아 집에 돌아오자 집 전기세를 내던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가.
과태료미납으로 유치장에 들어가던 부모를 둔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가.
그 아이는 이제는 제법 버는 어른이 되었다.
그 아이는 스스로가 가진 가치를 드러낼 수 있고 스스로의 가치를 협상 테이블에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 아이에게 직업을 잘 골랐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아이가 열심히 했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할 것이다.
뭐라고 말해도 결국 그 아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가족을 포기했다. 이제는 정말 가족들의 생존여부, 신상정보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아픈 건 언제고, 어제는 뭘 했고, 오늘은 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마지막 통화기록은 4년 전이다. 명절이 되면 주변인들이 귀향길을 물으면 모두가 납득할만한 그럴싸한 거짓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말을 듣고 흘릴 수 있게 되었다.
새해가 된 지 보름이 지났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나면 설이 온다.
설이 되면 사람들은 자기가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자의든 타의든 돌아갈 곳으로 떠난다.
나는 떠나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어디로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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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15년 하면서 아직도 못 고친 것
안 열리는 병뚜껑 낑낑대기 > 도구 발견!
귀찮으면 집안일 방치하기
빨래통에 양말 뒤집어서 넣기
아프면 서러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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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갔다 왔다.
선생님은 자신은 더 이상 약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을 생각이라고 하셨다. 물론 나는 항상 약을 끊길 바랬기 때문에 내가 내리자고 하면 내릴 생각은 있다고 하셨다. 다만 내리면 내리는 데로 내가 감당해내야 하는 스트레스가 늘어나니까 적극 권유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지금 자신이 하는 건 관리차원이라고. 최소한의 방어선이라고.
잠은 얼추 잘 자니까 조금 더 있으면 다시 작년 이맘때 줄인 것만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상태를 보고 감당해 낼 수 있게 되면 그때 약을 줄여야지.
왜 이렇게 어쩔 줄 몰라하냐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역시 아직은 안 되겠다고.
한 달에 한 번 PMS로 오는 우울, 불안에도 쌓아놓은 장벽의 일부가 무너지는데, 그걸 보니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역시 욕심을 부려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힝 속았지?’ 하면서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숨겨진 문제가 나온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 ‘아니, 네 착각이야. ’라며 원래대로 돌아간다. 괜찮음과 아님을 수십 번 반복하고 나서야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정도가 된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가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일 있인 것 같다.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