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 린치핀아카데미, 3P 바인더, 애스파
2012년 서울특별시교육청 공채 9급 시험에 합격했다.
2013년 1월 1일 첫 발령을 받고 초등학교 차석과 삼석으로 근무를 하다가
육아로 도저히 인천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할 기력이 없어서
인천교행 분과 1대 1로 나라일터에서 인사교류를 신청했다.
면접 때 질문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인천에 섬이 많아서 섬 발령이 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섬도 갈 수 있고, 집 근처 교육청에서 학원팀 업무도 할 수 있습니다!"
- 학원팀 업무는 힘들기로 유명하다 -
호기롭게 대답을 하고, 합격했다.
나와 교류하기로 한 분도 서울교육청에서 면접 합격을 했다.
인사교류의 경우 어느 한 명이라도 불합격하면 교류를 할 수가 없다.
또한 인천에서 서울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고 싶어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직급이 맞더라도 사람 구하기가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2017년 7월 1일 자로 시댁 근처인 서구의 초등학교에 삼석 자리로 발령이 났다.
발령 당시 그 학교는 병설유치원 3 학급이 있는 24 학급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학교였다.
그런데 주변 아파트 단지 개발로 학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급식실 신축과 학급수 증설 등 일이 많아 인사이동 대상자들에게는 기피학교였던 것이다.
6개월 만에 12 학급이 늘어나면서 깨달았다.
"아, 이래서 여기로 나를 보낸 것인가"
주변에 업무를 물어볼 동기도 없이, 밀려오는 업무라는 섬 안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공직생활 입직 후 처음 발령지도, 두 번째, 세 번째 발령지까지 근무 내내 일복이 많았던 나였지만,
그런 나도 감당하기에 벅찰 만큼 일이 많았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보다 지쳐 잠들기 일쑤였다.
방학 때는 트레이닝복 바지를 사무실에 갖다 놓고 서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기록물 정리를 했다.
들고 나는 사람도 왜 그리 많은지. 휴직은 예사고, 공무상 병가에 공무상 휴직에.
급식실 공사로 인해 휴업까지.
오랜만에 급여를 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2년 반 근무를 하고 2020년 1월 1일 자로 부평구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 차석으로 발령이 났다.
학급수 15 학급, 유치원 3 학급, 직장어린이집 4 학급, 부설 과학관까지 있는 학교였다.
10년 간 근무했던 학교 중 가장 일이 많았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운동장에 폐기할 물품들이 잔뜩 내놔져 있고,
공사에 계약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업무용 메신저로 교육청 직원 전체에게 보냈음직한 쪽지가 한 통 날아왔다.
린치핀 아카데미라... 린치핀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픈 톡방에 들어가 볼까.
그나저나 이 분 참 열심히 사시네... 싶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린치핀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ZOOM이라는 플랫폼에서 닉네임을 쓰고, 아바타로 얼굴을 가린 채 물품, 급여, 발전기금 등 다양한 직무 강의가 열렸다.
지금이야 줌으로 하는 강의가 보편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방식의 연수는 매우 생소했다.
더구나 연수원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연수도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연수라니!!
강의 수준 또한 기존 연수원에서 진행하던 강의 내용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강사들이 2~3년 차의 저연차 공무원들이란다.
강의를 매주 들을수록 흥미가 생겼다.
강의는 물론 린치핀 아카데미 시스템에 대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린치핀 아카데미가 개설되고 얼마 가지 않아 연수원에서도 줌을 이용한 연수가 시작됐다.
어느 날, 직무강의가 아닌 생소한 이름의 강의가 공지됐다.
린치핀 아카데미를 만들었다는, 그 쪽지의 주인공이시다.
그런데 바인더라니... 다이어리인가?
강의 신청을 하고, 신청서에 써낸 메일 주소로 발송된 링크를 받아 줌에 접속했다.
와~ 내가 지금 무얼 보고 있는 거지?
그냥 다이어리가 아니었다.
시간 관리뿐 아니라 목표 관리까지 된다니.
강의가 끝난 후, 바인더 강성단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건 해야 될 것 같았다.
10명 남짓한 선배님들이 모였다.
(린치핀 아카데미에서는 상호 간의 호칭을 '선배님'이라고 한다.
직급, 연차,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배울 점이 있다는 의미에서다.)
딱 한 달간, 바인더를 작성하고 하루 3번 단톡방에 인증하는 방식이었다.
바인더를 쓰면 쓸수록, 내가 그동안 왜 업무에 치이고 허덕이며 살았는지, 하루를 얼마나 허투루 보내고 있었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 달이 종료됐고, 우리는 셀프로 인증 기간을 연장했다.
그게 바로, 1번 방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바인더방은 2번 방, 3번 방까지 진행됐다.)
바인더방에 있는 사람 중 신청자에 한해 강점 코칭을 해주신다고 한다.
스트렝스파인더를 통해 강점 검사를 실시하고, 다중지능검사, MBTI 검사 등 신청서에 있는 대로 검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마지막. 인생 곡선 산맥 타기. 이 과정이 가장 힘들었는데 최근 코칭에서는 이 과정은 제외하셨다고 한다.
며칠을 울면서 인생 곡선 그래프를 완성한 후 메일을 전송했다.
이 날 H선배님은 나의 강점을 활용해서 현재 해야 될 일, 중기 계획, 장기적인 미래의 모습까지 제시해 주셨다.
신기하게도 선배님이 보여주신 내 미래는 내가 오래전 접었던 꿈이었다.
1번 방에서 마음 맞는 선배님 4명과 뭉쳤다.
4명이 활동하는 걸그룹이 무엇이 있을까 검색하다 '에스파' 이름을 본떠 '애스파'라고 내가 지었다.
모두 육아를 하면서 자기 계발을 시작한 터라, 애엄마즈, 애데렐라 라고도 불리었다.
자료도 공유하고, 때론 응원도, 위로도 주고받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늘 나를 도전케 하는 동료였다.
프로듀서 H님과 함께 100명의 교육행정 리더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프로듀스 101을 하자며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자기 계발에 관련된 서적, 강의를 함께 듣고 나누며 우리는 폭풍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그해 가을, 강사단 지원 신청서가 열렸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