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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May 08. 2023

7살 아들에게 한글 가르치기 -1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법 -3

기다리고 기다려 얻은 타이밍


  앞선 글에서 썼듯, 아들이 앉아서 한글을 배우겠다는 욕심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사실 어린이집에서 배워오는 것도 있고 집에서 책을 읽어주며 조금씩 익혀간 시간도 있었기에 한글을 완전히 모르는 상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조합되는 방법, 그것을 음절별로 읽어내고 자신이 쓰는 방법은 전혀 모르는 7살의 첫 1월이었다. 마침 2022카타르 월드컵이 끝났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관심사를 통해 '글'을 익혀나가는 것, 둘째는 그림일기였다.


  오늘은 첫 번째 방법인 '글 익히기'에 대해 우선 쓰려 한다.


  글자가 아닌 '글'을 가르치자


  우선 관심사를 통해 한글을 깨우치는 방법이야 워낙 많이들 공유된 터라 그 이유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아이가 공룡이나 포켓몬스터에 관심을 가질 때 그 이름들을 쓰는 걸로 한글을 가르쳐보려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는 이미 자신이 아는 포켓몬스터와 공룡을 굳이 글자로 써야 할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처음엔 좀 재미있어했지만 금세 지루해했고 앉아서 연필을 잡게 하는 건 점점 고문이 되어갔다. 그래서 빠르게 손절했다. 게다가 7살 아닌가. 글자 하나하나를 붙잡고 있기에는 너무 똑똑해져 있었다.


  물론 아이나 교재마다 특성이 있기에 그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아이는 음운이 조합되는 방식을 이해하면서 글을 깨우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글자를 통째로 익히며 알아가기도 한다. 우리 아들은 명백한 후자였다. 또한 게임처럼 설계된 학습 루틴을 따라가면 글자를 깨우칠 수 있는 교재도 시중엔 잘 나와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손절한 김에 아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카타르 월드컵, 한글과 공부의 보고


  바로 아이의 최대 관심사인 '축구'를 통해 글자에 흥미를 유도하고 최종적으로는 '글'을 익혀나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 글자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읽고 쓰는 데 있다. 글자가 조합되는 데 흥미를 못 느끼더라도 자신이 관심있는 텍스트를 온전히 읽게되면 거기서 오는 정보의 습득에 따른 쾌감과 성취감이 지속적인 학습을 가능케 할 거라고 생각했다.


  1월 당시만해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막 끝난 뒤였고, 아들은 자신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과 카타르월드컵에 진출한 32개 국가를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월드컵같은 행사에는 단순히 글자만 있는 게 아니다. 나라마다의 특색과 문화, 월드컵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 리그와 토너먼트의 개념, 그 안에 즐비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보는 재미 등이 고스란히 담긴 아들과 나만의 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수업 첫 시간에 우리만의 책 제목을 정했다. 첫 번째 탐구할 국가로는 우승국이자 리오넬 메시의 나라인 '아르헨티나'가 선정됐다. 32개 국가의 대진표를 보여주며 국기(에는 한창 관심있을 나이다.)와 나라 이름을 함께 읽어나갔다.


  리오넬 메시와 유튜브가 가르쳐주는 한글


  첫 번째 국가 '아르헨티나'를 프린트해놓고, 그 아래칸에 옅은 음영으로 같은 글자를 반복해 프린트해 따라쓰게 했다. 여기서부터 작전이 시작된다. 아르헨티나라는 나라를 나도 7살 쯤 들어봤겠지만, 그곳이 어떤 곳인지 볼 수 있는 기회는 당시엔 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 아니던가. 아르헨티나의 자연과 관광지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관심을 끈 뒤 지구본에서 아르헨티나의 위치와 수도를 찾게 했다. 수도를 찾았다면? 빙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쓸 차례다.


   <아들과 나의 첫 번째 책>  

:   국가 - 수도 - 호기심 - 전설적인 축구선수 - 유망주 축구선수 - 복습퀴즈


  처음에는 정보량이 많은 텍스트를 굳이 배치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축구를 보며 가졌던 호기심들, 예를 들면 왜 아르헨티나 축구선수들은 백인이 많을까? 와 같은 퀴즈를 준비하고 함께 고민해본 뒤 이를 정리해준 텍스트를 인터넷에서 긁어 아이가 쉽게 읽을 수 있게 각색해 함께 읽었다. 물론 처음에는 혼자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금방 포기하려 한다. 그럴 땐 그냥 대신 읽어주면 그만이다. '글'이라는 것이 정보를 얻기 위한 최고의 방법임을 아이가 알게 하면 그 뒤부터는 쉽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


  그런 다음에는 각 나라의 '전설적인 축구선수들' 파트다. 아르헨티나라면 당연히 디에고 마라도나의 사진을 보며 그 이름을 쓰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고나면 다시 유튜브. 마라도나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책상 앞에 앉아 그 성장기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나도 몰랐던 마라도나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보다보면 어느새 덩달아 흥분하게 된다. 물론 군데군데 아이가 알기에는 지나치게 디테일한 정보들이 있으니 이는 잘 스킵해나가야 한다.


  아들의 욕심과 동기화된 글읽기


  다음 챕터는 '유망주 알아보기' 이다.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 두 셋을 함께 알아본다. 여기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보는 바로 그 선수의 '프로필' 이었다. 나이와 신체조건 등을 아이와 함께 찾아서 숫자도 쓰다보면 은근히 자신과 또래(?)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전설적인 축구선수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았다. 누가 18살에 월드컵에 진출했다고 하면 자신은 17살에 가겠다는 식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네덜란드의 코디 각포다.)


  자신만의 글자=자신만의 지식으로 만들어주기


  그렇게 학습의 한 텀을 끝내고 나면 지금까지 나왔던 글자들(지명이나 이름) 대략 5-6개를 가지고 퀴즈를 본다. 처음엔 퀴즈라기보단 원래 음영 위에다 쓰던 걸 없애고 따라쓰는 정도로 만들고 이걸 할 때는 옆에 있지 않았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시험을 끈기있게 해내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마치고 나면 사탕같은 상품을 쥐어주었다. 물론 나도 획순이 틀릴 때마다 약간씩 짜증도 나고 개입하기도 했지만 뒤돌아생각해보면 그런 건 전혀 상관없는 문제 같다. 그렇게 본인이 약 20분 간 아빠와 함께 공부한 글자들을 머릿속으로 넣고 나면 그런 건 진짜 '자신의 글자'가 된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 자신이 써본 것은 잊혀지지 않듯 아들의 머릿속에 자신이 이해하고 그려낸 선수의 이름은 언제 어디서도 읽을 수 있는 익숙한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닌다.



  심화과정으로=글을 읽으며 정보를 찾아내기


  그렇게 꼬박 두 달을 했을 무렵, 총 8개의 나라를 마치고 나니 아들은 이제 웬만한 글씨는 틀리더라도 읽으려고 했고 소리를 대충 맞추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음영처리 위에 글씨쓰기 대신 완전히 빈 칸에 쓰도록 했고 조금씩 '지문'의 양도 늘렸다. 아이가 관심있어하는 역사(특히 전쟁 등)나 문화적인 것들을 정리해둔 글을 읽게 했고 그 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퀴즈로 냈다. 이를테면 아이가 좋아하는 나폴레옹에 대한 지문을 짧게 주고 정답이 나폴레옹인 퀴즈를 낸다. 그러면 아들은 나폴레옹을 신나게 혼자서 써내려갔다. 나폴레옹이 진 전투는? 과 같은 한 단계 더 나아간 답을 찾을 수 있게 지문을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아들 옆에서 투닥거리기도 많이 했고 조바심도 많이 났지만 두꺼운 책 한 권을 함께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들은 지금도 그때 만든 책을 주말이면 다시 열어 이름들을 다시 읽어보고 기억을 복기하곤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약 50분 정도의 시간을 아이에게 집중하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지만- 아들에게 어떻게 한글을 주입해 넣을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니 언젠가 아들이 이 글을 보고 아빠가 얼마나 고민하며 너를 키웠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못된 마음에서, 글을 쓴다. 


  이제는 야구가 훨씬 좋다는 아들과 만들고 있는 두 번째 책은...바로 '메이저리그'다.


  덧. 혹시나 교재가 어떻게 돼있는지 궁금하신 분은 덧글 남겨주시면 동지애 차원에서 파일 공유해드리겠습니다. 물론...아주 허접한 한글 파일일 뿐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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