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선물을 받은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것, 이런 말들이 돌아오는 것이 좋다. "제가 이 영화 좋아한단 걸 기억해주신 거예요? 너무 감동이에요.", "덕분에 월요병 날렸어요.", "이렇게 귀엽게 포장된 선물은 처음 받아본다. 사진 찍고 올려서 자랑할 거야."
덕후는 덕후를 알아보는 법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해리포터 시리즈>의 굿즈들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은 덕후의 세계에도 적용 가능하다. 문구와 귀여운 물건만큼이나 영화를 오래 좋아해 온 나는 주변의 영화광을 빠르게 알아차리곤 한다. "오, 스리 님, 주말에 그 영화 보고 오신 거예요?" 물으며 반짝이는 눈빛 같은 걸 보면 '오, 이 사람, 이야기가 통하겠는데' 금방 느낌이 오는 식이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어른이 되고 만나는 관계에서는 취향, 선호가 찰떡 같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럴 때면 반가움을 느낀다. 그러나 무엇이든 조용하게 좋아하는 성격상 막상 그와 자주 이야기 나누기보다는 주로 어느 월요일에 깜짝 선물을 준비해 가곤 한다. 영화 속 장면이 그려진 엽서와 스티커, 주문 제작한 컵과 조명, 피규어 등 종류가 다양하다.
괜찮아요. 이 시간도 지나갈 거예요.
일상에 지친 동료와 친구들에게 보낸 마음들
이렇게 선물하기를 좋아하게 된 것에는 엄마의 영향, 받는 사람의 즐거움을 보는 것 말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사회생활이 쉬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은 유독 힘겨웠다. 그런 탓일까. 동료와 친구들의 피로한 얼굴, 지친 표정을 볼 때면 자꾸 어린 날의 내가 생각나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그 마음을 달래주고 싶고, 복잡한 일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 중 하나가 선물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이토록 열심히 주변에 선물을 하는 건 어린 날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속세를 떠납니다.
퇴사를 앞두고 준비한 선물들
좋은 시작만큼 좋은 끝맺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퇴사를 할 때면 최소 일주일 전부터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누구에게 무엇을 줄지 고민하고, 고르러 다니고, 포장하고, 때로는 제법 긴 편지까지 준비하다 보니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 넘게 걸리는 때도 있다.
1과 2. 사회초년생, 그것도 거의 꼬꼬마 시절에 인턴 근무를 마치며 준비했던 선물이다. 사실은 성격으로든 업무적인 능력으로든 닮고 싶은 선배, 좋은 상사를 찾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던 곳인데, 그럼에도 각자에게 감사했던 점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찾아 편지에 적은 기억이 있다.
3과 4. 챙겨야 할 동료의 숫자가 너무 많아 작은 간식거리와 짧은 메모로 마음을 전하고 왔다. 당시 함께 일했던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서 50명이 조금 넘었을 텐데, 혹시라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넉넉하게 100개 정도를 준비해 갔었다.
타인이 베푼 작은 친절과 배려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동료와 친구의 지친 마음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니 선물하기는 나중에 할머니가 돼서도 변함없이 좋아하고 자주 하고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도 엄마처럼 친구와 동료 말고, 길을 지나는 낯선 사람에게도 선물을 건네는 아줌마, 할머니가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