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

어린 시절 엿 맛은 지금도 선명하다.

by 콧수염장발

엿 장 수




“철거덕, 철거덕.” 철 가위질 소리가 동구 밖에서 들릴 때면 마음이 바빠졌다. 그것은 마을에 엿장수가 왔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엿장수가 오는 날이면 엿 하고 바꿔 먹을 만한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어린 마음이 분주해졌다. 먹을 것이 귀하던 유년시절에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는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만 콩밭에 가 있었지, 엿 하고 바꿔먹을 만한 것은 변변치 않았다. 모든 것을 재활용하던 시대라 버리는 것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 든 지금도, 엿을 보면 왠지 어린 시절의 향수가 느껴져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데 당시에는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시골에서 간식이라고는 고구마, 감자 정도였다. 특별식을 먹는 날은 5일마다 열리는 시골 장날이었다. 어머니는 장날이면 일을 하다가도 장에 다녀오셨다. 다음 장이 설 때까지 식구들이 먹을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다녀오셨다. 어머니는 식구들의 찬거리를 사시면서 자식들이 먹을 간식도 덤으로 사 오셨다. 우리는 그런 장날을 기다리곤 하였다. 어머니가 사 온 간식은 한입에 넣으면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던 큰 눈깔사탕과 속이 뻥 뚫린 공갈 과자 정도였다. 그러한 간식도 귀했지만 달콤하고 쫄깃한 엿 하고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엿장수는 마을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이웃마을로 떠나기 전에 엿 하고 바꿔먹을 만한 것을 빨리 찾아야만 했다. 돈이 없던 우리는 집안에 있는 고물들을 보물찾기 하듯 집안 이곳저곳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고물이라도 찾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엿장수마다 취향이 달라서 같은 고물을 두고도 엿을 먹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오직 엿장수의 마음이었다. 엿장수는 고물의 값을 정하는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그 값을 측정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안의 헌책이나 빈병 헌 고무신짝은 값이 별로 나가지 않는지 적은 엿에 입맛만 다시기 일쑤였다. 그러나 쇠붙이를 주는 날에는 그 무게만큼이나 많은 양을 주었다. 엿장수는 엿판에 칼을 대고 가위로 쳐서 잘라주는데 나는 그 가위질에 온몸의 신경이 쓰였다. 엿장수가 엿판에 칼을 어디쯤에 놓느냐에 따라서 엿의 양이 정해졌다. 엿장수의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엿을 치는 것은 오직 엿장수 마음이다. 엿장수는 그러한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선심 쓰듯 조금 더 떼어주기도 하였는데, 그 부스러기 엿은 특히 더 맛있었다.


집에는 사용하고 닳은 몇 가지 고물들이 있었다. 그러한 고물들도 집안 어른께서는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 놓았고 어떤 것은 재생해서 쓰기도 하였다. 쇠붙이는 엿하고 바꿔먹는데 최고의 물건이지만 닳아서 못쓰게 될 때에야 고철이 되어 버려지는데, 시골에서는 괭이나 호미 낫이 닳아도 장날이 되면 읍내에 있는 대장간에서 새것으로 만들어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쉽게 버리지 못했다. 삽질을 하다 삽이 부러지던지 솥이 깨지던지 해야 고철을 기대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일소가 있어서 쟁기질을 수시로 하였다. 쟁기에는 쇠 보습을 채워서 논갈이를 하는데 쟁기 보습이 닳던지 돌에 걸려 깨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속으로 엿 바꿔먹을 생각부터 하였다.


아버지는 잘 닳은 보습은 돌들이 많은 밭갈이 때 사용하기 좋다며 별도로 보관해 놓곤 하였다. 나는 엿장수가 오는 날이면 엿을 많이 주는 쇠붙이를 찾기 위하여 집안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 하루는 조금 닳기는 하여도 비교적 멀쩡한 쟁기 보습을 살짝 가져다가 엿 하고 바꿔먹고 말았다. 다음날 아버지는 밭을 갈기 위하여 보습을 찾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는 나를 보며, “아야, 여기 걸어놓은 보습 못 보았냐?” 물으시는데

나는 시침을 떼고 "못 보았습니다." 하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나 분명히 이곳에다 걸어 놓은 것 같은데 없어졌으니 누가 집에 왔을까?”하시더니

“너, 혹시 엿 하고 바꿔 먹은 것 아니냐?”하시는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야! 요놈들이 쟁을 쳤구나, 당장 밭을 갈아야 하는데 밭을 갈수 없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이냐?” 하시면서 체념을 하셨다. 할 수 없이 내일 밭을 갈아야겠다고 하시며 “내일 학교 마치면 보습을 사서 재빨리 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듣고는 왠지 미안하고 부끄럽기까지 하였다. 새것도 아니고 닳은 보습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그날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루는 마을 청년들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엿장수가 마을에 들어왔는데 엿판이 통째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엿장수가 이웃집에 고물을 가지려 간 사이에 청년들이 엿판을 가지고 튀어버려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결국은 엿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몰라도 그 청년들의 부모는 엿 한판 값을 고스란히 물어주어야만 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해 겨울, 우리 하우스에는 일이 많았다. 윗마을에 사는 아저씨는 오랜 기간 우리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겨울방학을 맞이한 어느 날, 아저씨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자기 집에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아저씨가 엿을 사준다는 말에 따라가게 되었다. 아저씨가 가는 마을 길가 집에는 엿장수가 임시로 기거하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낮에는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엿을 팔았고 저녁이 되면 다음날 팔 엿을 손수 만들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 엿장수하고 친분이 좋았는지 엿장수는 우리를 방 안으로 들였고 엿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엿장수는 걸쭉하게 달인 엿을 밀가루를 묻혀가면서 주물럭거렸다. 나는 처음에 엿이 아닌 줄 알았다. 누르스레한 빛깔을 띠고 있어서 궁금증이 더하였다. 그러나 그 뭉치를 두드리면서 벽에 기다란 나무 막대기 같은 못이 튀어나와 있는데 그곳에다 척하니 걸치고, 잡아당기고, 다시 접어서 걸치어 길게 늘어뜨리기를 수없이 반복을 하니까, 누르스레한 덩어리가 어느새 하얀색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엿장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힘든 일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엿판에 하얀 광목 보자기를 깔고 엿을 펴서 마무리하였다.


그 일이 끝나자 엿장수는 엿을 다 만들고 모은 것이 한 덩어리나 되었다. 아저씨가 일부러 주문을 한 것 같기도 하였다. 아저씨는 그 엿을 내게 사주기 위하여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던 것 같았다. 나는 그 많은 엿을 받아 들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아저씨는 아저씨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자고 하였지만 나는 엿을 먹겠다고 엿만 먹고 있었다. 엿을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입안에서 단내가 풀풀 날 정도였다. 엿의 포만감과 황홀함에 빠져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날이 새었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 먹다 남은 엿을 아침밥 대용으로 다시 먹었고 남은 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에게 주었다.

어린 시절 엿은 배고픈 시절의 훌륭한 간식이었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들기 어려운 소리지만 '철거덕' 거리는 엿장수의 철 가위 소리를 듣노라면 그 시절이 눈앞에 되살아나면서 감칠맛 나는 엿 생각에 '꼴깍'하고 군침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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