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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Apr 02. 2022

아이슬란드 프리퀄

(20) 아이슬란드 프리퀄


사실 아이슬란드는 한번 출발 실패를 겪은 여행지다.


여행 두 달 전 회사에서 독일 출장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출장 일정 후 공휴일이다 남은 연차다 끌어다 붙이면 꽤나 시간을 낼 수 있는 황금연휴였는데, 마침 놓치지 않고 스위스와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했었다. 6개월 전부터 직접 본부장 선까지 재가를 받고 혹여나 문제가 있을까 기타 부서에도 전부 확인을 받아 놓은 상태. 역시 이런 건 일보다 잘하지.


출장자들 중 친하진 않지만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계획도 짜고 발권도 했으니 이제 설레기만 하면 되는 상황.



그러나, 여행이 뒤집어진 것은 아주 황당한 이유였다.


동행이었던 어린 사원이 해외 출장 하루 전 퇴사 통보를 한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어리석은 행동인 것은 틀림이 없고, 누가 봐도 퇴사 기념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의도로 보일 것이 뻔하다. 본인은 기를 쓰고 아니라며 드러눕다시피 했지 과연 이해한다며 받아들여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덕분에 출장인원 전체 연차 취소물론, 일부에게는 조기 복귀 명령까지 떨어졌다.


사내의 핫한 가십거리가 된 것은 당연지사, 특히 여행이나 개인 일정을 계획했던 나를 포함한 몇몇은 그 중에서도 역적이 되어버렸다.


취소 수수료가 이만저만이 아니에도 사실 딱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원인이 된 당사자의 태도를 받아들이 것이 버거웠을 뿐이다.


자신의 행동이 아주 어리석었음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막내 사원. 이 상황은 모두 경직되고 수직적 회사 구조 때문이라며 한참을 떠들다 결국 세대차이까지 끌고 온다. 막판에는 노무사까지 운운한다.


나는 이미 벌어진 일, 특히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유가 뭐였고 누구 탓이었지를 분석해가며 불평할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더 이상 듣고 있기가 힘들어 외면했다. 구시대적 수직구조의 피해자라는 저 어린 친구에게 정상적인 사고는 이미 불가능할 것 같으니 무시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


이 친구는 자신은 무결함을 아주 열심히 증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일을 그렇게 하지. 평소 평판도 좋지 않은 친구라 모두들 '역시...' 하며 체념한다.


이 친구는 결국 계획된 출장일정을 미쳐 다 소화하지 못하고 3일만에 송환되었다. 그 후 의외로 퇴사를 철회하며 근근이 다녔으나 마지막까지 방치되어 퇴사했다. 끝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음은 덤.


구글쯤되면 저런 상황을 받아 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주변에 구글 다니는 친구가 없어 물어볼 수가 없다.


누구나 일을 그르칠 수는 있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의 인간이니 실수할 수 있지. 다만 하나의 사건이 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이어져선 안 된다.


실수했다면, 그르쳤다면, 적절한 시점과 적절한 마음가짐의 사과는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


음, 적어도 "그래도 애는 착해요.."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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