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복싱 일기 - 생활체육대회 후기
생활체육대회는 처음이었다. 누구와 싸울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몇 달 간 잠자리를 어지럽혔다.
매일, 종일, 땀을 쏟고 하루에도 세 번씩 샤워를 해대니 마지막엔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스파링하다 조금이라도 쓸린 곳은 밤새 따갑도록 쑤셨다. 그렇게 밤잠을 설치고도 또 체육관에 나가 헐떡였다.
담배를 끊었다. 술도 끊었다. 몸은 부서질듯 피곤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이길 거라는 예감. 몸이 욱씬거릴 때마다 그 예감이 강해졌다. 살면서 가져본 적 없는 확신. 지금보다 나은 상태가 될 거라는 예감. 내가 강해지고 있다는 자각은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매일매일 키가 크던 나날이 한참 지나 40살의 내가 성장통을 앓았다.
성장해본 우리 모두는 이제 알고 있지만, 성장하는 그 시간이 좋은 거다. 성장의 결과는 별 의미없다. 그냥 그저 그런 어른이 될 뿐이다. 다만 성장하는 그 시간동안 아팠던 몸과 마음은, 영혼의 기억으로 남는다.
복싱을 처음 시작할 때 턱걸이 1개를 제대로 못했던 내가 20개는 거뜬하게 하게 되었다.
팔굽혀펴기 10개를 힘겨워하던 내가 매일 100개를 하게 되었다.
데드리프트라는 걸 해본 적이 없던 내가 이제 한 번에 100kg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졌다.
말했지만, 나는 내가 질 것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체육관에서도 나 스스로도, 내 노력과 성장을 매번 절감했기에 체중 감량도 하지 않고 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나의 성장 속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전운'은 그다지 좋아질 기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모의고사를 잘 치고 수능에서 주르르 미끄러지던 그 느낌 그대로, 나의 '대진운'은 엉망이었다.
글러브터치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기가 꺾였다. 키가 나보다 10cm는 더 커보였는데 문제는 몸에 근육도 탄탄히 붙어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체급이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피부가 워낙 하얀 상대여서 심지어 나는 외국인인 줄 알았다. 헤드기어는 위닝(명품입니다). 위닝 마스크를 쓴 사람과 복싱을 해보다니. 나도 복싱을 오래 하긴 했구나. 하지만 쉽지 않겠구나.
그래도 쌓아둔 투지를 끌어올리며 덤벼들었지만 상대는 심지어 왼손잡이였다. 한 대를 때리러 급하게 들어가면 세 대를 맞아야 했다. 다운의 기회를 빼앗았지만 흥분해 운영을 엉망으로 했다. 한 차례씩 다운을 주고받고 판정패했다. 나는 분명히 졌다. 심지어 아홉 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졌다.
아들을 손을 잡고 아직 9시도 되지 않은 주말 아침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행복했다.
주말 내내 온몸이 아프고 머리가 울렸다. 누워서 계속 경기를 곱씹었다.
다시 싸우면 이길 수 있는데!!!! 느낌표를 몇 번이고 마음 속으로 쾅쾅 이어그렸다.
이렇게 내가 오랫동안 내 모습을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여러번 경기 영상을 다시 보았다.
영상을 한참 보다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 맙소사.
영상 속 한 남성은 40 평생 가장 대단한 도전을 막 마쳤다.
가장 대단한 도전이라는 건, 그 링 위에서 이기는 게 엄청난 일이라는 게 아니었다.
그 링 위에 올라가기 위해 버텨낸 시간들- 성장통의 시간들이 내 영혼에 각인되는 일이 유일하게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 남성의 모든 역사를 기억하는 나 자신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그 시간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내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내 온 몸이 한 일을 내 마음은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