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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Aug 30. 2022

큰아들, 그리고 영화 《내일의 기억》

1년 4개월이 아주 빨리 갔음 좋겠어, 근데 내일의 난 지금을 후회할까?

2022년 8월 23일 화요일 밤 10시 36분...


지난 7월 18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사랑하는 나의 큰아들의 수료식이 오늘 있었다.

무사히 5주의 훈련을 수료한 나의 아들 민종이에게 계급장 하나와 태극기를 달아주었다.


수료식을 마치고 아들과 함께 미리 얻어둔 훈련소 근처 펜션에서 준비해 간 삼겹살 바비큐를 아들과 함께 해 먹고, 아들이 좋아하는 골드키위도 양껏 먹이고, 잠시나마 편하게 쉬도록 해주었다.


5주 만에 본 아들과 함께 보낸 6시간은 쏜살처럼 흐르고 다시 아들을 훈련소로 보내려는데 눈앞이 흐려진다.

군복 바지를 입으면서 발목에 매는 고무링이 짝짝인 것을 남편이 확인하고 이유를 물었더니 잃어버렸단다.

마음이 좋지 않아서 새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훈련소 안에 있는 군용 마트에 들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모두 얘기를 해보라고 했더니 우산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얼른 검은색 삼단 우산과 고무링과 질 좋은 속옷을 몇 개 더 사주고 들여보냈는데 돌아오는 길 훈련소에 입소할 때처럼 또 논산엔 비가 내린다. 어쩜 이리도 날씨는 매번 내 마음을 대신하는 것인지?


아들은 오늘 나를 만났을 때 만나자마자 자신이 사놓은 선물을 내밀었다.

피엑스 점원 누님께 "엄마 드릴 건데 제일 좋아하실 화장품으로 추천해 주세요"라고 물어서 주름 기능성 달팽이 크림을 미리 사두었던 걸 이미 아들과 통화할 때 들었었다.

그리고 나를 울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봉투는 훈련소 입소 때 내가 속옷을 담아준 봉투에 자신이 훈련소에서 받았던 간식인 초코파이와 후레쉬베리, 쿠크다스 케이크를 한 봉지 가득 모아둔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모은 것인지 아니면 작은 아들과는 달리 원래부터 단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이 모아둔 그 간식에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큰아들이 준 선물~~♡


아들을 들여보내고 1박을 하기로 했기에 다시 우리는 펜션으로 돌아왔다.

큰아들과 헤어져서 기분도 다운된 데다가 비가 와서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작은아들과 나는 영화를 보기로 했고, 펜션 티브이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기본 영화를 찾는데 마침 제목이 내 스타일인 영화 내일의 기억이 눈에 들어왔다.





2022년 8월 29일 밤 11시 무렵...


내일의 기억은 2007년 5월 개봉작으로 제법 오래된 일본 영화이다.

잘 나가는 광고회사의 부장인 주인공 50대 '사에키'(와타나베 켄)는 그의 아내 '에미코'(히구치 카나코)를 태우고 임신한 딸과 사위와의 식사 약속에 가게 된다. 매일 직접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하던 거리 이건만 그날 사에키는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만다.

그날 이후 사에키는 가장 최근의 일부터 하나씩 기억을 잃기 시작한다. 단순한 건망증으로 여겼으나 회사의 중요한 미팅 약속까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실수가 잦아지고 자신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병원을 찾은 사에키는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는다. 결국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사랑하는 아내 에미코와 단둘이 집에 머무르게 된다. 에미코는 불안해하는 사에키에게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시간은 더 흐르고, 안타깝게도 흐르는 시간보다 빠르게 잃어가는 사에키의 기억들...

정신이 제대로 돌아온 어느 날 사에키는 아내가 일을 나간 사이 홀로 요양원을 알아본다.

바로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그 요양원을... 그리고 그날 사에키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젊은 시절의 에미코의 환영을 보고 아내를 처음 만났던 산속의 도자기 공방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도자기 공방의 장인 '스가와라' 스승의 모습은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진짜였을까?

그는 사에키에게 자신이 치매가 아닌데 자꾸 놈들이 자신의 자유를 억압해서 자신을 가두려고 한다며 요양원을 탈출했다고 고백한다. 둘은 그날 밤 함께 도자기 가마에 불을 지피고 따뜻한 술을 마시며 즐겁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밤을 보낸다.

내게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특별하고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스승인 스가와라는 대략 30년 전 모습도 노인이었기에 별반 그 모습이 그때와 다르지 않고 그대로였는데 "술과 음식과 여자만 있으면 충분해"라고 해맑게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

'꽃이 피고 지는 밤에 긴자의 버드나무 아래서....'로 시작되는 그 노래를....




요양원을 탈출한 도자기 스승과 곧 요양원에 가게 될 사에키... 그리고 사에키에게 머리를 맞아 피가 나면서도 '당신이 이러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를 외치며 자신의 남편을 끌어안고 놓을 줄 모르던 '가지에 달린 열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미코'의 모습,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을까?


영화의 제목 '내일의 기억'에서처럼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가 치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를 예측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요즘 부쩍 건망증이 심해지는 나에게는 특히나 와닿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의 미래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오늘이라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내일의 기억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우울이 먼저 엄습하기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어떻든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큰아들이 1년 4개월 남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오기까지 그 시간이 아주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것과 아들이 돌아왔을 때 내가 지나온 오늘이 행복했었다고 그리고 후회 없이 잘 살았노라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2022년 8월 30일의 새벽을 맞고 있다.




추신.

2022년 8월 23일, 논산훈련소 수료식 사진


추신 2.

https://brunch.co.kr/brunchbook/shuvy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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