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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셋째 아이 이름은 인테리어

by 봄선한디자인


나의 셋째 아이 이름은 인테리어

20여 년 전, 17평짜리 작은 빌라를 시부모님께 감사하게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신혼집. 드디어 임차인이 이사를 나가고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 막상 들어가 보니 눈앞이 캄캄한게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저기 낙서로 얼룩지고 찢어진 벽지하며, 의자바퀴를 얼마나 동동 굴렸는지 오도독 뜯겨져 간신히 그 살만을 붙들고 있는 만신창이 같은 장판지하며, 베란다 세탁실 벽 페인트는 또 왜그리도 휘날리는지, 마치 생선비늘마냥 한켜한켜 날리는 모습들이 내 마음을 더 깊숙이 후벼파고 있었다.


가뜩이나 오래도록 지속된 철야업무로 몸이 퉁퉁 붇고 마음까지 피폐해져 괴뢰웠던 내 삶을 새롭게 바꾸어 보고자 이렇게 결혼을 결심하고 기대반 설렘반으로 찾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실상을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장처럼 지워지고 뇌는 반이상 통째로 날아가 버려 순간 시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며칠후면 결혼식장에 입장해야 하는 난 낡고 암울한 빌라를 그리 오래도록 감상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 고치면 되지!’ 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나의 좌충우돌 셀프 인테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인테리어, 나의 신혼과 함께한 첫 작품

처음엔 동네 인테리어 가게 몇 군데를 방문해 견적을 받아보았다. 당시 인테리어 가게들은 대부분 “○○지물포”나 “○○도배장식” 같은 이름을 달고 있었고, 가게 안에는 동글게 말린 장판들이 늠름한 대장부처럼 서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도배지는 팔을 늘어뜨린 채 ‘나를 골라보라’는 듯 매달려 있었지만, 연세 지긋한 사장님들을 보니 신혼집 수리를 맡기기엔 선뜻 믿음이 가지 않았다.


결국 난 혼수 이불과 그릇 가게 대신 을지로 타일 매장으로 직행했다. 직접 공사 품목을 정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돌며 발품을 팔았다.


화장실의 가로, 세로, 높이를 실측하고, 여유분까지 계산해 타일 박스와 부자재를 차 트렁크에 싣고 신혼집으로 향했다. 실력 있는 타일 시공 반장님을 소개받아 화장실 공사가 시작되던 날, 새벽부터 설레는 마음에 잠도 설치며 일찍 도착해 준비하고 있었다.


타일 반장님의 기막힌 손놀림을 어깨 너머로 슬쩍슬쩍 훔쳐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반장님이 뒤를 돌아보며 “타일 두 장이 부족해서 오늘 마무리를 못하겠다”고 하시는게 아닌가?


오메오메! 알려주실 거면 미리 좀 말씀하시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부족하다고 하시면 을지로를 언제 다녀온단 말인가! 결국 남은 현관 타일 일부로 땜질하며 마무리했다.


이후 남은 공사들도 대부분 셀프 시공으로 끝냈다. 퀄리티는 슬쩍 뒤로 미뤘지만, 신혼집은 결혼식 날짜에 맞춰 어떻게든 완성되어 갔다.



셋째 아이 같은 나의 인테리어

근사한 아파트나 고급 주택처럼 멋지진 않았지만, 나의 첫 작품이자 첫 모델이 되어준 17평 낡은 빌라, ‘금성빌라’는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메말랐던 감각을 깨우고, 나를 촉촉이 적셔주었다.


그렇게 첫아이가 태어나고, 둘째가 걸음마를 뗄 무렵, 나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인테리어 사업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고객의 집을 공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아프다고 유치원 담임에게 전화가 와도, 다음 날 고객이 이사 들어와야 했기에 현장 일을 마무리하느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늘 아픈 아이들보다 고객님의 집이 우선이었던 시간들, 돌아보면 가슴이 시린 공간들이지만, 그 공간 속에서 나도, 아이들도 함께 성장해갔다.



3D 도면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러던 어느 날, 한 고객님이 유독 까다롭게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아니, 다른 업체처럼 왜 3D 도면 디자인을 안 보여주세요? 제가 요구한 걸 도대체 어떻게 미리 확인하죠? 견적도 좋고, 사장님도 성실해 보여서 좋은데, 도면이 없으면 불안해요~ 잉잉~"


그렇게 고객님의 불평과 불만이 국내의 강의를 시작으로 팩폭으로 유명한 3d아티스트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던 것이다.


그당시 사무실에선 2d가 아닌 3d 인테리어도면이 절실했기에 현장마다 외주도면 발주를 감행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너무도 맞지 않았던 상황에 내가 직접 작업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여기저기 유명한 강의들을 검색, 3d맥스 프로그램을 익히기 위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실시간 온라인 강좌로 입장해서 새벽내내 작업한 숙제를 제출하는 낮과 밤이 뒤엉켜 지냈던 햇수가 대략 4년 정도..,


VDT증후군을 최소하 하기위해 타블렛마우스를 비롯하여 트랙마우스, 휠마우스 등등 다양한 마우스들의 소비와 와이드 모니터 앞에 켜켜이 쌓인 컵라면그릇들도 한몫 하며 그렇게 나의 긴 긴 3d도면 작업 훈련 시간들이 누적되어갔다.


그러나 그렇게 쌓여간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맥스란 툴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업무프로세스에 접목하기에 너무 무겁단 판단과 인테리어회사에선 맞는 프로그램이 아니란 생각에 바로 스톱~ 우선은 다른 툴로 변경해서 지금까지 봄선한의 디자인 도면을 다시 완성해 오고 있다.



공간이 주는 선한 영향력

3D 도면은 더 나은 공간을 연구하고, 고객 한 분 한 분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시각화된 견적서의 표준화가 완성되기까지 쉬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을 창의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디자인 역량이며 그 역량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멋진 3D도면도 의미가 없다.


누군가의 소중한 집을 디자인 한다는 것은 단순한 수리와 같은 공사가 결코 아니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일이며, 그럴 때 공간이 주는 유·무형의 선한 영향력이 비로소 발휘되고, 우리는 그 공간 속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기에 공간을 다중적으로 바라보며 풀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3D 도면으로 표현해 내는 기술만큼 무엇을 담아낼 것인지를 유의미하게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역량을 두루 갖춘다는 것이 진정한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공간이 건강한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디자이너의 사명처럼 간직하며, 오늘도 나는 35도가 넘는 폭염 속 현장으로 돌진하며, 더 나은 공간을 향한 여정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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