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야기는 계속된다

살아있는 시간의 흐름

by 북장

독서모임 날마다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있다.

그날은 날도 좋고 여유도 있는듯해서 금학동작은도서관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즉, 부초에서 출발하여 편의점과 도서관에 들렀다 우리 집으로 가는 코스였다.

평소 등교할 때 주혜의 발걸음에 맞춰 걸으면 10분 정도 걸리니 도서관까지 15분이면 충분할 거라 예상했다.


아이들은 역시나 높은 에너지를 자랑하며 뛰어나왔다.

학교 뒷문 쪽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자신이 먹을 간식을 고르고 신나게 걷기 시작한 지 채 2분도 되지 않았을 때, 두 아이의 에너지바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현수와 소민이었다.

현수는 주혜의 손길에 끌려, 소민이는 내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아, 도착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예상하면 뭐 하나.

아이들 체력이 다 같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 덕분에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어가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독서모임을 끝내고 이어진 축구교실에서 두 아이의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 도보 이동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안해, 다음부터는 그냥 차로 이동할게.







그래도 다행이다.

이내 체력 보충이 되었다는 듯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아이들은 흩어졌다.

현수는 그림책 코너 명작 책들 중에서 자기가 봤던 익숙한 이야기들을 뒤적거렸다.

소민이는 아동도서 코너를 훑어보다가 발견한 신비아파트 책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무섭다며 동물 책을 꺼내 들고 앉았다.

주혜는 소민이가 무섭다고 한 그 책을 꺼내 들고는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관심도 주지 않고 책에 빠져들었다.


세 아이 모두 자신의 관심사가 확고하고, 도서관에서는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성향이 확연히 나타난다.

그저 바라는 것은 도서관에서 나만의 보물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기를.



마침 도서관에는 신간도서로 '호랭떡집' 책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신청해 놓고 온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걸 발견해 준 소민이가 참 대견하고 고맙다.


이번주 책은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인데 준비해 온 것을 살며시 뒤로 하고 아이들에게 '호랭떡집'을 먼저 읽어주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의 주인공은 호랑이이다.

호랑이와 떡이라는 소재에서 시작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호랭떡집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글을 재밌게 읽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면 그림을 재밌게 읽어내는 것은 아이들의 역할이다.

염라대왕의 생일 떡케이크를 지옥으로 배달하는 호랑이가 어떤 몸짓과 표정을 하는지 아이들이 더 잘 읽어냈다.

지옥 요괴들, 떡 요괴들의 행동도 어쩜 이렇게 웃기는지.


"이거 옛날이야기 아닌가 봐. 떡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토바이 탄 배달기사 아저씨야."

"꿀떡이 호랑이 꼬리 물었는데 꼬리 잘렸어."

"떡 요괴들 공격하는 거 너무 웃겨. 감자떡은 못 생긴 얼굴로 공격한대."

"어? 혹시 떡 요괴들이 호랑이 반죽해서 만든 떡이 표지에 있는 그 무지개 호랑이 떡 아니야?"

"염라대왕 떡이 맛있었나 보다. 떡집에 또 왔어."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이들에게 감탄하고, 아이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작가의 아이디어와 그림에 놀란다.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는데 이번에는 너무 많았어서인지 기억에 남지 않고 날아가버렸다.


아이들의 말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했으면서 기억을 날리다니.

직무태만이다.






장소를 옮긴 후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를 펼쳐 들었다.

주혜는 이미 여러 번 반복했던 책이라 아쉽지만 친구들의 이야기 물꼬를 트기 위해 기회를 제한했다.

그랬더니 학습지의 이야기 귀신 변신 순서를 혼자 쪼르르 써놓더니 자기는 다 했다고 자리를 떠버린다.


차근차근 이야기의 순서를 따라가며 다음에 나올 것은 무언지를 생각하게 했다.

이야기에서는 시간 순서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표현 방법이다.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에서는 순차적으로 귀신들이 변신하기 때문에 시간 순서를 생각하기에 좋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에 머슴이 이야기 주머니를 풀러 이야기들이 훨훨 날아가는 장면이 이 책의 피날레 같은 느낌을 준다.

수많은 옛이야기 중에서 아이들도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말을 해본다.

뒤죽박죽일지라도 아는 이야기 한 자락 더 베풀려는 아이들이 신랑과 대비되어 더 크게 보인다.




옛이야기와 요즘이야기.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는 옛이야기이고, '호랭떡집'은 옛이야기를 소재로 한 요즘이야기이다.

아이들과 그림책 대화를 하다 보면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흐름이 무색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어른은 정말 정말 먼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옛이야기라고 느끼지만 아이들은 현실적인 감각으로 지금이 아니면 다 옛날이야기다.

태어나기도 전 또는 아기 때의 감성을 가진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이미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먼 옛날이었다고 해서 아이들이 멀게 느끼냐.

그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상상이라는 힘을 가지고 시간을 넘나 든다.

그리고 그 힘을 가장 강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이라는 순수함의 존재들이다.


이야기 속의 시간들은 살아있는 흐름이다.

살아있는 그 시간의 타래를 어떻게 엮고 풀어내느냐는 작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독자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배운다.

그들과 대화를 하며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이 기회가 감사하고 소중할 따름이다.

keyword
이전 07화봄을 찾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