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곳
시 냇 가
마을 앞에는 인기골의 물이 모여 널따란 시내를 이루고 있었다. 시냇가는 유년시절 보금자리 같은 놀이터이다. 물이 들지 않는 곳에는 버들강아지, 찔레꽃, 미루나무, 아카시아 나무들이 자라서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잔디밭에서 뜨거운 여름햇빛을 피하며 각종놀이를 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큰비가 내릴 때면 물이 넘쳐서 휩쓸고 지나가지만 물이 잦아들면 예전으로 되돌아왔다.
봄이 오면 시냇가에 늘어진 버들강아지가 아직 덜 녹은 얼음을 달고 하늘거리며 고기들을 유혹하였다. 버들강아지의 가느다란 가지를 꺾어서 부드러운 풀밭에다 가볍게 두드리고 껍질 속에 있는 나무 심을 빼낸 후에 껍질을 잘 다듬어 구멍을 내면 멋진 버들피리가 되었다. “삐, 늴리리~ 삐리리~” 곡조 없는 피리 소리는 봄날의 아지랑이와 함께 멀리 메아리가 되어 퍼졌다.
여름방학이 되면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시냇가로 모였다. 한여름 물장구를 치며 노는데 시간가는 줄 몰랐다. 고기잡이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놀이였다. 피라미 붕어 쏘가리 은어 등 작은 물고기 들이 지천이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고기를 물가로 몰아서 그물로 건지는 방법 이였으나 그물 없이도 잡는 방법은 돌을 들어 물고기가 숨어 있을 만 한 돌에 충격을 가하면 돌 아래에 숨어있는 피라미는 그 충격에 기절을 하는데 그때 잡는 거였다. 그러다 이상한 돌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모양이 특이하고 무게도 적당하여 그것으로 돌을 내리치며 고기를 잡다가 그 돌을 꼴망태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다.
몇 시간을 시냇물을 헤집고 고기잡이 놀이를 하다 해가 기울어질 즈음 소와 토끼가 먹을 풀을 꼴망태에 채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여 꼴망태를 집어 던지고 먹을 것부터 찾던 나에게 꼴망태의 풀을 덜어내던 일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슨 일인지 같더니 가족들이 다 모였다. 그 자리에서 일꾼은 내가 주어온 돌멩이를 손에 들고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나 무거워서 내가 무슨 사고를 쳤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리들을 만한 일이 없었다. 잠시 후 일꾼은 내가 가지고 온 돌을 들고“ 이것을 어디에서 가져왔느냐?”하고 물었다. 나는 시냇물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놀다가 놔두기가 아까워 가지고 왔다고 하였다. 그러자 일꾼은 가족들에게“이 돌은 돌멩이가 아니고 수류탄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수류탄이 무엇인지 몰랐다. 일꾼은 이 수류탄이 터지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다 죽는다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모두가 긴장이 되었고 침묵이 흘렀다. 내가 주어온 돌이 살상 무기라니 머리끝이 쯧삣 할 정도로 놀래었다.
군대를 다녀온 일꾼은 이것은 돌이 아니라고 하면서 참외처럼 그어진 세로줄에 가로로 그어진 줄을 설명하면서 네모의 모양이 파편이라고 하였다.
꼭지에 뇌관이 있는데 뇌관이 오래되어 녹이 쓸고 떨어져 나갔지만 뇌관이 정통으로 충격을 받으면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터지게 되면 조그만 조각들이 파편이 되어 그것에 맞으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수류탄이 곧 터질 것만 같고 소름이 돋았다. 시냇물에서 돌에 내리쳤던 모습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시냇가 옆 공터에는 여수, 순천 사건과 6.25 당시 군부대가 임시로 주둔하였다고 하였다. 군부대가 떠난 자리에 가끔씩 그런 무기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당시 시골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석유 등불을 켜고 지냈다. 그 등불의 용기는 작은 종지에 심지를 박아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어두움을 밝혔다. 작은 종짓불은 오래가지를 못하여 나의 공부방에는 큰 원통형 쇠붙이가 있었다. 몸체 옆에는 가느다란 대롱처럼 붙어있는 것이 심지 역할을 하였다. 원통에는 석유가 많이 들어가 한번 부어놓으면 오랫동안 쓸 수 있었다. 석유도 귀한 시절이어서 아껴야 했지만 나는 밤늦도록 불을 켜놓았다. 부모님은 창호지 밖으로 비치는 불빛을 보면서 밤늦도록 책을 보고 있다고 여기고 흡족해하셨다. 그 등잔불의 그을림에 아침에 자고나면 코가 까맣게 될 정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수류탄 사건 이후로 등불을 켠 용기가 대전차 지뢰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후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을 때마다 무서운 무기가 옆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꾼으로부터 이야기가 끝나자 아버지는 일꾼에게 내일 경찰서에 가져다주라고 하면서 조심히 다루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아무 탈 없었음을 천만다행으로 여기셨다. 내가 수십 번 두들겼던 돌멩이가 수류탄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매사에 사물에 대해 조심스럽게 살피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ㅣ
시냇가는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횃불을 들고 고기를 잡으러 다녔고 때로는 피리 통을 놓아 고기가 들기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비 오는 날이면 대나무로 통발을 만들어 고랑에다 대발을 치고 참게가 타고 올라오면 잡아넣는 낭만이 넘치는 장소였다.
아버지께서 시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아오시면 어머니께서 그것으로 다슬기 탕을 끓여주시던 추억의 맛이 지금도 입안에 가득하다.
안타까운 것은 어린 시절 추억이 머물던 시냇가 미루나무 그늘아래에 앉아서 책을 보고 윷을 놀았던 포근하고 아늑했던 시냇가가 이제는 하천정비로 인하여 옛 모습이 사라지고 없다. 굽이돌던 시냇가의 지천에서 참게와 피라미를 잡고 넓은 운동장 같은 공터에서 놀았던 시절이 그립다.
그 널따란 하천은 좁고 깊게 파여 아무나 접근할 수 없게 되었고 쓰레기만 곳곳에 널브러져 있어 오아시스와 같았던 동산은 꿈속에서나 그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