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구루 Sep 16. 2022

일년살기를 위한 다섯 식구의 짐

 Part1. 프로 정착러가 되는 길 : 조금 긴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


 

세 사람과 두 마리의 개, 다섯 식구가 미국에서 1년을 살려면 얼마큼의 짐이 필요할까? 미국에서 살 짐을 꾸릴 때 어떤 이는 선편으로 가구 및 전자제품 등 각종 살림살이를 거주할 곳으로 부쳐 해외이사 수준의 현지 배송을 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책과 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짐 일부를 국제 우편 배송 서비스를 통해 따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고민 끝에 별도로 짐을 부치지 않고 출국 당일 가져갈 수 있는 만큼만 짐을 꾸리기로 했다. 

 


꼭 가져가야 할 것들만 최소한으로 준비하고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심플하게 살자, 이것이 미국행을 준비하는 동안 10여 년간 쌓아둔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삶의 모토였다. 막상 짐을 꾸리자니 이것도 담아야 할 것 같고, 저것도 담아야 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두 달 넘게 비우고 또 비우며 다짐했던 마음을 떠올렸다. 

 


출국 당일 우리가 예약해둔 아시아나 항공의 LA행 무료 수하물 허용량은 이코노미 클래스 기준 1인당 23kg 상당 위탁수하물 최대 2개, 10kg 상당 기내 수하물 1개였다. 따라서 우리 가족은 3인 기준 총 23kg 상당 6개의 위탁수하물과 10kg 상당 기내 수하물 3개를 가져갈 수 있었다. (반려견 켄넬 2개 및 배낭 제외) 사실상 짐을 옮길 수 있는 어른은 남편과 나 2인 뿐이었기에 출국 당일 짐을 옮기는데 들어갈 수고를 생각해 최소의 짐을 꾸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짐을 꾸리다 보니 최종적으로 위탁수하물 5개, 기내 수하물 2개, 반려견 켄넬 2개, 배낭 2개를 가지고 떠나게 되었다. 나의 기준엔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는 꽤 많은 짐이었지만 일년살이를 위한 짐인 것을 감안하면 이주 살림이 적은 편이었다. 

 


짐을 챙길 때 우선순위는 학교 등록 등 현지 정착을 위한 중요 서류> 상비약> 마스크> 책(문제집/읽을 책/일기장)>전자기기(노트북/아이패드/무선 키보드 등)>110v 전기장판> 화장품> 문구류> 방한용품 순이었다. 의류는 전반적으로 일 년 내내 온화하지만 일교차가 큰 캘리포니아 날씨를 고려해 한국에서 입던 계절별 옷 중 가장 활용도가 높을 옷들을 허용된 짐의 개수와 무게 내에서 챙겨 넣었다. 신중하게 짐을 꾸린다고 꾸렸으나 현지에 도착하고 나니 이걸 조금 더 챙겨 왔으면 좋았을걸 싶은 것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날씨를 생각하며 전기장판은 오버인가 싶었지만 추위를 워낙 잘 타는 탓에 1인용 전기장판 2개를 챙겨 왔는데 낮에는 반팔을 입을 정도로 화창했다가도 밤이 되면 바닷바람으로 인해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는 일교차 탓에 전기장판은 정말 잘 가져왔다고 생각되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오히려 사람은 셋인데 전기장판은 2개뿐이다 보니 인원수대로 여유 있게 준비해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존에서도 유사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제조된 제품만큼 성능이 좋진 않다는 리뷰들이 많아 현지 제품을 따로 구매하진 않았다. 숟가락과 젓가락 세트도 식구 숫자만큼만 챙겨 왔는데 손님을 모실 땐 늘 수가 모자라 조금 더 여유 있게 챙겨 올걸 아쉬웠다. 물론 현지에서도 수저를 구할 수는 있었지만 한국에서 챙겨 온 것처럼 품질이 좋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현지에서 조달이 어려울까 봐 트렁크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넉넉하게 챙겨 온 마스크와 화장품은 미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 더 필요한 물건들로 짐을 꾸렸다면 좋았겠다 싶었다. 특히나 우리 가족이 이주한 LA는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만큼 한인타운 근처로 가면 다양한 한국 상점들이 즐비해 있어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꾸려온 짐의 구성이 완벽하지 않아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순 없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삶은 지속됐다. 생활을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가구는 IKEA에서 구매해 조립해 사용했고, 미처 챙겨 오지 못한 그릇이나 반찬통 등 주요 식기는 TARGET이나 Marshalls 같은 마트에서 구매했다. 밥그릇 3개, 국그릇 3개 주방 살림을 살 때면 꼭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아 신혼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꼭 필요한 것들로만 살림을 채우고 나니 자연스럽게 꿈꾸었던 미니멀 라이프가 우리 집에 실현되어 있었다. 

 


결국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은지도 모른다.
캐리어 7개 만으로도
세 사람과 개 두 마리의 삶은 살아진다. 


출국 전 싸놓은 짐을 거실 한편에 모아 두고 이렇게도 살아지는 걸 그동안 참 많은 짐을 지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 했다. 미국에 온 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살아지는 우리의 삶이 좋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살고자 했던 한국에서의 내가 오히려 철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떠나기 전 짐을 비우고, 미국에서의 생활을 위한 최소의 짐을 꾸리며 많은 것을 사유하고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처럼 기존 거주지를 떠나 타국으로 이주를 하거나, 긴 여행을 떠나는 이가 있다면 짐을 꾸리는 데 있어 정답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 구성원의 수와 각자가 처한 상황, 거주기간과 거주지 등에 따라 이주를 위한 짐의 양과 구성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따라 적절한 방식을 택하고 필요한 짐을 꾸린다면 현명한 이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08화 해외 나가서 아프면 어떡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