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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Sep 27. 2022

기꺼이 실패할 것

Part3. 생활자의 일상 : 꿈꾸던 일상 속에서



미국에 온 지 채 열흘이 안 되었던 때의 일이다. 서부 로드 트립에서 돌아오는 길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Wendy’s라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에 들렀다. 우리는 배가 고팠고 차에 기름을 채우기 위해 들렸던 주유소 옆에 마침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햄버거 가게가 있기에 그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남편이 아이와 손을 씻으러 간 사이, 나는 무난해 보이는 7번 메뉴의 햄버거 단품 3개와 콜라 1개를 주문했다. 비교적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대기 시간이 길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궁금해하던 찰나 종업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픽업 테이블 위에는 7개의 햄버거가 놓여 있었다.

 


주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식은땀과 함께 내 안의 영어 울렁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되던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애써 내가 주문한 건 7번 세트 속 햄버거 단품 3개이고, 콜라 하나를 추가한 거였다고 거듭 설명했다. 다행히 종업원은 미안하다며 계산을 다시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주문할 때 내 서툰 영어가 실수를 한 것이었을 텐데 종업원은 그것이 내 잘못이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며, 자신의 실수라는 말과 함께 다시 계산을 해주었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인사해주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한 일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있는 새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패스트푸드점에서 있었던 나의 주문 실수를 이야기하며 이런 나를 어쩌면 좋겠냐고 응석을 부렸다. 그러자 두바이에서 5년을 살았던 언니가 말했다. “명진아, 나는 두바이에 살았을 때 어떤 인도 아저씨가 나한테 영어로 말하라고 그러면서 엄청 화낸 적이 있었어. 계속 영어로 말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처음이라 당황해서 그런 거야. 점점 좋아질 거야.” 그날 우리는 서로의 실수담을 나누며 크게 웃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내게는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또다시 나의 실수로 주문이 잘못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초반엔 남편에게 몇 번이나 주문을 미루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미루기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작은 사건 하나 때문에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 트라우마를 떨쳐 내기 위해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그날 패스트푸드점에서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악몽 같았던 일을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아무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주문해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어느 날, 외식을 위해 다른 식당에 들어섰을 때 마음속으로 상상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뱉어버렸다. 주문은 정상적으로 접수됐다. 그 후로는 어디를 가든 남편이 먼저 주문이라도 할세라 내가 먼저 달려가 주문하기를 자처했다. 트라우마를 떨쳐내기 위해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사건 하나로 시작된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일이 된 에피소드지만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까지 내게는 일상의 많은 순간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남모를 마음고생과 노력 끝에야 나는 이전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소한 일상 대화라 하더라도 머릿속으로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내가 아는 표현들을 체크하며 확장해가는 연습을 하게 됐다. 시간이 지난 이제와서야 제법 좋은 습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게 꼭 필요한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언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작은 실수 하나로 적잖이 마음고생을 해야 했지만 영어는 나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고, 미국에 오기 전 한 번도 영어권 국가에 살아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실수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날의 사건은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실수를 돌이킬 기회 또한 내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기꺼이 실패할  
부딪혀봐야 성장한다.
그날의 실수가 내게 가르쳐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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