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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영 Dec 20. 2023

운동을 말할 때 집순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 오운완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해시태그다.

동기부여, 자기만족, 과시, 관심 끌기 등 다양한 욕구가 버무려진 피드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가 부각된 사진이 올라온다.

젊고 매력적인 몸매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 아파트는 산 아래에 위치해 있어 다른 동네에서도 차를 타고 와서 등산을 할 정도다. 아침 9시 언저리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로 보내고 체력관리를 위해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을 오른다. 친한 언니들도 거의 매일같이 산엘 오른다. 산이 아니면 헬스장, 좀 더 여유가 있으면 필라테스니 요가니 개인 레슨도 다닌다.

이쯤 되면......


나만 안 해, 운동.

’운동‘ 이라는 주제에는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이 나다.

난 애가 셋이라, 막내가 아직 어려서 손이 많이 가, 큰 집으로 이사하고 나니 집안일이 끝이 없어...... 등 다양한 핑계를 대며 게으른 나를 합리화시켜 본다. 막둥이까지 보내고 집에 돌아와 어질러진 거실, 주방, 아이들 방을 그대로 두고는 밖으로 운동하러 나가는 걸음이 도무지 떼어지지 않는다. 당장 읽고 싶은 책, 필사하고 싶은 글, 밀린 다이어리가 산더미다. 나에게 운동은 아마 그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게 분명하다.

만 40살이 되고 올해 처음 받은 종합건강검진에서 숨쉬기 운동만 겨우 하는 내가 100% 이상의 근육량을 가질 수 있는 것을 포함해 그나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부모님께서 만들어주신 타고난 건강체질 때문이라 생각한다. 1년에 감기도 거의 앓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이런 건강한 근육돼지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짜로 건강하게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면 남은 시간은 나의 노력이 더해져 이를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밀려온다.​


그래서 러닝머신 기계를 들여볼까 고민했다.

그 육중하고 시커먼 운동기구를 위해 예쁜 거실 한 켠을 내어주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먼지만 쌓이지 않을까, 빨래건조대로 기능이 바뀌는 건 아닐까 의심도 많았다. 주변에서도 다들 말리거나 부정적인 조언들 뿐.

하지만 내가 아니면 남편, 그도 아니면 저체중인 큰 딸을 어떻게든 운동시켜 볼 요량으로 큰 마음먹고 러닝머신 기계를 들였다. 그리고 쿠팡으로 전용 운동화도 구매했다. (쓰지 않게 될까 봐 브랜드 운동화 중 가장 저렴한 것으로)

결과는??

나는 구매 후 한 달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러닝머신 위를 걷는다.

경보, 산책, 러닝, 지방연소 등 다양한 프로그램 30분 코스를 적어도 하루 1회, 많게는 3회까지 걷고 뛴다.

육아, 살림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까지 밀려있는 일상에서 바깥운동을 나가기 힘들었던 나에게 딱이다. 딸들이 막둥이랑 놀아주는 짧은 30분, 아침에 아이들보다 일찍 일어나 30분, 일요일 밤 남편과 배부르게 먹고 난 뒤 넷플릭스를 보며 30분. 러닝머신 위를 걷기 시작하면서 작게나마 성취감을 느끼고, ‘나도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나도 몰랐다. 평생 못할 것만 같은 일에도 아주 작은 시도와 용기를 한 번 내볼 만하다.

마라톤 25회(책 집필 시까지) 완주, 극강의 고통을 맛본다는 트라이애슬롯까지 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겨우 거실의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뛰는 내가 한없이 작아지긴 한다. 달리기를 말하는 그의 책을 읽고 고작 러닝머신 운동에 대해 쓰고 있는 내가 우습고 가엽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 일생 역사적인 변화다. 인프제(INFJ) 집순이는 이렇게 하루에 적어도 30분, 많게는 90분을 뛰고 걷는다. 연초에 세웠던 나만의 로망 운동(아름다운 플라잉요가나 역동적인 스케이트보드 등)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는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장족의 발전이고 혁명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를 아는 친구들은 놀라서 응원해 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마, 마음이 넓으신 무라카미 하루키 아저씨도 나를 본다면 분명 토닥여줄 것이다.

불건전한 것(글쓰기)을 계속하기 위해 건전한 것(달리기)으로 몸을 단련한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워라밸 같은 것이다. 일반인에게 마라톤은 쉽지 않은 고통스러운 운동이지만 그는 달리면서 활력을 찾고 동력을 얻어 글을 써내는 것 같다.

꼭 건전함의 유무로 나누지 않더라도 그의 인생 공식을 나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내 생활에도 육아, 살림 등 꼭 해내야 하는 의무와 같은 일이 있다면 그것을 즐겁게 할 수 있게 해주는, 활력이 되어주는 일들이 있다. 독서가 그렇고, 필사가 그렇고, 기록이 그렇다. 이젠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뛰는 것까지 그렇게 되었다.

요렇게 귀염뽀짝 수준의 러닝머신 운동을 계속하다 보면 좀 더 용기를 내어 내년엔 집 밖을 나서야 할 수 있는 운동도, 근력운동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 일어나기 전에 빨리 한 코스 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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