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14)

서양문명의 기원 이탈리아로 출장 가다(2)

by 리본안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창세기 12장 14절~15절)

"Bonjour?"

이탈리아 공장에서 기계를 분해하러 온 7~8명의 젊은 프랑스 엔지니어들은 영어를 잘 못했습니다.

저는 불어라고는 대학입시 때 제2 외국어로 배운 것이 전부였지만, 용기를 내어 불어로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Bonjour"

프랑스 업체의 책임자는 Michael이라는 친구로 다행히 미국에서 어느 정도 머무른 경험이 있어서 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M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기계를 설치하는 현장에서 10년의 경험을 쌓았고, 회사 보스에게 얘기하여 현장작업자가 아닌 관리자로서 진로를 변경하고, 이에 대한 관리자 교육도 따로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이 프랑스업체에서 분해한 기계를 받아 설치할 한국업체에서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뛰어들어, 업계 경력이 10년이 넘은 기계기술자(J)와 전기기술자(E)가 이탈리아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기계의 분해과정을 낱낱이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그렇다고 기계를 분해하는 업무는 오롯이 M의 책임이었기 때문에 전혀 관여할 수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듯 기계전문가들도 개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계에 대하여 문외한인 제가 감독자라고 간섭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사실 출근도장을 찍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R대리님, 저들이 일하는 꼴을 보니 참 갑갑하게 하네요. 저희들 같으면 두 달이 아니고 한 달 반이면 다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하면 약속한 두 달도 버거워 보이는데요?"

같이 같던 J조장이 결국 한마디 했습니다.

프로젝트매니저로서 가장 중요한 goal은 시간과 예산을 계획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불안해하고 초조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약속한 2개월이 지나면 이 기계들을 이송할 이탈리아업체가 짐을 모두 pickup을 한다고 스케줄이 fix 되어 있었고, 저의 귀국하는 비행기표도 이에 맞추어 미리 끊어놓는 배수진을 친 상태이기에 저 또한 그들의 일하는 모습에 애가 닳아있었습니다.

매사에 빨리빨리 재촉하는 한국문화에 우리 모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매사 느긋해 보이는 그들이 일하는 태도가 못 미더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회사, 특히 제조현장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용어는 아마도 '표준화'일 것입니다.

표준화는 작업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순서대로 자세하게 정하여 표준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스패너를 들고 볼트를 죄는 작업이 있다고 한다면 표준화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스패너를 들고, 어떤 방향으로 몇 번 돌려야 하는 지를 규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보다 높은 수준의 표준화는 소요되는 시간까지도 카운팅 하고 있어서 예를 들면 '10초에 10번 우측으로 돌려라'라고 규정하여 표준화합니다.


"야 요령껏 해라."

그런데 제가 한국의 현장에게서 소위 숙련자라는 고참들에게서 어떻게 하는 가 물어보면

"아 요령(표준화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이라고 할 것 까지야. 그저 최대한 빨리 힘껏 조이면 돼요"

이런 식으로 답변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요령이라는 의미는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묘한 이치'라는 말입니다.

이 말로 유추해 보면 한국사람들은 좀 더 깊이 생각하며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객관화하여 남과 공유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개인의 숙련도에 따라 격차가 있다는 것이죠..


"아니 과장님 생산라인은 어떡하고 여기서 뭐 하세요? 위험한데..."

제가 이탈리아로 오기 전 한참 공장 증축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붕에서 철골을 연결하는 볼트 공사를 하고 있던 건축업체 인부들 뒤로 우리 회사 생산 현장의 최고참 K과장님이 뒷짐을 지고 졸졸 따라다니고 계셨습니다.

"어, R대리, 대체 이 사람들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K과장님은 씩 웃으면서 손에 든 커다란 스패너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 요령껏 한다지만...

그래서 이 사람들 따라다니면서 볼트를 한번 더 조이고 있어."

K과장님은 나름대로 현장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한번 더 조으며 마무리하고 다니셨습니다.

(이때 이분이 과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누가 알았나요? 이분이 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영웅이 될 줄은...)


사실 한국회사와 외국계회사를 전전하면서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 가 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숙제였고, 이런 면에서 서구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를 관찰해 보곤 했습니다.

이 프랑스친구들은 볼트를 푸는 일에 있어서도 정해진 시간 내에 정확하게 횟수를 세면서 스패너를 돌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런 답답한 친구들 같으니라구.'

그리고 쉬는 시간인 오전 30분, 오후 30분은 칼같이 지키고, 한창 더운 7월이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면 그늘에 앉아서 커피나 물 등을 마시며 쉬었습니다.

다들 고향이 현장에서 차로 대여섯 시간 걸리는 프랑스 남부지방이어서, 집에는 격주로 갔다 오곤 했습니다.

따라서 휴무하는 토요일 전날 금요일은 오후 3시 반 정도에 일찌감치 일을 마무리하고는 차 두대로 나누어 공장을 출발하여, 자신들의 집으로 갔다가 꽉 찬 주말을 보내고는, 월요일 늦은 오전에야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럼 일하는 토요일을 낀 날에는 그만큼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였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은 5시 이전 30분 일찍 일을 끝내고는 공장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깔끔한 옷을 입고,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는 뭐가 흥에 겨운 지 들떠서 시끌벅적 떠들고 있었습니다.

M은 오늘 저녁에는 시내의 클럽에 가서 놀 거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다음 날 토요일 근무시간에는 늦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탈리아의 여름은 한낮에는 37℃를 넘나들만큼 더웠습니다.

다만 습기가 없어서 그늘에 있으면 견딜만했지만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익숙지 못한 저는 육체적인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한 번은 더위를 먹어 하루를 꼬박 호텔에서 쉬어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일하는 속도가 더디어 보이고 작업의 진척도가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해 보였던 현장은 어느 순간 기계들이 운송을 위해 Package 단위로 분리되어 가지런하게 놓이게 되면서, 일의 진행상황이 눈에 띄게 진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기계와 연결되어 천정을 뚫고 있던 공조덕트들을 잘라내었고, 이제는 지붕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배기 팬들을 철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때쯤 아침에 출근해 보니 프랑스 엔지니어들이 제비 뽑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응, 지붕에 올라가 배기팬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을 뽑고 있는 중이야"

M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선 우리들에게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뙤약볕에? 얘고 쉽지 않겠네."

옆에 있던 J조장이 인상을 한번 쓰더니, 한편으로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아니 그런 거야 당연히 막내가 가는 거지. 무슨 뽑기를?"

J조장이 혀를 차고 끌끌거리자 M이 무슨 말이냐고 눈짓으로 묻길래 저는 '한국에서는 그런 힘든 일들은 당연히 서열상 막내가 하는 것이 통례인데 뽑기를 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 못 하겠단다.'라고 통역해 주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서로 하겠다고 자원하길래 뽑기로 정하는 거야"

M이 웃으면서 얘기하였습니다.

순간 저는 영어가 짧아 M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나 했습니다.

마침내 뽑기에 당첨된 세명의 엔지니어들은 신난다는 듯이 웃통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팬티 같은 짧은 반바지차림으로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제야 우리가 한참 일하고 있는 지금이 유럽인들의 "Grandes Vacances"라고 불리는 시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M은 프랑스인들은 3주가량 진행되는 이 휴가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평소에 조금씩 적금을 드는 맛으로 직장생활을 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휴가에서 복귀할 때 알찬 휴가를 보냈다는 증표로 까맣게 태운 피부들을 과시한다는 것입니다.


어느새 약속한 일정보다 일주일이나 남은 상태에서 운송을 맡은 이탈리아업체의 대형트럭들이 현장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공장에 분해되어 있던 기계들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트럭들에 실려 단숨에 사라졌고, 프랑스업체의 기술자들은 예정된 스케줄보다 3일 정도 일찍 공장을 깨끗이 비워버렸습니다.

M은 마침내 손을 내밀며 저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한국에서 보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2개월 후 M와 다른 프랑스 엔지니어를 한국에 초대하여 소위 모 방송국의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와 같은 한국(음식) 탐험 여행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일을 잘 끝내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 J과 E조장이 다니는 기계설치 회사의 사장님이 상황 파악차 이탈리아에 오시게 되었을 때, 이분과 함께 남은 3일 동안 이탈리아 북부에 근접한 모나코와 프랑스의 니스해변을 여행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숙원이던 로마도 보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게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나요?

바로에게 아내 사라를 잃어버릴 뻔한 아브람은 하나님이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심으로 사라를 다시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룻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세기 13장 1절~2절)


아브람은 오히려 부자가 되어 애굽에서 나왔네요.

탕자는 집을 떠나 자기 맘대로 결정하여 살았지만, 아버지는 한시도 아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제가 탕자처럼 살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저를 돌보시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실하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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