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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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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Sep 24. 2024

노마드의 올림픽대로


"너 올림픽대로 밤 드라이브가 얼마나 기분 좋은지 알아?"


미국 교환학생 시절 만난 대학교의 조교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그분이 조교인지, 선생님인지는 꽤 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과 직장이 있다는 것을 구직활동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조교나 선생님이 아닌 한국 학생들이 많이 오는 대학교의 계약직 인솔 직원이었다. 그 역시 체류나 취업 비자와 연계된 터라 아마 최소한의 생활비 정도를 급여로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나름 부티가 났던 분이라, 이십 대 초반의 내가 꽤 선망했었다. 아마 지금 내 나이쯤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서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당시의 나는 올림픽대로가 왕복 12차선쯤 되는, 올림픽경기장에서부터 시작하는 장대한 도로인 줄 알았다. (뭐, 비슷하긴 하다.) 천천히 달리면 안 되는 도로이니 성능이 좋은 차로만 달려야 하며, 저녁에는 스피커가 터질 듯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감상에 따라 상상한 올림픽대로는 컨버터블의 외제차 정도는 되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의 나는 서울을 전혀 몰랐으니 '그런 곳이 있구나' 하고 믿으며 넘겼다. 그래도 그녀는 선생님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녀가 향유했던(?) 세련되고 화려한 노스탤지어의 올림픽대로는 내 기억 속 무의식으로 사라졌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 인사차 나눈 그녀와의 대화는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였는데, 가볍게 물어본 탓에 가벼운 답변으로 되돌아왔으나 내게는 꽤나 센세이션이었다. 그녀는 여기서 조금 더 체류하며 미국을 여행하고, 돈이 모이면 다른 나라로 옮겨 비슷한 일을 구해 살아보겠노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본 '노마드'였다.


그때는 노마드란 개념이 없었다. 10년 전이니 스마트폰이나 무선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이었고, 일은 일터에서만 가능한 행위였으니 재택이나 원격근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내가 붙임성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그녀 역시 직업윤리에 충실했으므로, 우리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각자 살아남기 바빴다. 말했던 대로의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과 상상 속의 그녀는 자유로운 모습으로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여전히 올림픽대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


얼마 전, 자신을 당당하게 노마드라고 소개하는 친구를 만났다. 진짜 친구는 아니고, 내가 맥주를 가르치는 소셜 플랫폼에서 처음 만난 이십 대 중반의 어린 친구였다. 과거의 기억 덕분인지 노마드에 대한 환상을 안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아주 관심이 가는 자기소개였다. 이 친구의 노마드는 어떤 형태였을까.


"저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어요. 요즘은 사랑에 관한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어요."


"여행 프로그램 개발하느라 한 달 동안 태국에 다녀왔답니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없어 피곤하다는 듯 푸념하는 이 친구의 사업은, 친한 친구와 장소를 대관해서 대규모 소개팅을 열어보고 싶다는 희망찬 결의였고, 태국은 그저 개인 여행이었다. 물론 내가 들은 것은 아주 일부며 이 모든 것들이 위대한 사업 아이템이자, 큰 성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응원한다. 그렇지만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나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 조용히 응원만 하기로 했다.


다른 장에서 서술했지만 내가 갈망하는 것들은 언제나 나를 비켜간다. 나는 늘 노마드를 꿈꾼다. 차라리 불가능한 직업이었다면 깔끔하게 포기했을 텐데, 그렇지도 않다. 노트북과 전화기로 근무가 가능한 일을 하고 있지만 노마드는커녕 재택근무도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코로나가 대유행 하던 시기에도 꼬박 사무실로 출근했다. 출장지에서도 여행지에서도, 급하게 걸려온 전화의 마지막 멘트는 늘 똑같다.


 "사무실에 가서 처리할게요."


-


상경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밤이었다. 꽉 막힌 도로는 앞으로의 내 서울 생활을 암시하는 듯 막막했다. 국회의사당이 왼편으로 보여 홀린 듯 잠깐 바라보다, 눈길을 돌려 내려다본 내비게이션의 도로는 원래부터 빨간색이었는지 몇십 분 째 바뀌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다, 머리 위 이정표를 마주했다.


'올림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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