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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Sep 30. 2024

친구, 남편, 손주 셋! 없는 게 없는 영숙 씨

얼마 전 56년생 영숙 씨는 전라도 광주의 한 척추전문병원에서 허리수술을 받았다.

사실 수술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절차가 너무나 간소한 '시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6년생 영숙 씨는 그 간단한 시술에 고귀한 육신을 철저히 내어주고 말았다.

수술과 회복까지 보통 1주일이면 된다고 홍보하던 것과는 달리 56년생 영숙 씨는 장장 49일간의 입원을 감행해야만 했다.

염증수치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대학병원으로 전원 해야 한다는 것과 조금만 내려가도 퇴원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소견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그렇게 장장 49일간의 길고 긴 여정을 끝냈다.

퇴원 당일, 가진 거라곤 사랑밖에 없는 56년생 영숙 씨는 모든 의료진 및 청소하시는 분들의 선물을 하나하나 챙겨 전달하며 승리의 퇴원길을 나섰다.

퇴원소식에 영숙 씨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띠링 띠링 핸드폰 문자음이 울릴 때마다 영숙 씨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그렇게 오만 원, 십만 원씩 입금될 때마다 영숙 씨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함과 전무후무한 49일간의 무용담을 전했고 친구들에게 큰 위로와 사랑을 받은 영숙 씨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나와 한참을 영숙 씨 친구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던 중 또 한 번의 문자음이 들려왔다.

"어머, 영주야! 뭐니 이거? 엄마 돋보기안경 가져와봐."

"왜? 내가 볼게. 핸드폰 줘봐요."

핸드폰 문자에 찍힌 건 사업을 하는 엄마 남자사람친구, 남사친의 이름과 "1,000,000만 원 입금"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영숙 씨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내뱉었다

"십만 원을 잘못 보냈네!"

영숙 씨는 재빨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돈 잘 못 보냈어. 계좌번호 보내. 다시 보내줄게!"

급박한 영숙 씨의 어조와는 달리 영숙 씨의 친구는 여유롭게 응수한다.

"나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내 딸이 내연관계로 의심한다는 농담 섞인 문자까지 보내봤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던 영숙 씨의 남사친은 급기야 영숙 씨의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그제야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크게 하니까 그 정도는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예전에 동창회 끝나고 집에 몇 번 데려다준 적 있어. 그게 너무 고맙게 느껴졌나?"

"여자면 바로 잘못 보냈다고 얘기했을 텐데 남자라 자존심 때문에 그러기가 쉽지 않을 거야."

급기야 나는 실제 은행 어플을 열러 입금 시뮬레이션을 펼치기 시작했다.

입금과정에서는 입금액이 합 3번이나 확인되기 때문에 실수로 십만 원 보낼 것을 백만 원으로 보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영숙 씨와 나는 '그래도 그렇지....'를 돼 내었다.

다행히 아직 결혼 안 한 아들이 하나 있다는 말에 영숙 씨와 나는 조금은 안심이 되어 살면서 꼭 감사함을 갚아야겠다는 굳센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함께 또는 근처에 늘 살다가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을 와 있는 나는 영숙 씨의 안부가 궁금할 때마다 연락을 하면 어김없이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다.

"나 친구들이 놀러 온대. 거기 백수해안도로 쪽 경치 좋은데 알지? 거기 펜션 빌려서 놀라고."

얼마 전에는 산낙지가 먹고 싶어 하는 큰 아들과 내가 한국이 그립다 말하니 영숙 씨가 한마디 한다.

"어머! 내 친구 **알지? 오늘 남편이랑 같이 온대. 무안 가서 낙지 정식 비싼 거 사준다는데?"

"그래 엄마, 맛있게 먹고 꼭 사진 찍어 보내!"

MBTI가 뭔지도 모르는 영숙 씨지만 친구들에 늘 둘러싸여 있는 그녀에게 나는 넌지시 한마디를 던져본다.

"엄마는 정말 POWER 'E'네."

  


56년생 영숙 씨와 평생을 함께한 49년생 수환 씨, 우리 아빠 이야기다.

고구마줄기를 캐 먹던 집안에서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낸 후 성실함을 평생의 무기로 삼으며 자수성가하여 사업체를 이루어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도 여전히 현직에 있는 70대 중반 로맨티시스트.

말이 없어도 너무 없어 영숙 씨의 속을 뒤집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영숙 씨를 향한 그의 스윗한 사랑과 한 박자 느린 웃음은 한 편의 중년 로맨틱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또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중력의 법칙을 철저히 따르는 축 쳐진 아빠의 눈은 늘 측은함을 유발한다.

그런 순하디 순한 눈을 장착한 것도 아마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이다.

 아빠의 계속되는 묵언수행을 견디다 못한 영숙 씨는 결국 "내가 못살아!" 한마디와 함께  늘 평생 해로를 다시금 약속하는 사랑스러운 부부다.

식료품보다 맛있는 주전부리 쇼핑에 더 심취하게 되는 Costco.

영숙씨집의 귀한 곳간, 즉 작은방에는 여러 가지 음식부터 갖가지 주전부리 간식까지 가득 차 있다.

요한이와 노아는 할머니집에 가면 늘 그곳부터 먼저 들어가 이것저것 찾곤 했다.

영숙 씨가 좋아하는 음식, 간식부터 보관이 힘든 과일까지 영숙 씨를 위해 서울 코스트코에서  전라도 광주까지 늘 택배박스가 온다.

늘 정해진 시간에 엄마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고 그 시간대에 전화가 오지 않으면 느낌으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정확히 맞추는 둘의 관계는 함께 한 40년이 넘는 세월이 증명해 준다.

서로 다른 남녀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어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했다.

남은 일생도 56년생 영숙 씨는 "내가 못 살아!"한마디와 함께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선뜻 요리해 낼 것이고 아빠 역시 엄마가 좋아할 만한 간식을 찾아 박스채로 선물하며 백년해로할 것이다.  

 



아픔도 즐거움도 함께 나눌 수 있음에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친구들

수십 년의 삶을 함께 하고도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애증의 남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각각의 개성이 넘치고 넘치는 귀여운 손주 셋까지

56년생 영숙 씨는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  

때로는 돈도, 좋은 차도, 넓은 집도 인생 중년에 생기는 허한 마음을 채우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56년생 영숙 씨는 다르다.

시끌시끌 친구들의 수다

조근조근 과묵한 남편의 헛기침

그리고 재잘재잘 손주들의 쫑알거림 덕분에 56년생 영숙 씨의 마음은 허 할 틈조차 없다.

그렇게 오늘도 56년생 영숙 씨는 빛나고 북적북적한 삶을 행복하게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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