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함과 무욕
아이들은 가는 내내 들떠 있었다.
"딸기 할머니네 가면 복실이가 있어! 난 복실이가 좋아!"
"논산에 살면 논산 할머니 아니야? 왜 딸기 할머니야?"
"소민이한테는 딸기 할머니야."
"복실이는 무슨 색이야?"
"복실이는 하얀색. 복실이 딸기도 먹는다!"
『초등학생을 위한 욕심쟁이 딸기 아저씨』로 독서모임을 하는 날.
딸기를 소재로 종이접기를 할까, 클레이를 할까 고민을 하다 딸기체험을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소민이네 외가가 딸기 농사를 지으신다고 하여 제안을 드렸더니 흔쾌히 놀러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학교에서 농장까지는 30분 남짓.
아이들은 소풍을 가듯이 한시도 쉬지 않고 즐거움을 재잘거렸다.
들썩거리는 엉덩이에 높은 목소리는 운전자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았지만 아이들의 즐거움에 전염되는 것은 나에게도 행복이었다.
물론 그 즐거움의 중심에는 딸기도 책도 아닌 셋이 함께 노는 '시간'이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딸기농장에 도착하여 아이들의 시선을 끈 것은 하얀 털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복실이였다.
주차를 하기도 전부터 차 주위를 맴돌며 시선을 끄는 바람에 소민이 엄마는 복실이를 유인하기 위해 강아지 간식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셨다.
그리고 복실이는 결국 다른 비닐하우스동에 잠깐 분리되었다.
복실이가 익숙한 소민이와는 달리 강아지가 예쁘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무서운 쫄보 주혜와 현수를 위한 긴급처방이었다.
아이들은 복실이를 나오게 해주지는 못한 채 그 앞에서 한참을 알짱거리며 복실이를 쳐다보았다.
소민이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딸기를 따러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집주인과 손님의 그것이었다.
소민이는 딸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서도 위풍당당하게 앞장서 아이들을 이끌었다.
주혜와 현수는 집주인이 시키는 대로 그 뒤를 따르고, 조금이라도 집주인보다 앞장서게 되면 소민이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제지했다.
집주인과 손님의 관계는 장소에 따라 바뀌는지라 집주인이 바뀔 때마다 위풍당당한 발걸음들이 귀엽기만 하다.
딸기 따기 체험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빨갛게 잘 익은 딸기를 톡.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 먹음직스러운 빨간 딸기인지라 아이들은 금방 플라스틱통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더 따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지 자기 통을 다 채우고는 미련 없이 비닐하우스를 나선다.
소민이 할머니께서 아이들 간식으로 먹으라고 핑크빛의 하얀 딸기를 준비해 주셨다.
그런데 얘네 정말 웃기다.
"이거 다 익은 거예요?"
"딸기 집에서 많이 먹어서 괜찮아요."
딸기가 하얗다고 먹지 않는단다.
집에서 많이 먹었다고 먹지 않는단다.
분명 오늘 책의 제목은 욕심쟁이 딸기 아저씨인데 얘네는 딸기에 욕심을 안 부린다.
"너희도 과일 좋아하니? 어떤 과일 좋아해?"
"오렌지랑 귤, 사과, 딸기가 좋아요."
"나도 귤이랑 사과 좋아해."
"여기는 딸기가 가득이네. 이 딸기들 중에서 아까 내가 땄던 딸기랑 색이 비슷한 걸 찾아볼까?"
"이거요. 제일 크고 빨개요."
"나도 그거 땄는데."
"내 딸기는 이거."
"우와! 이 아저씨는 카트에 딸기를 엄청 담았네."
"딸기 파티하려나 보다."
"딸기 너무 많이 사면 안 되는데. 딸기 빨리 먹어야 하는데."
"만약 너희가 동네 사람이라면, 과일가게에서 딸기를 몽땅 다 사가는 아저씨를 보고 뭐라고 말했을 거 같아."
"이놈아!"
"욕심쟁이 이놈 아저씨!"
"딸기 혼자 다 먹다가 배 터져라!"
"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괜찮아, 여기 책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걸."
"너희가 매일매일 딸기를 먹는다면 어떨 거 같아?"
"우웩, 딸기가 먹기 싫을 것 같아요."
"딸기로 딸기잼도 만들고, 딸기샌드위치도 만들고."
"혼자 다 못 먹어요. 나눠 먹어야 해요."
.
.
.
"제목의 과일을 바꾼다면 너희는 뭘로 바꿀래?"
"전 오렌지요. 욕심쟁이 오렌지 아저씨."
"전 사과! 욕심쟁이 사과 아줌마."
"아 웃겨. 아줌마래. 그럼 난 욕심쟁이 바나나 할머니."
"이 과일들로는 무엇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을 수 있을까?"
"주스. 오렌지 주스 어때요?"
"난 잼 만들래. 사과잼."
"바나나는 그냥 먹는 게 맛있는데. 바나나로는 뭐 만들 수 있지?"
아이들과의 책 대화는 항상 놀라움의 연속이다.
욕심이라는 주제를 벗어나 오히려 아이들은 무욕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먹는 것에 딱히 욕심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먹다가 배부르면 남기고, 안 먹고 싶으면 밀어내는 게 너무 당연했구나.
"소민이는 집에서 딸기 잘 안 먹어요. 딸기가 넘쳐나서 그러나 딸기보다 다른 과일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래, 딸기가 귀하지는 않았구나.
주혜, 현수, 소민이 모두 먹는 것으로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풍족한 환경은 욕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일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욕심쟁이 딸기 아저씨를 보며 저 아저씨 왜 저러나 싶었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욕심이라는 감정은 어른들이 가르치는 감정이 아닌가 싶다.
욕심은 나와 타인을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아이들에게 비교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어른이니 말이다.
"오늘 가장 좋았던 건 뭐였어?"
"복실이 만진 거, 딸기 딴 거, 다 같이 축구 가는 거요!"
셋이 함께 해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