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에서 여름으로 지나가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는 무렵에 주짓수를 시작했다.
그해 겨울 1그랄 승급을 했고 그 후로 정확히 4년 3개월 만에 2그랄 승급이 되었다. 아 물론 화이트벨트이다.
단순히 기간으로만 보자면 블루와 퍼플까지도 갈 수 있는 시간인데 나의 주짓수 승급 기간은 남들과 다르게 흐르고 있다.
처음 주짓수를 시작할 당시 체육관의 주짓수 연령대가 아무래도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많이 분포해있는지라 30대 초반 나이에 시작한 나로서는 이게 내 나이대에 맞는 운동인 건가 하며 참 많이 어색해했었다. 처음 시작할 때 뻘쭘하지 않게 먼저 다가와준 그때 친구들에게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익숙지 않은 운동이지만 그 분위기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래 쉬었다가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도 다 그 친구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창 크로스핏을 하며 단련된 체력 덕분에 같이 운동을 하는 여자애들에 비해서 강한 힘을 과시하며 나름 주짓수 유망주 대접을 받았었다. 물론 초기 새내기 회원의 정착과 자신감을 위한 체육관의 우쭈쭈 전략도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르게만 어쨌든 나는 정말 그때 당시 힘은 정말 센 언니와 누나로 통했다.
그리고 힘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하게 자부심도 생기면서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던 것 같다.
조금 아득한 기억이긴 하지만 2018년 처음 주짓수를 시작했던 해는 운동 덕분에,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참 즐거웠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생일 축하 케이크가 들어왔을 때를 떠올리면 가슴 한켠에 아직도 몽글몽글해진다.
이러한 내 마음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나의 상황들로 인해 한동안 빠지고 잠깐 다시 얼굴만 비추는 정도를 반복하다가 이제는 그냥 주짓수를 못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쩌다 체육관에 들르면 새로운 얼굴들이 반가우면서도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의 자취가 사라진 것을 보면 묘하게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체육관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더더욱 뜸해졌다. 물론 이사 간 곳 근처에서도 주짓수 체육관이 보이긴 했지만 발걸음이 향하질 않았다. 다시 다니더라도 처음 주짓수를 시작한 곳에서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한동안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쉽사리 해결되지가 않았다. 이러다가 주짓수는 내가 해 본 운동 중에 하나 정도로만 끝나는 듯싶었다.
처음 받았던 도복과 자주 운동을 빠지는 나에게 그래도 잘하고 있다면서 관장님이 달아준 1그랄 화이트벨트가 보였다.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무도 나에게 떠밀거나 강요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운동 그 자체의 역량을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그리 부지런하거나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그 긴 공백을 깨고 주짓수를 다시 배우고 있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나의 상황이 예전보다 여유로워진 것도 있고, 마침 다시 근처로 이사를 해서 가까워진 것도 있겠으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중에 정말 정말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체육관도 지금 모습과는 달라지겠지만,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어주는 체육관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묘한 안도감이 든다. 갈까 말까 수백 번을 고민하다가 체육관에 가면 '그래 오길 잘했어'라는 뿌듯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각자의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하고 마무리하고 온 친구들이 체육관에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도 영향을 받게 된다. 퇴근 후 피곤하다는 말이 스스로 변명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다들 참 귀엽다.(물론 스파링 할 때는 귀엽지 않다.) 나보다 동생들이지만 성실한 모습들에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다. 멋있는 모습들에 한 번씩 반하고 간다.
그런데 사람은 변치 않는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보다.
열심히 다니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주짓수인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자주 빠지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 있다. 처음 다니던 시절과 변함이 없다.
아무튼 나는 현재 주짓수 화이트벨트 2그랄이다. 즐겁게 다치지 않게 행복하게 운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