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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Oct 22. 2024

라면을 개수구에 내팽개쳤다.

요즘같이 일이 많을 때는 정말 답이 없다. 하루하루 피 터지는 싸움이라 밥을 먹어야 살지,라는 동료에 말은 맞지만 밥 먹는 것도 나에게는 일이라 점심시간에는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게 훨씬 나아서 전날 사놓은 빵을 가방에 들고 와서 허기를 때운다. 그래 때운다라는 말이 맞다.


지난주부터 일이 많아져서 일복을 복이라고 말하는 동료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내 일이 아니었는데 동료가 자기가 하기보다는 내가 하는 게 맞다고 연구원장님께 의견을 냈고 나는 지금 일도 벅차다 했는데 나이도 있고 연차도 있으니 해보라는 어이없는 이야기에 한숨을 쉬며 그냥 어안이 벙벙했다.

결국 주말까지 일을 집에서 했고 지금도 일을 하고 완벽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움켜쥐고서는 마감기한까지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온몸에 땀을 흘리며 자고 결국은 20분마다 깨니 차라리 잠을 자느니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멍한 상태로 출근했다.


그날이었다. 내 한계가 최고치에 이르렀다. 회사에서 정말 말없이 살고 있는데 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유는 내게 일을 넘긴 연구원에게서 시작이다. " 자기 일 다했어?"

나는 "아니요, 아시잖아요, 어디 양이..."

넘긴 연구원은 "에이 자기 너무 엄살이다. 자기 정도면 그냥 후루룩 금방이잖아. 그러지 말고 금방 끝내주고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 좀 봐주면 안 될까?"

이 정도면 내 안의 분노가 절반은 차올랐다.

난 "저 진짜 힘들어요"

상대는 "그럼.. 한 이틀 뒤 정도 괜찮지?"

긴 호흡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난 말했다.

"저 주말에도 일감을 들고 가서 일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죄송한데 본인일은 본인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긴 말에 상대는 눈을 크게 뜨며 "아니 뭐 내가 공짜로 봐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난 그냥... 그래 그냥 봐달라고 했는데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네"

이렇게 되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난 "죄송해요 지금 진짜 일이 많아요"

상대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자기가 도와주면 내가 좀 힘이 나니까.."

이제는 못 참아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끊었다.


집에 도착을 하고 몰려온 허기, 집에는 먹을 것이 없다.

찬장을 열어보니 라면이 있었다.


평소 저녁을 먹지 않은 내가 갑자기 라면을 왜 끓였을까?

그렇게 라면이 익어 가고 한 젓가락을 드는데 갑자기 화가 났다.

그러자 나도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나서 나무젓가락을 부러 뜨리고 라면을 개수대에 버렸다.

내동댕이 쳐진 라면은 연기를 내며 그렇게 식어 가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왜 이러는 건데' 하면서 

나 스스로 화를 멈추기 위해서 호흡을 정리했다.


"그래 사는 게 쉬우면 사는 게 아니지, 정신 차리자"를 나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살면서 이렇게 라면을 화가 나서 버린 경우는 없었다.


먹고사는 게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아직도 철이 없다고 일기를 쓰면서 화를 눌렸고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와서 부탁을 하는 동료에게는 "제가 일을 마치고 여유가 되면 도와 드릴게요"라고 완곡하게 표현을 했고 거짓말처럼 마음이 다소 가벼워졌다. 


어릴 때는 화가 나면 괜히 집 밖을 서성였다. 엄마는 그런 나를 지켜보시며 "밥 먹을 때는 들어오너라" 하셨고 나는 "응'이라고 했다. 엄마는 이유를 잘 물어보시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물어보셨다. 난 엄마에게 "엄마 왜 그 당시는 안 물어보셨어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화라는 것은 당시에는 자신을 보게 되어있는데 시간을 두고 거리를 두면 많은 것들이 보이니까" 이 이야기를 내가 이해하는 데는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듣고 보니 그 말씀이 맞았다.


화를 낼 일이 아니었고 그냥 지금 내가 힘든 건데 완곡하게 말을 하고 지나가는 일이었으면 됐을 것을 괜히 라면에게 분풀이한 것이 미안하고 어리석게 느껴져 한동안 마음이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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