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그 겨울밤의 추억
겨울밤
겨울밤이면 친구들은 홍이의 방으로 모여 들었다. 홍이는 혼자서 뒷방을 사용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친구들은 늦은 시간에도 돌담을 넘어와 밤이 늦도록 떠들고 놀았다. 홍이는 형제들이 많았고 큰형하고는 나이차가 많았다. 홍이의 방은 큰형 방과 붙어있었다. 큰형은 신혼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다고 가끔 야단을 맞았다. 그럴 때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낮출 뿐 조금 지나면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럴 때면 형은 화가 나서 곡괭이로 방구들을 파버린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서야 밤이 깊었다는 것을 알고는 아쉽게 헤어졌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허기가 들었다. 그러나 가난한 시골에 허기를 채워줄만한 것이 변변치 않았다. 간식이라고는 유일하게 고구마가 있었지만 자주 먹다보면 속이 쓰려서 배앓이를 하곤 하였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닭서리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중학생이 된 우리는 의기투합하였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누가 선뜻 나서지 못하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렸다. 그때 한 친구가‘한 번 해보자’하였다. 우리는 갑자기 대책을 논의하느라 분주해졌다. 닭을 어떻게 잡을 것이며 누구네 닭을 잡을 것이며 닭장에는 누가 들어가고 망은 누가 볼 것이며 닭을 잡으면 어디에서 삶아 먹을 것인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로 서로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일단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닭을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잡아먹는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마을에는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겨울 눈발에 섞이어 흩날리고 있었다. 될 수 있으면 개가 없는 집을 찾아야했다. 마을로 이어진 도로를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와 홍이와 종이는 서쪽마을에 살고 있어서 동쪽마을을 대상으로 했다. 마침 이웃 마을 길가에는 친구의 집이 있었다. 그 친구네 집은 그런대로 여유가 있었고 닭을 많이 키우고 있어서 친구 집 닭을 목표로 삼았다. 그 많은 닭 가운데 한 마리 없어 졌다고 주인이 알아차릴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닭 집의 친구는 부르지 않기로 하고 이웃집의 친구 철이를 불렀다. 닭서리 할 친구 집은 가끔씩 놀려가기도 하였기에 닭장 위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재미로 하는 일이지만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였다. 닭을 잡다가 울기라도 하면 도망치기로 하고 홍이와 종이가 닭을 잡으려 닭장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밖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닭장에 들어간 잠시 잠깐의 시간이 온밤을 다 새는 것과 같았다. 그 기다리는 동 가슴이 얼마나 콩닥거리는지 한겨울인데도 온 몸에 땀이 나고 몸이 떨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둘이 밖으로 나왔다. 둘의 가슴에는 닭이 한 마리씩 안겨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개선장군이 되어 그곳을 급히 벗어났다.
나는 친구들이 처음으로 닭서리를 하면서 소리도 없이 어떻게 두 마리나 잡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홍이는 어른들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였다면서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홍이의 담력과 기술에 찬사를 보냈다. 철이로 부터 연락이 왔다.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길가에 현이라는 친구의 집이 있었다. 마침 현이의 부모님은 친척집에 제사를 지내려갔다면서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다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날 같았다. 그날 밤은 우리들의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부엌에서 닭을 잡아 삶아서 배불리 먹고는 닭털을 태워서 없애고 유유히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한 아주머니가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우리를 닭 도둑으로 몰아세웠다. 우리는 그 아주머니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큰 소리도 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친구 집 닭을 잡아온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 집닭을 잡아온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멍 한 상태가 되었다. 그날 밤 마을에는 공교롭게도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이 닭서리를 하였던 것이었다.
아주머니는“집에 닭을 잡으려고 온 사람들이 들켰는데 놔두지 않고 들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주머니는 어린 아들과 함께 밤이 새도록 이웃동네까지 다 뒤지고 다니다 결국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서 법인을 잡았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주머니 닭을 절대 잡아오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밖에 있는 닭 뼈는 무엇이냐며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며 아주머니는 열이 받치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아무리 변명을 해도 궁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날이 밝으면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겠다는데 우리는 더 이상 우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친구 집 닭을 2마리를 잡아먹었는데 차라리 한 마리 물어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구경도 못한 아주머니의 닭을 어쩔 수 없이 물어주기로 하였다.
아주머니는 누구네 아들인지 확인을 하고서는 내일까지 닭 값을 가져오지 않으면 부모님을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아주머니가 나간 뒤에 대책회의를 하였다. 아주머니 성질을 보니 정말로 부모님을 찾아 갈 것 같았다. 다음날 아주머니를 찾아가서 값을 깎아 달라고 사정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우리가 닭 2마리를 잡은 것은 사실이니 한 마리 값을 물어주자는 결론을 내리고 억울하였지만 훔치지 않은 아주머니 닭 값을 물어주기로 하였다. 만약에 부모님에게 일러바치면 닭 값이야 부모님이 해결해주겠지만 부모님 체면이 말이 아닐 터이고 못된 짓을 한 우리는 혼이 나서 이제부터 밤에 마실 도 다닐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어찌되었건 우리 선에서 해결을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닭 한 마리 값은 모두가 용돈을 마련하면 쉽게 해결이 될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아주머니와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들은 빠지고 세 명이 책임지기로 하고 찾아 가서 사정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저녁 홍이와 함께 이웃마을 아주머니를 찾아갔다. 아주머니는 하필이면 씨 암 닭을 잡아갔냐며 분을 삯이지 못하며 한 시간 내내 목소리를 높였다.
“아주머니 잘 못했어요. 처음으로 장난삼아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용서해주세요”우리는 통사정을 하였다. 그러자 아주머니는“그 닭이 얼마나 큰 닭 인줄 아느냐? 알도 잘 낳고 봄에 병아리도 까야 하는데 그 닭이 없어 졌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닭을 당장 가져와라!” 하면서 성을 내었다.
그나마 아저씨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한 마리 값도 깎아 보려는 심정으로 사정을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의 표정을 봐서는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눈치만 보고 죄인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잠시 우리를 보고 있다가“너희들이 잘못했다고 하니 부모님에게는 이르지는 않겠는데 닭 2마리 값을 내야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순간, 억장이 무너졌다. 한 마리 값도 깎으려고 했는데 2마리 값이라니 그것도 큰 닭을 기준으로 값을 매겼으니 우리는 그러한 돈을 감당할 수도 없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주머니. 우리에게 그런 큰돈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는 그런 돈을 마련할 수가 없어요. 좀 봐 주세요.” 그리고 이어서 한 마리인데 왜 2마리 값을 받으려고 해요. 하면서 재차 사정을 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아주머니는“야! 이놈들아 뭘 잘했다고 말대꾸를 하느냐”며 더 이상은 필요 없으니 모래까지 두 마리 값을 가져오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말을 할 것이다”고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사정을 하여도 통하지 않자 아주머니 집을 나왔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 의논을 하였다. 일단 각자의 저금통을 깨서 돈을 모두 모아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 마리 값도 모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 학년이 되어서 참고서를 사야 한다면서 각자가 거짓말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힘들게 돈을 받아서 아주머니 집을 찾아갔다. 조금이라도 깎아 달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깎지도 못하고 결국 장 닭 2마리 값을 내고 돌아왔다.
우리는 처음 시도했던 닭서리가 성공을 하여 기분이 좋아 들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봉변을 맞아 훔치지도 않았던 남의 집 닭 2마리 값을 물어 주고 나니 억울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억울해할 일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닭 두 마리는 잡아먹었으니 그에 상응한 값을 치렀던 것이다. 차라리 닭 집의 친구를 참여시켰다면 그 순간을 모면 하였을 텐데 친구를 제외한 것이 되레 화근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해의 겨울밤은 우리들의 전설이 되었다.
요즘이야 닭이 너무나 흔하여 별 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알 낳은 닭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인지라 어머니께서 아침 반찬으로 계란으로 찜을 해주기라도 하는 날이면 최고였다. 그렇게 귀한 계란도 호떡이 먹고 싶을 때는 몰래 계란을 호주머니에 넣고 가서 호떡 몇 개를 바꿔먹을 정도로 값이 나갔다. 하루는 계란을 훔쳐서 가방에 넣어 호떡과 바꿔먹기 위해 가방을 열어보니 계란이 깨져 가방이고 책이고 범벅이 되어서 닦아 내는데 큰 고역을 치렀다. 그 후로는 계란으로 바꿔먹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우리는 긴 겨울밤을 보내는 것이 힘들기도 하였지만 그날의 추억으로 인하여 어느 누구도 닭서리 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시골에는 낭만이 있었고 정도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렸지만 그 시절의 친구들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