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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위 Feb 16. 2022

전문가라는 착각

내가 이 바닥에서 10년을 굴렀는데


혼돈의 한국어 문법을 배운 지 1년도 안 된 불쌍한 초급 학생들이 넘어야 할 관문들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용언(用言)의 수많은 불규칙 변화와 탈락이다. '용언'이란 '형용사'와 '동사'를 말하는데 우리는 말을 할 때 이 용언을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시켜 사용한다. 그래서 한국어의 형용사와 동사에 '활용하다', '사용하다'라는 뜻인 '용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예외 없이 동사와 형용사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 문법 규칙이 철저히 결여된 외국 학생들에게는 동사 원형 '부르다'의 비격식체 현재형이 왜 '부릅니다'인지 격식체 현재형은 왜 '불러요'가 되는지 일일이 알려 주어야 한다.


불규칙 변화는 초급 문법이다. 다시 말해 문법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초급 문법은 지난 10년간 수십 번을 반복해 왔던 과정이라 이제 눈을 감고도 가르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학생들의 질문이 허를 찌를 때가 있다. 문제의 문법은 "르 불규칙". 르 불규칙 같은 경우는 다른 불규칙 변화보다 훨씬 복잡한 변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불규칙 중에서도 거의 뒷부분에 가르치는 편이다. 최종 보스의 느낌이랄까.


일단 '르 불규칙'이란 어간이 '르'로 끝나는 용언들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를 만나 불규칙으로 변화하는 걸 말한다. 예를 들면 동사 '부르다' 같은 경우.


부르 + 어요 → (으 탈락 일어남) 부ㄹ+어요 → ('르'의 앞 음절에 받침 ㄹ 첨가가 됨) 불ㄹ+어요 → 불러요


이렇게 총 두 차례의 변화를 거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불러요'가 최종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우리는 이 중간 프로세스 없이 바로 출력이 가능하지만 외국인 학습자들은 그렇지 않다. "불러요"라는 기본적인 동사를 말할 때도 '탈락'과 '첨가'라는 복잡한 과정의 처리가 필요한 것이다.


어느 날은 고급반 학생이 질문을 해 왔다. '따르다(그릇을 기울여 액체를 조금씩 흐르게 하다)'와 '이르다(도착하다)'는 둘 다 어간이 '르'로 끝나는데 왜 하나는 '따라요'가 되고 다른 하나는 '이르러요'가 되나요? 이게 도대체 뭔 소리냐 싶을 것이다. 한국어 선생님인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학생 말에 따르면 "르 불규칙" 변화에 따라 '따르다'와 '이르다'의 변화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따르 + 아요 → (으 탈락 일어남) 따ㄹ + 아요 → ('르'의 앞 음절에 받침 ㄹ 첨가가 됨) 딸ㄹ+ 아요 → 딸라요

이르 + 어요 → (으 탈락 일어남) 이ㄹ + 어요 → ('르'의 앞 음절에 받침 ㄹ 첨가가 됨) 일ㄹ+ 어요 → 일러요


하지만 '따르다'의 현재형은 '딸라요'가 아닌 '따라요'가 되고 '어떤 장소에 도착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르다'의 현재형은 '일러요'가 아닌 '이르러요'다. 학생의 질문을 듣고 잠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모르겠다. 이걸 어쩐다?! 10년 차 한국어 교사 인생 처음으로 난관에 봉착해 버렸다...! 라며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나의 일상이다.


그럼 학생이 질문한 내용을 대답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해답은 간단하다. 솔직히 "모르겠다."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이름을 달고 이 일을 10년간 계속해 왔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여기에서 임시방편으로 아무리 꾸며내 봤자 학생에게 혼동만 줄 뿐이다. 나의 얄팍한 지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길이다. 따라서 이때는 학생에게 나도 잘 모르겠으니 공부를 한 다음에 다음 시간에 꼭 알려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대처 방법이다. 물론 평소에 공부를 해 두어 이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상책이지만.


한국어 교사 초기에는 실수를 많이 범했다. 난 모국어 화자인 데다가 국어 국문 전공자인데, 게다가 한국어 교원 자격증까지 있는 한국어 교육 전문가인데. 이런 내가 이따위 초급 문법을 모를 리가 없는 게 믿기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습관적으로 사용해요. 원래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외워 두세요.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문에는 명확한 해답이 있었고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분야니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안다고 단단히 착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어떤 일에 오랜 기간 종사하고 있으면 그 일에 대해 전문가라 자만하기 쉽다. 물론 그 직업의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아는 것은 많다. 아니 당연히 많아야 한다. 그러나 한 분야에 발을 담근 이상,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상, 자신은 아직도 해당 분야에 대해 아직도 모르겠다는 전제를 달아야 한다. 내 지식은 너무나도 얕고, 무 하나 자를 수 없을 정도로 물러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더욱 깊게 만들 수 있고 자신을 벼려 좀 더 날카롭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나의 어머니 윤 여사이다. 올해로 62세인 어머니는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 현직 물리치료사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1년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학창 시절 기억 속의 어머니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저녁 늦게 퇴근을 하는 워킹맘이었다. 어머니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출근을 하신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신다. 그 정도로 일을 하셨으면 그냥 기계적으로 병원에 가서 눈을 감고 치료를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아직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인체 해부학 같은 책을 보시고 공책 가득히 메모를 하신다. 올해로 물리치료사 경력 25년 차인 어머니도 알고 계시는 것이다. 당신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다 알 법한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모으면 1만 시간이 된다고 한다. 나에게는 어떻게 적용될까? 난 주말에는 강의를 하고 평일에는 3시간 정도 수업 준비를 한다. 일주일 중 하루를 제외하고 하루에 적게는 3시간, 많게는 9시간의 강의를 한다. 이렇게 지난 10년간을 살아왔다. 정확히 1만 시간을 채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7-80%는 그렇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한국어 교육 전문가입니다'라고 말하기가 주저된다. 기껏해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도로 말할  있다. 절대로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이제는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이만큼  시간을 노력해도 절대로 완벽한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문가를 흉내  뿐이다. 우린 아직도 모르는  많고 아직도 배워야  것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결코 전문가가   없다고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 면이 있으니까. 무료한 일상에서 새로이 배워야  것이 있다는 , 구렁텅이 같은 삶에도 매일 해야  일이 있다는  얼마나  행복인지는 지난 10년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므로 가끔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한국어 선생님이라도, 한국어 교육 전문가를 흉내 내고 있는 이런 나라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그저 이것만 기억하자. 전문가라는 착각 속에 살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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