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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는 아이들

엄마만 꽃구경이 좋나 봄

by 북장

지난주는 완연한 봄날의 연속이었다.

벚꽃축제 날짜가 무색하게 벚꽃들이 전부 터져 나와 흩날리고 있는 것이 3월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한꺼번에 팝콘 터지듯 터져 나온 꽃들이 지기 전에 봄을 찾으러 나가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봄을 찾은 할아버지' 책을 한 주 당기기로 했다.

우리도 봄을 찾으러 제민천으로 나가자.






처음에는 대통사지를 감싼 너른 잔디밭을 우리의 모임 장소로 삼으려 했다.

벚꽃 잎이 흩날리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잔디밭에서 오순도순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

이 이상향이 조각조각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잔디밭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온 신경이 벌로 향했다.

"어! 말벌이다!"

"꺄아아 벌 무서워!"

"소민이는 곤충박사라서 벌 안 무서워. 어, 딱정벌레다!"


아이들의 주의를 돌려 책을 읽어주려 해도 벌에 대한 공포가 아이들을 지배했다.

그 와중에 딱정벌레랑 공벌레를 잡아 노는 건 뭔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제민천 여행자 쉼터의 마루도 벌이 돌아다녀서 패스.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 바흐의 야외 테라스도 벌 나올 것 같아서 패스.

아이들은 벌을 피해 실내 카페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날이 좋은 만큼 제민천의 카페들에는 봄을 즐기는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쁜 카페들을 뒤로하고 아이들과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복층의 좌식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페에 들어갔으니 음료를 주문해야 했고 아이들은 초콜릿케이크와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진땀을 빼며 겨우 책을 읽어주었으나 책 뒤로 보이는 간식에 눈먼 아이들은 크게 집중을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봄볕의 따뜻하고 싱그러운 기운에 책이라니.


간식을 먹으며 책 대화를 가볍게 나누었다.

웃긴 건 내 기억력이 또 책 대화보다는 다른 대화를 저장했다는 것이다.


"나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나 한 입만 주라."

"너네는 왜 자꾸 내가 먹는 것만 먹고 싶어 하는데. 너네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아이스크림을 주문했어야지."

"맞아, 얘들아. 우리 자기가 먹고 싶은 걸로 주문해서 먹고 있는 거잖아."

"다음에 여기 또 와요. 그때는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이거 봐라. 아이스크림이랑 초코랑 섞어서 녹이면 초코우유!


간식을 다 먹고 나니 카페에 볼일 다 봤다는 듯 엉덩이들이 급하게 들썩거린다.

아이들에게 사진틀 모양의 종이를 나눠주고 미션을 설명했다.


"이 사진틀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봄을 찾고 사진을 찍는 거야."



아이들마다 봄을 찾는 미션에 대한 관심의 크기가 너무 달랐다.

현수는 주변의 꽃이나 풀, 나무를 보기보다는 친구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기를 바랐다.

주혜는 누구보다 빠르게 여러 개의 사진을 찍더니 저 혼자 저 멀리 달려 나갔다.

소민이는 꽃과 풀에서 더 나아가 곤충, 벌레들을 관찰하고 잡기를 원했다.


서로 다른 관심이었지만 그래도 되었다, 봄을 즐겼으니까.

겉옷을 모두 벗고 따뜻한 햇볕을 잔뜩 먹었으니까.

알록달록한 꽃과 연한 초록빛의 나무들을 담았으니까.

웅크리고 있던 몸을 기지개 켜고 마음껏 달렸으니까.


봄을 즐기는 것은 나중에 엄마들끼리만 따로 해야겠다.

너네 꽃구경을 즐길 줄 모르는구나.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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