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자전거길로만 달리다 보면 적당한 시간에 밥 먹기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침 먹을 데가 있다면 무조건 든든히 먹고 출발해야 한다. 숙소 옆에 콩나물 해장국집이 있었다. 아침 식사로 얼큰한 콩나물 해장국과 뚝배기 불고기를 시켰다.
“엄마, 뚝불이 뭐야?”
“일단 먹어봐!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고 할걸.”
뚝배기에 나온 달달한 불고기를 처음 먹어 본 환이는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엄마, 내일 아침도 뚝불. 알았지?”
여행하다 보면 별것 아닌 한 끼 식사까지도 이벤트가 된다.
여행 삼 일째 환이의 아침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집에선 반 그릇도 되지 않는 아침을 먹는데 사십 분 이상이 걸렸다. 크게 두세 숟갈이면 다 먹을 양을 어쩜 그렇게 오래 먹을 수 있는지 매일 보면서도 신기했는데, 지금은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데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1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였어. 밥을 잘 먹게 하려면 국토 종주를 좀 더 일찍 떠났어야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토 종주 길은 우리만을 위한 전용도로 같았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자전거길을 환이와 나란히 달렸다. 한 시간쯤 달렸는데 자전거길 옆으로 관광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세종대왕릉?”
세종대왕릉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이었다.
“아들, 세종대왕릉 땅의 기운이 그렇게 좋다는데 들러볼까?”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핸드폰을 꺼내 네이버 지도로 세종대왕릉 위치를 확인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길에서 벗어나 2km 정도 차도를 달려 세종대왕릉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능 입구를 향했다. 아이는 무료. 성인 500원의 입장료가 있어 표를 끊고 들어가려는데 매표소 옆으로 체험 부스가 보였다. 이벤트 부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환이는 자석에 끌리듯 부스를 향했다.
‘조선왕릉 문화제’
세종대왕릉을 둘러보며 종이에 스탬프를 찍어오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였다. 행사라면 무조건 참여하고 보는 환이는 내 종이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입장과 동시에 지도에서 스탬프 위치를 확인한 환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아들, 왜 뛰어?”
“선착순 500명.”
“뛰지 마.”
11시가 조금 넘은 주말 아침, 세종대왕릉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어림잡아도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라면 2~3시까지도 선물은 남아 있게 마련이다. 무작정 스탬프를 향해 뛰던 환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속도를 늦췄다.
“엄마,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보다 신사임당이 더 훌륭해?”
‘이건 또 무슨 소린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왜? 돈 때문에?”
“응, 이순신 장군은 백 원, 세종대왕은 만 원인데, 신사임당은 오만 원이니까…”
아이의 눈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새삼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럼, 학은 이순신 장군보다 훌륭하겠네.”
말하고 나니 뭔가 찜찜했다. 말이 안 되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섬멸할 때 펼쳤던 학익진은 학의 날개 형태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에게 영감을 준 학이 더 훌륭했던 걸까? ‘훌륭하다’의 정의가 뭐였지? 설마 거기까지 생각하고 백 원과 오백 원 동전을 만들었나? 누가? 돈에 있는 그림은 누가 어떻게 정한 걸까? 다양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이런 게 열린 질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질문하는 법을 아는 것 같다.
세종대왕릉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선착순 이벤트 선물까지 챙긴 우리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엄마, 세종대왕도 커피를 좋아했어?”
“응? 그땐 커피 없었을 텐데. 왜?”
“이 근처엔 음식점이 없어. 전부 카페야.”
환이 말을 들은 나는 주변을 살펴봤다. 세종대왕릉 오가는 길에 있는 건물 대부분이 카페였다.
“만약 커피가 있었다면 세종대왕이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밤늦게까지 책을 보려면 카페인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네.”
‘커피를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왕은 고종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 전 세대의 우리 조상은 무엇으로 카페인을 대신했을까?’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