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빨리 하고 기저귀도 일찍 뗀 아이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 흑백 사진을 보면 늘 어른처럼 이마에 심각한 주름을 잡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머리맡에 내일 입을 옷을 개어놓고 가방도 싸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부모님은 그 시절 기준으로 노총각, 노처녀였는데 결혼하고서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선지 사진 속의 아빠 엄마는 첫 아이를 낳은 신혼부부라기보다 막둥이를 안은 중년 부부처럼 보인다.
세대차가 많이 나는 부모님은 자식과 정서적인 거리는 크면서도 어렵게 태어난 맏이에 대한 기대치는 무척 높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림책 같은 것을 보면 꼭 '모자라는 아이', '바보'의 전형처럼 그려지는 게 오줌싸개였다. 세계지도가 그려진 요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삽화는 언제나 놀림거리로 등장했다. 어려도 자존심이 강했기에 요에 쉬를 해서 빨랫감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싫었다. 그래선지 마치 악몽을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자다가 오줌을 쌀까 걱정했다. 마음을 편히 먹고 잠을 자야 오줌을 싸지 않는데 오줌을 쌀까 봐 오히려 벌벌 떨었다.
오줌싸개가 귀여울 수도 있다는 건 어느 날, TV를 보다가 알았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라고 했다.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벌거벗고 오줌을 싸는 조각상이었다. 구불구불 곱슬머리에 볼록한 배, 통통한 팔다리가 귀여웠다.
그러고 보니 같은 오줌을 싸는데도 여자 아이들은 어딘지 조심스럽고 은밀하고 남자아이들은 엄마가 아무 데서나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보게 하는 것이 떠올랐다. 오줌싸개도 성별에 따라 부끄럽게도, 사랑스럽게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후 진짜 오줌싸개가 우리 집에 태어났다. 남동생은 집안에서 고대하던 아들이자 귀한 늦둥이였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며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니 대여섯 살까지 가끔 이불에 쉬를 해도 꾸중보단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동생이 허약해서 오줌소태가 났다며 보약을 먹일 것을 고민했다. 오줌을 쌌다고 혼이 나기 보다 기가 허하고 몸이 약하다고 걱정이었다.
누런 소변이 얼룩진 파란 요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내가 처음 보는 진짜 오줌 싼 요였다. 엄마는 그래도 동생을 훈육하고 싶었는지 옆 동네 사는 이모네 집에 가서 소금을 받아오게 했다. 순진했던 동생은 바가지 같은 것을 들고 정말 이모네 집에 갔고 이모가 준비했던 소금을 받아왔다.
그런데 가끔 이 장면이 사실인지, 나의 상상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오줌싸개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것인지 모른다.
"이거 네 시간표야."
"시간표? 무슨 시간표?"
"오줌싸개 시간표."
"오줌싸개 시간표? 피…어디 한번 읽어 봐."
"똑똑히 들어. 자기 전에 쉬-."
"자기 전에 쉬-. 그게 무슨 소리야?"
"밤에 잘 때 이걸 보구 꼭꼭 오줌을 누구 자란 말이야."
(오줌싸개 시간표, 여유당)
꿈에 할머니가 던진 담뱃불이 내 소중한 장난감을 태우는 것이 아닌가. 불을 끄려고 애쓰다가 에라, 모르겠다. 벌떡 일어서서 그만 오줌을 내깔겨 버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들려오는 엄마의 성난 목소리. 또 오줌을 쌌냐면서 키를 쓰고 소금을 받아오라 한다.
방학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생활 계획표를 만드는 거였다. 하얀 도화지에 사인펜으로 커다란 원을 그린 후 칸칸을 나눠 시계처럼 만들었다. 나는 야심 차게 칸을 잘게 쪼개어 빽빽하게 많은 계획을 적어 넣었다. 물론 그 계획들은 작심삼일로 물거품이 되기 일쑤였다.
이 세상에는 똑똑한 아이, 덤벙대는 아이, 놀기 좋아하는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활 계획표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을까. 모두 지키지도 못할 공부나 학원, 방학 숙제, 독서 같은 것들을 큼지막하게 채워 넣었다.
각양각색의 아이에게 맞춤형 시간표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식사, 놀이, 숙제 같은 일상 외에 오줌싸개들이 꼭 지켜야 할 시간이 있다. 잠자기 전에 꼭 소변보기, 자기 전에는 물이나 음료수를 먹지 말기.
나 같은 경우는 잘 때 무서운 꿈을 꾸면 꼭 깨서 화장실에 가게 됐다. 오줌싸개가 되지 않으려면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았다. 그러니 ‘꿈나라’ 칸에는 꼭 이렇게 써야 한다. 악몽 절대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