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반 다닌 회사를 왜 떠났냐면

근 5년이라는 시간은 짧은 게 아니더라

by 가애KAAE


문득, 집에 걸려있는 사원증이 눈에 띄었다. 퇴사한 지, 새 회사에 온 지 정확하게 4개월이 된 날이다.

전 회사는 지독한 번아웃에서 빠져나오던 중에 이직한 회사였다. 당시에 호야는 비강튜브를 떼어냈고, 여느 고양이처럼 꼬장도 부리고 마야한테 화낼 체력이 올라와있어서 10살은 채웠으면 좋겠다는 욕심 정도는 부릴 수 있는 상태였다.


나는 Flutter가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생소할 때, Flutter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Flutter 포지션을 찾던 중이었다. 대표님이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을 때, 당돌하게 ‘지금 Flutter를 경험한 사람 찾기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Flutter를 메인으로 사용한 몇 안 되는 개발자입니다.‘라고 말하고 합격을 거머쥐었다.


나에게는 너무 생소한, 다만 그렇게 멀지도 않은 육아 플랫폼 경험이 시작된 건 그렇게였다. 제조업 기반의 기업에서 자신들의 꿈을 담은 플랫폼사업본부를 만들고, 앱 개발자랑 서버 개발자가 어떻게 달라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천지인 곳에서 이방인처럼 시작했다.


매칭, 온라인 쇼핑, 오프라인 쇼핑이라는 전무후무한 서비스를 하나의 앱에 담는다는 것이 내 커리어에도, 그리고 회사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일했다.


그런 이유로 나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대로 제안하고, 제시하고, 그걸로 사고도 쳐보고 별 걸 다 했다. GA를 붙여야 한다고 설득할 때 그걸 꼭 해야 돼?라는 이사님의 반응에 남는 시간을 쪼개서 GA를 붙이고, 다이나믹링크가 종료되면 바코드 출력해서 다시 다 갈아 끼셔야 된다는 합리적 사실에 근거한 협박으로 에어브릿지라는 좋은 솔루션을 연동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다.


회사에 가장 실망했던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성과 보상이었다. 인사팀의 실수로 본사로 입사해서 자회사로 분리되면서 회수된 우리 사주, 합병으로 줄어든 스톡옵션,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승진, 공감할 수 없는 연봉협상과 보상체계.

처음에는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자기 계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개발 커뮤니티를 들어가고 아티클을 계속 찾아 읽고, 영어공부를 하고 사내 독서모임 외에도 책을 찾아 읽었다. 보답은 없었다. 돌아오는 건 그냥 JP라는 직급을 단순치환한 대리라는 직급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어차피 너희 팀은 솔루션 쓰면 없어질 팀이야.’라는 임원의 말이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미련하게 아직도 거기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회사를 애정하고 아끼던 마음을 이렇게 이용한다는 사실은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었다. 예견된 배신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직원의 효용가치가 거기까지 라면 나도 회사의 효용가치를 거기까지로 치환하기로 했다. 딥링크, GA4, 과하게 넘쳐나는 정보들을 정돈해서 표시해 주는 UX, 터치포인트 단순화, 브랜드 성격에 맞는 마케팅 전략, 타 팀과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상급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팀의 가치를 올리는 KPI 설정, 온라인/오프라인 대응 전략 등.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훑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저장하고 복사하고 퇴사했다.


이 회사에 아직도 애증과 애정이 넘치는 이유는 내 일생일대의 큰 일들이 그곳에 있을 때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첫 스톡옵션, 첫 상장, 출시부터 서비스 종료까지 경험하게 한 전체 생애주기 경험, 주도적인 업무, 싸우고 쟁취하며 얻어낸 오너쉽, 신뢰하고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팀원, 구조조정에서 지켜내지 못한 팀원들, 부족한 권한과 입지에서 오는 압박감,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사랑하는 것들의 죽음,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인생의 고민들, 반복되는 실패, 찾지 못하는 답의 연속.


이직한 지금은 그곳에서 경험한 것들을 실체화하고 있다. 그것들을 겪으면서 내가 바랬던 이상들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감이 있고 얼마나 이상적이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경험은 남는다. 그 경험을 어떻게 쓸지는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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