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심리상담과 심리검사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치료, 치유, 상담, 면담, 코칭, 튜터링, 멘토링 등 다양한 주제어 아래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죠. 활짝 웃음꽃을 피우고 고민 해결의 전문가라 자칭한 이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서비스는 회기당 오만 원에서 비싸게는 삼십만 원까지 가격대 또한 다양합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첫째, 고액의 상담 서비스일수록 그 효과 또한 뛰어날까?
둘째,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담 선생님들 본인의 삶은 어떠할까?
셋째, 고대에는 이러한 서비스가 없었는데, 고대인들은 어떻게 삶을 살았을까?
우리는 첫째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담 서비스의 가격 측정은 상담사의 학력과 자격증 그리고 경력에 맞추어 각각 주관적으로 측정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금액과 서비스의 질이 정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심리상담에서도 상담의 효과성은 상담사의 기법과 매력만이 아니라, 내담자의 준비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준비된 내담자'가 있는 반면 '준비안된 내담자'도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고액의 상담 서비스라 하더라도, 상담사의 능력 여하와 달리 내담자의 상태에 따라 상담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둘째 질문에 대해서 저는 다소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답하고자 합니다. 무릇 상담의 효과는 상담자의 매력과 비례하는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볼까요?뚱뚱하고 수염이 지저분한 상담사와 먼지 날리는 방에서 상담받고 싶으세요? 아니면 깔끔하고 온화하게 꾸며진 상담실에서 양복을 입은 상담사에게 상담받고 싶으세요? 의심할 여지없이 많은 이들이 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삶의 태도도 동일할 거예요. 자신의 문제로 스트레스받고 고뇌하는 상담사와 자신의 시련을 스스로 짊어지고 이겨내는 상담사 중에 누구와 상담하고 싶으신가요?
하지만 저의 견해에 따르면, 많은 심리상담사들은 전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임상수련과 각종 교육생 시절을 보내면서, 상담 실습을 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수련감독에게 달려가 여쭈어 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면 수련 감독은 '이럴 땐 이렇게 해'하고 방법을 알려주죠. 많은 심리상담 교육생들은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기보다는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스승을 찾아가 도움을 받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그들 대부분이 심리상담 내담자였다가 상담수련자로 전향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그들에게 있어 상담은 자신이 어려움을 느낄 때 달려가는 의지처였고, 이제는 자신이 그 의지처가 되보겠다고 노력입니다. 하지만 심리상담의 임상 실습과정에서 많은 교육생들은 자신의 옛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어려움과 시련을 홀로 극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따라서 모든 상담사가 자신이 말하는 바를 실천하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스스로 시련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내담자에게 독립성과 주체성, 능동성, 자기 긍정성 등을 강조하며, 자기 자신도 그 자세를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들은 상담가이자 실천가이며, 이러한 삶의 자세로 인해 내담자에게 특유의 인기를 얻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상담 기술이 없어도,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분위기로 인하여 내담자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의 역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기점으로 볼 수 있어요. 오스트리아 빈의 1 학파라고 볼 수 있는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2 학파의 아들러, 3 학파의 프랭클로 이어지죠. 19세기 이후 빈스방거, 메이, 엘리스, 로저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탄생하여, 지금 21세기에는 미술치료, 음악치료, 독서치료 등 여타 인문학과 결합되어 더욱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해졌습니다.
그렇다면 19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정신적 그리고 심리적 고통을 어떻게 치료했을까요? 심리상담가들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신학과 철학이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았습니다. 심리학은 관찰과 가설 그리고 실험을 통한 논증의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에는 일반적인 원리가 있으며, 정신증상의 구분과 진단 기준 등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신학과 철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현재 종교인들은 정신분석학과 여타 심리학의 방법을 사용하여 신자들을 면담하지만, 이런 역사 또한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철학자들 또한 전문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하고 상대를 치유하는 경우는 드물었죠.
하지만 고대인에게 있어 신학과 철학이 영혼의 치료제였던 사실은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6세기 로마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있습니다. 보에티우스는 로마의 유명한 가문 출신으로 젊어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유학하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접했습니다. 그의 영특함은 주변으로 퍼져나가, 로마를 점령한 동고트족 테오데리쿠스왕의 귀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보에티우스는 국정에 임하면서 장관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하지만 계략으로 인해 그는 가택 연금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보에티우스는 억울함과 분노로 극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립니다. 이때 작성한 책이 '철학의 위안'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상상 속 인물인 '철학 여신'과 함께 가상의 대화를 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고뇌와 아픔에서 벗어납니다.
철학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일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으러 가는 중에 에우튀프론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응원하면서, 자신도 재판 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에우튀프론의 아버지에게는 노예 둘이 있었는데, 어느 날 노예 하나가 다른 노예를 죽이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에우튀프론의 아버지는 살인을 한 노예에게 벌을 주었고, 그의 처분을 구하기 위해 재판관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자 노예가 저체온증으로 죽어버립니다. 이에 에우튀프론은 자신의 아버지가 노예를 죽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불경하다 생각되어, 자신의 아버지를 스스로 고발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과 생각을 되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에우튀프론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고 급히 자리를 떠납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욥'이라는 인물의 일화를 보면 이성적 담화를 통해 자신의 시련을 극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은 마을에서 의롭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어느 날 도적과 운석에 의해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슬픔에 빠진 욥에게 4명의 사람이 찾아와 신에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라고 설득합니다. 이에 욥은 자신이 결백하며, 신에게 고백할 것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욥은 신의 대답을 듣고자 홀로 외치고, 그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는 신과 대화에서 도덕적인 선악과 자연재해는 관련이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오히려 신의 섭리에 따라 만물이 운행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즉 고대인의 사료에서는 특별한 심리학적 지식이 없이도, 전문적인 심리학 이론을 적용하지 않고도, 인간 영혼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고전의 자료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심리상담가의 위치는 모호하고 설 자리를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유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담서비스의 효과는 금액과 비례하지 않는다.
둘째, 심리상담사라고 해서 모두 삶의 시련을 스스로 극복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지는 않는다.
셋째, 고대인들은 심리상담이 없이도 철학적인 대화와 사색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저는 심리상담에 돈을 쓸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마음 치유 방법으로 보이는 '철학'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철학 또한 다양한 하위 영역을 가지고 있죠. 그중에서도 정신적 고통은 인간 개인의 삶과 연관이 있기에 삶과 연관된 철학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철학의 여타 하위 학문들 이를테면 논리학, 형이상학, 사회철학, 정치철학, 언어철학 등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거리가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 분야는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철학과 다른 면모를 지닙니다. 현대의 전문화된 철학은 현실을 떠난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면모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인간의 현실적 고통과 삶에 연관된 철학의 하위영역으로 '실존철학', '생철학', '철학실천'을 선정했습니다. 저는 이를 아울러 고대인의 마음 치유와 같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방법으로써 '철학', 즉 철학을 활용하여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을 구상하고자 이 책을 기획하였습니다.
이 책은 스스로 삶의 멘토라 지칭하는 심리상담사들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수천의 돈을 쓰고도 여전히 시련의 노예로 살고 있는 심리상담의 내담자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되고자 기획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